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 車 본산 토요타시처럼…포스코 본사 기능 포항에 옮기자

포항시가 곧 '포스코시'…철강과 2차전지 산업, 투자와 지원만이 살길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전환, 에코프로는 오너리스크 해소하고 2차전지 투자 강화

포항시 전경. 매일신문DB
포항시 전경. 매일신문DB

'인구 100만명 기업 도시'를 꿈꾸는 경북 포항이 산업·경제 중심의 지방분권 패러다임 대전환에 나선 가운데 '포스코'와 '정부'가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포항이 진정한 기업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선 토요타자동차 본사가 자리한 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처럼 수도권으로 옮겨가 있는 포스코의 본사 기능을 포항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포스코의 제2 도약을 이끌어내는 전폭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스코가 기업 도시 포항에 필요한 정책 및 현안을 제안하고, 정부와 포항시가 법 테두리내에서 가능한 모든 사항을 논-스탑 지원하는 선순환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부진의 늪에 빠진 철강과 2차전지

경북 포항을 넘어 대한민국 철강업을 이끄는 기업, 포스코는 글로벌 철강시황 악화로 판매부진을 겪으며 내부 조직을 줄이거나 업무강도를 높이는 등 어느때보다 힘겨운 한해를 보내고 있다.

포항제철소가 생산하는 특수강은 엔저로 일본제품에 밀리고, 범용강은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에 발목이 잡혀 애를 먹고 있다.

포스코는 경영위기극복을 위해 철강 분야에서만 연간 1조 원 이상 원가 감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인화 포스코홀딩스 회장이 4월 직접 이를 지시했다.

중복 부서를 통합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조직 개편을 시작했으며 생산 공정에서 비효율적 부분도 점검 중이다.

포스코는 지난달 24일부터는 임원들의 근무를 주 5일제로 되돌렸다. 포스코는 1월부터 사무직을 대상으로 격주 주 4일제를 도입했는데 철강업계의 불황이 이어지자 비상 근무에 나선 것이다.

임원 급여도 최대 20% 반납하고 임원을 대상으로 하는 주식보상제도(스톡그랜트)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더해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의 투자가 될 사업도 속도를 내지 못해 내부의 어려움이 더해지고 있다.

기존 고로를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해 탄소중립 달성 등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포스코의 미래 핵심 전략인데, 아직까지 이와관련한 사업 부지 인허가 조차 확보되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다.

포스코 측은 수소환원제철소로 전환하는 과정을 정부가 적극 나서준다면 사업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보고, 각계의 협조와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포항의 또 하나의 거대한 경제성장 엔진인 2차전지 산업 투자 기업들도 매출감소로 걱정은 크지만 투자의 고삐는 놓지 않고 있다.

올 초부터 전기차 시장의 캐즘으로 2차전지 사업이 맥을 못추고 있지만 포항은 2차전지 특화단지를 중심으로 사업의 끈을 바짝 죄고 있다.

영일만일반산단과 블루밸리국가산단 등에 조성된 1천144만2천546㎡ 규모의 특화단지에는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 등 글로벌 2차전지 선도기업이 둥지를 틀고 2027년까지 14조원의 투자유치를 약속한 바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올해 CAPEX(설비투자비용)으로 2조8000억원을 책정했다. 이는 지난해 투자 금액인 1조3662억원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에코프로는 포항캠퍼스를 중심으로 투자를 계속 이어가며 2차 전지 양극소재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캠퍼스에는 에코프로EM을 비롯해 에코프로BM, 에코프로 이노베이션, 에코프로 머티리얼즈, 에코프로CNG, 에코프로AP 등 대부분 계열사 공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2026년이 되면 면적만 약 50만㎡에 이르게 된다.

다만 에코프로는 앞으로의 대규모 투자가 오너리스크에 막혀 주춤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전기차 수요 정체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창업주 이동채 에코프로 전 회장(법정구속)의 부재까지 겹치면서 회사의 실적은 바닥을 치고 있다. 경영위기에 대응할 구심점인 오너 역할이 절실해지면서 포항과 청주지역에서는 구명운동까지 벌인 바 있다.

이 외에도 지난해 11월 중국 CNGR사와 화유코발트가 포스코그룹 및 LG화학과 손잡고 각각 1조원 가량의 포항 투자를 약속하면서, 특화단지는 오는 2030년까지 ▷양극재 연간 생산 100만t(톤) ▷매출 70조원 ▷일자리 1만5천개 등의 성과를 넘볼 수 있게 됐다.

해외투자도 계속되고 있다. 포스코는 최근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에서 2차전지용 리튬 자원 추가 확보에 나서며 사업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코프로도 19~21일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유럽 2024'에 처음으로 참가하며, 내년 헝가리 사업장 가동에 따른 유럽 시장 진출을 알리고 있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2차전지 산업이 당분간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른 기업 투자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산업육성과 보호를 위해 여러모로 신경 써준다면 관련 기업들이 더 힘을 낼 수 있다"면서 "세계최고 수준의 철강업에다 2차전지 산업을 장착한 포항은 이번 위기를 잘 넘기면 분명 대한민국 중심 산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포스코 본사 기능 복원

포항 지역사회는 포스코 본사 기능을 지역에 복원하는 상징적인 출발점으로 포스코 미래기술연구원의 경기도 성남 분원 설립 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포스코는 위례지구 일대 5만여m² 부지에 사업비 약 1조7천억원을 들여 미래기술연구원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래기술연구원 본원(포항)의 주요 부서들이 위례지구로 이전되는 움직임이 감지되자,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미래기술연구원은 포스코그룹 연구개발(R&D) 컨트롤타워로서 인공지능(AI), 2차전지소재, 수소·저탄소 에너지 분야 3개 연구소 체제를 통해 철강을 포함한 그룹의 미래 신성장 육성을 위한 기술전략 수립을 총괄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미래기술연구원은 포항 본원 뿐 아니라 수도권에도 연구인프라를 갖춰 그룹의 산학연 클러스터 완성을 통한 연구 허브로서 전방위적인 연구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포항 지역 시민단체와 학계는 포스텍, 포항산업과학기술연구원(RIST)이 포항에 위치해 미래기술연구원이 포항에 오면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지역균형발전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게다가 포항과 1시간 거리내에 UNIST(울산과기원), 부산대, DGIST(대구경북과기원)·경북대(대구)도 있어 미래기술연구원의 전문인력 충원에 문제가 없고 연구개발 시너지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포항시가 포스코 본사 기능 복원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곳은 일본 토요타시이다. 토요타자동차 본사가 있는 토요타시는 1980년대 중공업 침체로 한 차례 위기를 겪었으나 토요타자동차와의 협업을 통해 도시 재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산업 구조 다각화 및 신산업 육성을 통해 육성시킨 경제발전도 대단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의료, 교육 등 도시 인프라 현대화와 문화·관광 자원 개발 분야이다.

기업과 지자체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교육·복지·환경 전반에 걸쳐 균형 잡힌 도시 발전 전략을 추진한 덕이다.

토요타시는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기술 혁신, 인프라 구축, 주거환경 개선 등을 통해 현 일본 경제를 상징하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1959년 기존 코로모란 도시 이름을 아예 자동차 회사인 토요타로 변경한 것은 본사까지 지역에 두며 지역과 공생하려는 기업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이 느껴진다.

현재 지역에서 쌓아올린 성장 기반을 뒷전에 두고, 수도권으로만 거점을 옮기는 국내 기업들의 사례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포항이 인구 100만 기업 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제가 바로 포스코와의 협업"이라며 "정부와 포항시가 정책적 지원을 통해 '포항시'가 곧 '포스코시'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월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 개소식에서 관계자들이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지난 1월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 개소식에서 관계자들이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포스코 제2도약, 정부가 지원해야

포스코 제2도약을 위한 국가적 과제는 세계 최초의 수소환원제철소(석탄을 사용하지 않는 제철) 전환이다. 오는 2030년이면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상징인 포항제철소 '고로'가 수소환원제철 설비로 대체되는 가운데 관련 설비가 들어설 부지 인허가가 9월로 예정됐다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은 한국의 2050년 산업 부문 탄소배출 감축 목표와 맞물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문제가 됐다. 2018년 대비 2억1천만톤(t)의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입장에서,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포스코 기술이 상용화되면 목표치의 40%에 달하는 8천630만t의 탄소배출 감소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쇳물은 철강석과 석탄을 고로에 넣고 열풍을 불어 넣어 연소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슬래그 등이 부산물로 남는다. 이 때문에 철강 산업을 두고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업종이라고 부른다. 철강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공정 전환을 통한 탄소배출 감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포스코가 추진하고 있는 수소환원제철은 수소가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는 환원제 역할을 하기에 탄소 배출 걱정이 없다. 순수한 물(H20)만 남는다.

수소환원제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하이렉스' 상용 기술 개발이 필수다. 하이렉스는 수소와 철광석을 유동 환원로에 넣어 환원철을 만들고, 이를 전기로에서 정제해 쇳물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포스코는 하이렉스 시험 설비를 오는 2026년 도입해 상업화 가능성을 확인하고, 2030년까지 기술 개발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이어 2050년까지 포항·광양제철소의 기존 고로 설비를 단계적으로 전환해 '2050 탄소중립' 시대를 연다. 2050년까지 하이렉스 도입 등 탄소중립 전환 비용은 약 4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 같은 천문학적 비용 때문에 '수소환원제철' 완성은 포스코의 의지만으로 이룰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도 지난 1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관련 지원책 마련에 시동을 걸었다.

정부는 특히 '하이렉스 공정'이 전 세계 철강사 가운데 포스코만이 갖고 있는 기술이라는데 주목하고 포스코 지원을 약속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내에 '하이렉스' 시험설비를 건설하고, 저탄소 원료인 'HBI(Hot Briquetted Iron)' 사용을 확대하는 등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포스코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수소환원제철 건립을 위한 포항제철소 인접 공유수면 135만㎡(약41만평)매립이다.

포스코 측은 2024년 9월 인허가 완료, 2027년 호안축조, 2033년 수소환원제철 고로 포항 1기 준공을 목표로 제시했다. 부지조성을 위한 인허가가 벌써 이뤄져야 했지만 지역과 여러 갈등으로 계속 미뤄지다 오는 9월 일정이 잡혔다.

포스코 이시우 대표이사는 "하이렉스 시험설비 설계 완료 등 저탄소 분야에서 포스코만의 기술력을 확보할 예정이며, 저탄소 체제 전환을 위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뒷받침될 수 있도록 고객·지역사회·정부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겠다"고 했다.

수소환원제철 부지조성 조감도. 포스코 제공
수소환원제철 부지조성 조감도. 포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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