"윤석열은 YS, 홍준표는 이인제, 한동훈은 이회창"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또 보수 쪽에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웬지 불길한 그림자가 언뜻언뜻 비친다. 특히 이번 총선 참패 이후 현 대통령과 유력 대선주자들이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기에 27년 전 제15대 대선 정국이 더 오버랩(연상)된다.
속담을 살짝 비틀어 설명하자면 "죽 쒀서 DJ(김대중 전 대통령)에 바친 꼴". 당시 대쪽 총리로 국민적 사랑을 받은 이회창 전 총재는 YS(김영삼 전 대통령) 대통령에 각을 세우며, 독자 행보를 이어갔다. 양자 대결 구도였다면, 이회창 전 총재는 YS의 뒤를 잇는 보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 나라 정치판에는 어김없이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였다. YS는 이인제의 등장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달려드는 이회창 전 총재가 살짝 미운 탓도 있었을 터. 양자 구도가 삼자 대결로 변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호남 출신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다.
◆DJ 40.27%, 이회창 38.74%, 이인제 19.20%
제15대 대통령은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탄생했다.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1천32만여 표(40.27%),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993만여 표(38.74%),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492만여 표(19.20%). 삼파전의 결과는 DJ의 신승(辛勝, 근소한 점수차로 간신히 이김)이었다.
정치는 때론 냉엄하고, 때론 야속하기도 하다. 이회창 후보 입장에서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인제 후보 때문에 그토록 원했던 자리(VIP)를 목전에 두고, 고배를 삼켜야 했다. 그 후로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패배하면서, '대권에 눈먼 노욕'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하는 치욕까지 감수해야 했다.
사실 이회창 전 총재는 원리원칙주의자로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이 나라를 법과 제도, 시스템적으로 선진국가 반열에 올려놓고 싶은 정치적 이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라 국민은 DJ를 선택하며, 전라도의 한(恨)을 풀어줬다. 그 다음 대선에서도 이 전 총재 대신에 역동적인 정치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더 많이 찍어줬다.
당시 이인제 후보도 이회창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경쟁력으로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보수의 분열로 대한민국 첫 진보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15대 대선 삼파전은 이미 대한민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과거사다.
◆윤석열 그리고 홍준표와 한동훈
지난 4월 총선 이후 현 여권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밀려 성에 차지 않지만 광역단체장이 된 홍준표 대구시장에 윤 대통령 편에 서서, 현 정부에 호의적이거나 야당의 거친 공격을 방어하는 멘트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집권여당의 총선 패배 직후에는 4시간 동안 허심탄회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만찬 자리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한동훈 총선 당시 비대위원장은 희한하게 이회창의 행보를 하고 있다. 총선 때 지역구 및 비례대표 공천에서 용산 대통령실의 명령에 가까운 요구를 제대로 수용해주지 않았다. 40여 명의 특별 명단 중 절반 정도만 공천을 받았다고 뒷얘기도 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비딱선을 걷는 한 비대위원장이 많이 섭섭했을 터. 이런 이유로 총선 후 한 전 비대위원장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윤 대통령과의 초청마저 거절했다.
한동훈의 현재 당에 아무런 직책을 맡고 있지 않지만, 다음달 말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질 태세다. 현 스탠스로는 용산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건전한 긴장관계로 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만약 당 대표에 선출된다면, 용산과의 관계 설정이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선이 다가올수록, 한동훈은 현 대통령의 관계가 다소 멀어지더라도 '마이웨이'를 선언하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 틈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홍 시장은 한동훈이 당 대표가 된 이후에 선을 넘을 경우 윤 대통령의 묵시적 허락 속에 강력한 대선주자의 위치를 구가하며, 또한번 유리한 고지에서 대권의 꿈을 펼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 유권자들은 아찔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3년 후에는 '죽 쒀서 DJ에게 주는 꼴'(1997 대선판)과 유사한 '어부지리(漁夫之利, 쌍방이 다투는 사이에 힘 안 들이고 이득을 챙긴다)가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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