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전기 요금, 미래세대에 부담 전가 곤란하다

황상호 한국전력공사 대구본부장

황상호 한국전력공사 대구본부장
황상호 한국전력공사 대구본부장

올해도 어김없이 무더운 여름이 다가왔다. 한여름 밤, 에어컨을 켜놓고 시원하게 잠들고 싶은데 전기 요금 고지서를 떠올리며 고민했던 경험을 다들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사실 전기도 상품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한 만큼 요금을 내는 게 당연하지만, 왠지 전기 요금은 세금 같아서 아까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전기 요금'이라는 말보다는 '전기세'라는 단어가 익숙하다. 그만큼 국민들에게 전기는 '저렴한 공공재'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전력의 '착한 적자'가 있다.

그동안 한국전력은 국가 경제를 위해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물가 인상을 억제하는 완충 역할을 하며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해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글로벌 환경으로 최근 3년간 에너지 가격은 배 이상 증가하였지만, 전기 요금은 작년 11월 소폭 조정한 것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한국전력은 196.7원(㎾h당)에 전기를 사와서 120.5원에 팔아(2022년), 전기를 공급할수록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한국전력은 3년 만에 43조원의 적자가 발생하였다. 하루에 약 127억원의 이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한국전력이 얼마나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의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력은 '착한 적자'로 기인한 재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직원들이 십시일반 임금을 반납하여 마련한 재원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등 특단의 자구 대책을 이행하고 있지만, 현재의 전기 요금 수준에서는 그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문제는 한전의 '착한 적자'가 아니다. 정부의 '11차 전력수급계획' 실무안에 따르면 2038년 (목표) 전력 수요는 작년 최대 수요 대비 무려 31.5%가 증가하였으며 특히 태양광·풍력의 설비용량은 약 3배 이상(2030년) 확대되었다. 다시 말해 미래세대를 위해 깨끗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환경을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송전망 확충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는 막대한 금액의 설비투자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전력의 재무 상황을 보면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한 지속적인 설비투자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서 누차 보도하였듯이 미래에는 인공지능(AI) 산업 중심의 반도체, 데이터센터의 설비 확충으로 인해 전력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국가 경제를 선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또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환경을 제공하는 것 역시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책임져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한국전력의 현재 상황에서는 지속 가능한 설비투자가 힘들 것이고, 지금의 전기 요금 수준으로는 미래세대에 큰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전기 요금 정상화는 어렵고 민감한 문제다. 특히 요즘과 같은 불경기에는 더욱 조심스러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다. 미래세대에 깨끗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책임감 있는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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