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자기효능감을 찾는 여행

이재수 국민연금공단 서대구지사장

이재수 국민연금공단 서대구지사장
이재수 국민연금공단 서대구지사장

긴 기다림 짧은 만남! 이는 불변의 법칙이다. 거친 겨울을 뚫고 소담스럽게 피어난 벚꽃은 작은 바람에도 가뭇없이 떨어지고, 여름 내내 그토록 무성했던 연둣빛 이파리는 낙엽 되어 황량한 거리를 나뒹군다. 숱한 세월 동안 모진 풍파를 딛고 피워낸 화려함일지라도 사그라지는 건 한순간이다.

인생도 자연의 흐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길고 긴 시간 동안 뼈를 깎는 몸부림으로 목표에 도달하지만 달콤한 희열은 그저 찰나에 불과하다. 아름다운 열매를 느긋하게 음미할 잠시의 틈도 없이 곧바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마치 정상에 닿자마자 곧바로 추락하는 '시시포스(Sisyphus)의 바위'처럼 맞닥뜨린 운명은 잔인하다.

은퇴! 어느 누구나 한 번은 마주한다. 시기를 늦출 순 있어도 피하진 못한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대한민국에서 체계적인 은퇴 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유는 여럿인데 핵심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지나치게 높은 노후 빈곤율. OECD 국가 평균의 세 배에 육박하는 40%가 넘는다. 다른 하나는 '마처 세대'의 등장.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지만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말이다. 1955년부터 1963년에 출생한 1차 베이비부머 950만 명은 이미 은퇴했고, 1964년부터 19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부머 700만 명은 올해부터 현직에서 물러난다.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낯설고 두려운 세계에 진입했으니 그 얼마나 막막할 것인가.

호모 헌드레드! 100세 시대는 바로 앞에 닥친 엄연한 현실이다. 이루지 못할 막연한 꿈이 아니다. 탄생이 그저 주어지듯이 우리는 죽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어떻게든 묵묵히 견디고 꿋꿋하게 버티어야 한다. 은퇴 이후 대략 삼사십 년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살아낸다는 건 누구에게나 주어진 마지막 미션이다. 그것도 빈곤과 질병, 소외와 고독과 투쟁하면서 말이다.

인류가 그토록 염원했던 불로장생의 꿈이 현실 세계에선 축복일까 재앙일까.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다를 것이다.

노후 준비! 빠를수록 그리고 많을수록 좋다. 은퇴를 앞두고 시작하면 한참 늦다. 미리 계획하고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 타이밍과 실행력이 관건이다. 올바른 습관으로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고 적어도 360개월 이상은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금액이 아니라 기간이 중요하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평생 월급'을 가지는 비결을 국민연금에서 찾아야 한다.

또한 새털처럼 많은 여유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해야 한다. 실마리는 문학과 공예,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창작을 통해 성찰하고 몰입한다. 소소하게 재미를 느끼고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을 쓸모 있는 존재라고 여긴다. 스스로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굳은 믿음, 즉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촉매가 된다.

인생은 여행! 낯설고 모르는 곳을 찾아가는 담대한 발걸음이다. 지금까지는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면 은퇴 이후엔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야 한다. 솔직한 고백과 굳은 용기로 무장한 채 예술과 동행하면서 고요하게 말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팽개쳤던 자신과 한 번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 그때 자기효능감은 한껏 피어나고 삶은 그지없이 찬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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