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와 포토카드부터 가방, 신발까지 별걸 다 꾸미는 '별다꾸'가 젊은 세대의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별다꾸 트렌드를 이끄는 MZ세대들은 남들과 똑같은 기성품을 그대로 들고 다니기보다는 인형이나 리본, 큐빅, 배지 등을 달아 원하는 대로 커스터마이징해 자기만의 개성을 뽐낸다.
각종 유통 업계도 꾸미기 열풍을 주목하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 패션 키워드를 공개하며 "굿즈 소비, 숏폼 콘텐츠 시청 등 요즘 소비자들은 짧고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나만의 취향을 보여주는 것에 열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갓생이 낳은 '다꾸', 팬심이 더해진 '탑꾸'
꾸미기 열풍은 개성을 중시하는 MZ의 성향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타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자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개발에 집중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세태를 잘 보여주는 신조어가 바로 '갓생'이다. 신을 뜻하는 '갓'(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을 합친 말로 자기계발을 위해 열중하는 삶을 의미한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댓 걸'(That girl)이라는 키워드가 유행했다. 한국의 '갓생러'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건강하고 부지런한 루틴을 실천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을 두고 새로이 생겨난 말이었다.
꾸미기 열풍의 원조 격인 '다꾸'(다이어리 꾸미기)가 바로 이때 등장했다. 20대들은 코로나19로 대학 강의, 동아리에서 공동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뿌듯함을 느낄 일도 적어졌다. 또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어려워졌다. 외부 활동을 하면서 얻을 수 있던 자기효능감을 느끼지 못하자 급기야 자기 방 책상 앞에 앉아 언제 샀는지도 모를 케케묵은 다이어리를 펼치게 된 것이다.
갓생러들은 다이어리에 실천할 수 있는 목표들을 적고 하나씩 이뤄가는 방식으로 효능감을 충전했다. 소소한 목표를 세우고 이룬 후에는 다시금 하루를 돌아보고 성찰하며 일기를 썼다. 그러나 개성이 중요한 이들이 여기서 그칠 리 없다. 평범한 다이어리 속지에 각종 스티커를 붙이거나 다이어리에 키링을 다는 등 개성 있게 꾸미는 데까지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정성을 들여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꾸미는 '○꾸' 트렌드는 유행에 민감한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이돌 앨범 속에 들어있는 포토카드를 꾸미는 '탑꾸'(탑로더 꾸미기), '폴꾸'(폴라로이드 꾸미기)가 그것이다. 탑로더는 폴리염화비닐(PVC) 재질로 된 카드 크기의 보관함으로 주로 포토카드 케이스로 사용된다.
포토카드는 랜덤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아 멤버 구성원에 따라 수많은 구성이 나올 수 있다. 희귀한 포토카드의 경우 중고거래 사이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프리미엄 가격이 붙어 판매되는 경우도 잦다. 팬들은 이러한 포토카드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탑로더에 끼워넣어 보관하는 것에 더해 그 위에 스티커와 파츠, 레진으로 손수 꾸미며 재미를 느끼는 문화가 생겨났다.
◆폰꾸·백꾸·신꾸·텀꾸…이제는 선꾸
다꾸에서 시작된 열풍은 핸드폰을 꾸미는 '폰꾸', 자신의 방을 꾸미는 '방꾸'로 영역을 넓혀갔다. 물건이나 공간 등 어느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취향에 맞게 꾸미는 활동이 하나의 놀이 문화로까지 자리잡았다. 꾸미는 대상보다는 꾸미는 행위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백꾸'(가방 꾸미기), '신꾸'(신발 꾸미기) 등 패션 트렌드로도 확장하면서 '별다꾸'(별걸 다 꾸미는) 열풍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스티커 등에 한정됐던 꾸미기 재료도 '비즈', '키링' 등으로 다양해졌다. 특색있는 키링이나 귀여운 인형을 다양하게 부착하는 백꾸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꾸미기 놀이다.
실제로 네이버 데이터랩 '검색어 트렌드'에 따르면 가방 꾸미기 관련 검색어는 지난해 연말부터, 신발 꾸미기 관련 검색어는 3월 중순부터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아트 토이 전문 글로벌 기업 팝마트코리아에 따르면 키링 판매량이 월평균 53% 증가했으며 최근 3개월간 판매순위 10위권 제품 중 키링 상품이 4개가 차지하고 있다. 또한 키링 상품 발매 및 재입고가 있는 날의 경우 자사몰 방문자 수가 평균 대비 약 2~4배 가까이 상승하기도 했다고 팝마트코리아는 설명했다.
패션 플랫폼 카카오스타일 지그재그도 올해 들어 상반기 지그재그 내 키링 거래액은 무려 600% 증가했다고 밝혔다. 키링뿐만 아니라 가방 손잡이에 묶는 스카프와 리본 거래액도 각각 194%, 139% 늘었다.
최근에는 신발 꾸미기도 유행 중이다. 같은 운동화더라도 저마다의 취향대로 리본, 비즈, 와펜 등을 다는 방식이다. 또 신발 끈을 리본으로 대체하면서 발레슈즈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최근 '신꾸' 열풍에 지난달 '신발 꾸미기'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월 대비 1.5배 늘었다. 또다른 플랫폼인 무신사도 지난달 기준 신발 끈 및 신발 용품' 카테고리 거래액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15.7배, 키링은 7.2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신꾸 유행의 중심에는 유명 디자이너 세실리아 반센과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의 컬래버레이션 스니커즈가 있다. 윗면에 다양한 장식이 올라가는 게 특징인 이 운동화는 지난해 7월 정가 25만9천원에 발매됐지만 최근에는 100만 원대 안팎에서 거래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선글라스에 참을 끼우는 '선꾸'도 여름을 맞아 주목을 받고 있다.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블랙핑크 멤버 제니를 모델로 앞세워 하트 참을 선글라스 다리에 부착하는 형식의 새로운 제품을 선보였다. 총 24개 선글라스와 11개 참으로 각자 개성대로 골라 꾸밀 수 있다는 것이 꾸미기 열풍이 한창인 MZ세대에게는 장점이다.
◆꾸미기 열풍에 유통업계 촉각
'○꾸' 트렌드에 유통업계는 각종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내놓고 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모남희'와 손잡고 키링, 아이패드 파우치 등을 선보였다. 올리브영 자체브랜드(PB) 웨이크메이크는 '졸리레이드'와 컬래버레이션 하면서 섀도우 팔레트 등 화장품과 키링으로 구성된 기획 세트를 판매했다.
식품 업체 오뚜기도 와펜을 활용한 DIY 꾸미기 공간인 '옵젵상가'와 협업해 오뚜기 브랜드 헤리티지를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팝업을 기획했다. 이 팝업에서는 오뚜기 대표 제품인 '오뚜기 카레', '케챂', '마요네스' 등을 본딴 와펜을 베이스 키링, 북마크 등과 조합해 각 개성이 담긴 아이템을 만들어 볼 수 있어 SNS에서 화제가 됐다.
명품 업계 또한 백꾸 트렌드에 맞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미우미우는 올해 봄·여름(S/S)컬렉션 쇼에서 가방 핸들에 팔찌와 체인 등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청바지 같은 옷들을 마구 담아낸 '메시 백'(Messy Bag)을 내놓았다. 발렌시아가 역시 각종 스트랩과 체인 참, 키 링에 이어 자물쇠와 열쇠까지 가방에 건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지난 5월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 르메메는 성수동 팝업스토어에서 커스텀참 팔찌 제작 부스를 열고 이벤트를 진행했다. '신꾸' 열풍에 컨템포러리 슈즈 브랜드 슈콤마보니 또한 지난 달 팝업에서 '슈참'과 '가죽 키링' 커스텀 이벤트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에이블리는 경우 지난해 3월 라이프관 내에 '신발 꾸미기'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에이블리는 다이어리, 휴대폰 케이스를 넘어 신발까지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MZ세대 수요에 맞춰 다양한 꾸미기 상품을 강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발 앞서 트렌드를 캐치해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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