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규택의 새론새평] 부하를 사랑하는 지휘관

조규택 계명문화대 한국어문화과 교수
조규택 계명문화대 한국어문화과 교수

지난달 23일 강원도 인제 12사단에서 '얼차려'를 받다 쓰러진 훈련병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 해당 얼차려를 지시한 중대장 등이 피의자로 정식 입건됐다. 훈련병이 숨진 지 16일 만이었다. 입대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충분한 체력 단련이 안 된 병사들에게 완전 군장을 꾸리게 했다는 것은 기본 상식도 아니지만,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훈련병은 단독 군장으로 구보하고, 그것도 단계별 일정을 감안해 충분한 체력을 갖추었을 때 실시해야 한다. 부하를 사랑하는 것은 지휘관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 중의 근본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생사 가운데 부하를 사랑한 미담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마지막 주월 공사였던 고(故) 이대용 장군의 증언이다. 그는 6·25전쟁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냐는 물음에 직속 상관이었던 김용배 대대장이라고 했다. 김용배는 최고의 군인이었으며, 천재적인 전략가였고, 용감했고, 인격적으로 훌륭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인격적으로 훌륭했다는 그의 말을 증명하는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목이 멘다.

이대용이 낙동강 전선에서 죽음을 떠올리며 사수할 때, 김용배 대대장이 "압록강 대장(제1중대장의 음어), 압록강 대장! 추위와 굶주림이 얼마나 심하오. 부족한 나를 용서하오"라며 무전을 보내온 것이다. 그는 전장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그때는 무전기를 잡은 채 흐느꼈다고 한다. 이런 것이 지휘관의 부하 사랑이고 부하의 지휘관에 대한 존경이다.

훈련 중 병사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고 병사들을 살리고 산화한 강재구 육군 소령, 베트남에서 동굴 수색 작전 중 적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부하들을 구한 이인호 해병 소령 등도 부하를 사랑한 전형적인 영웅들이다.

고려 태조 왕건과 신숭겸의 관계는 부하가 지휘관을 존경하는 모습의 상징일 수 있다. 왕건이 공산 전투에서 위험에 처하자, 신숭겸은 기꺼이 왕건의 옷으로 갈아입고 대신 전사한다. 이는 평소 지휘관의 사랑과 신뢰와 믿음에 대한 부하의 살신성인(殺身成仁)적인 보답이라고 할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도 부하를 사랑한 지휘관이다. 1592년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은 왜군이 침입했을 때, 머뭇거리는 이충무공을 향해 "영남이 이미 함락되고 승세를 탄 적이 호남을 침범하기 전에 급히 역습하는 것이 호남을 방위하는 것이요. 이것은 또한 영남을 구원하는 것이기도 하오"라며 출전의 결기를 보였다. 이에 이충무공이 크게 깨달아 나아갔는데, 정운은 후부장으로 참전했다. 이충무공은 부산포 해전에서 정운이 전사하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나라가 오른팔을 잃었다"라고 하면서 크게 슬퍼했다.

1595년 이순신은 죽은 군졸들을 제사하는 글(祭死亡軍卒文)에서 "윗사람을 따르고 상관을 섬겨/ 너희들은 직책을 다하였건만/ 부하를 위로하고 사랑하는 일/ 나는 그런 덕이 모자랐도다./ 그대 혼들을 한자리에 부르노니/ 여기에 차린 제물 받으시라"라며 부하들이 전사하였을 때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이충무공은 엄정했지만, 한없이 자애로운 리더십을 보였던 지휘관이었다. 공이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을 수시로 보였으니 부하들이 그를 따르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는 전승으로 귀결되었다. 공이 전사한 부하를 제사하는 사랑은 도덕경 69장에서 전쟁을 슬퍼할 줄 아는 편이 승리한다는 애자승(哀者勝)과 맞닿아 있다. 무릇 측은지심이 승리의 본질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승리한 지휘관은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모든 병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소중한 인격체로서 나라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기꺼이 수행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그들은 자유를 반납하면서 계급에 순응한 건전한 젊은이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감정에 휩싸여 반인격적인 태도로 대했다면 남녀를 떠나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지휘관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의 중대함을 자각하여 처사를 공명정대히 하고 부하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아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존재다. 지휘관은 관용과 믿음으로 훈련하고 지도해야 한다. 지휘관은 교만과 위선이 아닌 진심 어린 사랑과 신뢰로 부하에게 다가가야 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