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 리뷰] 차범석 극작가의 사실주의, 윤한솔 연출의 재구성의 방식’ 70년대 은밀한 냉소와 조롱, 새마을 운동으로 ‘잘 살아보세’ 국립극단의 <활화산>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후렴) 살기좋은 내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60, 70년대 생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70년대 새마을 운동 국민계몽 노래다. 노란 원안에 초록 새싹이 들어간 모자는 새마을 운동의 상징이다. 모자와 티셔츠는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기도 했다. 새마을 운동 보급이 반세가 지났는데도 지역의 한 대학에서는 '새마을 국제개발학과' 개설되어 있고 '새마을 동아리'도 발대식을 가졌다. 새마을운동을 계량하고 보급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도 있다. 한국사회는 조선왕조 봉건시대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이념과 정치 분열의 시대였다. 정변(政變)으로 인한 국가재건위 군부정권의 등장과 3공화국 수립, 유신시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한국전쟁 직후 1인당 국민소득 66달러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은 4만불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70년대 들어서면서 '하면 된다'라는 구호로 근면, 자조, 협동 정신을 내세운 '새마을 가꾸기 운동(새마을 운동)인 국민적 국가 캠페인 프로젝트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의 평가와 새마을 운동의 국가정책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 사이에 극명하게 갈라진다. 좌파진영은 "유신독재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도구" 였다 라며 새마을 운동을 보수진영이나 뉴라이트들이 찬양가처럼 소환한다고 공격하고 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환경 만찬에서 "'잘살아 보자'는 희망으로 밤낮없이 뛰었던 국민의 노력이 삼위일체가 돼 경제 도약을 이뤄낼 수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새마을 운동'을 재소환하게 된 것은, 차범석 탄생(1924~2006) 100주년을 맞아 국립극단이 제67회 정기공연(1974)으로 공연한 <활화산>(작, 차범석)을 초연 후 50년 만에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5.24~6.17)에서 윤한솔 연출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차범석의 64편의 희곡 중 5막으로 구성된 <활화산>은 70년대 국가정책으로 선전하고 장려정책으로 활용된 새마을 연극운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식되어 있다.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 희곡 '활화산'의 출생과 정치적 메커니즘,

연극<활화산>은 경북 월성군 안강읍 옥산리 새마을 운동의 부녀지도자로 모범이 되었던 김영순의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극작가 차범석은 현지답사와 인터뷰를 거쳐 희곡< 활화산>을 완성한 뒤 국립극장(1974.2.26.~3.3일까지)에서 이해랑 연출로 공연했다. 텔레비전으로 공연 영상이 방영되기도 했다. 20일에 걸쳐 전국 16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국가정책으로 새마을 운동을 알린 대표적인 새마을 연극의 목적극이기도 하다. 희곡 <활화산>의 한 연구자의 말을 들어보자. "차범석은 박정희 지시에 따라 새마을 운동의 모범이 되었던 실존 인물을 모델로 희곡 <활화산>을 창작했다. 새마을 운동을 성공으로 이끈 영웅의 극화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하고, 국민을 자발적으로 노동에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화산>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노동하는 영웅상은 박정희 정권이 상상한 새로운 국민의 모습을 대표한다. (중략) 1970년대, 국민 신체를 동원하기 위한 통치 기술은 문화예술을 선전 선동의 도구로 활용한 연극이고 '활화산'도 그러한 자장 안에 놓여 있었다.(정현경)"라며, '새마을 연극'을 정치적 메커니즘으로 분석하고 있다.

반면 보수진영의 새마을 운동은 한국사회의 산업화를 견인해 경제성장의 성과를 이루어낸 70년대 대표적인 국가정책 운동"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런 만큼 새마을 연극으로 지칭되는 희곡은 정치이념 프레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평론가 정중헌은 연극 <활화산> 연극리뷰에서 "새마을운동과 새마을연극을 매도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프로파간다를 찬동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우리가 가난을 벗어났고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라며 덧붙였다. 극 중 장면 하나를 더 들여다보자. 농촌 새마을 운동으로 잘살게 된 극 중 인물 정숙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군중 연설하는 마지막 장면의 대사다. "(중략) 농민은 가난하지만, 무식하지는 않습니더. 우리가 우리끼리 믿고 힘을 합쳐서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꺼? 없습니더. 하면 됩니더. (중략) 화산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듯 우리 농촌에도 새로운 화산이 숨쉬기 시작 했습니더. 우리는 죽은 화산이 아니라 살아있는 화산입니더. 그 누구의 힘에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땅 속에서 이글거리다가 솟구치는 화산입니더."

이 독백을 두고 연극< 활화산>을 관람한 네티즌 사이에서도 양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국민을 전체주의화 시켜 프로파간다 방식으로 통치하는 히틀러의 독재와 폭력이 떠올라 끔찍했다"고 했다. 연극< 활화산>은 1970년대 가난한 한국사회를 발전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국가적인 정책 운동으로 보는 시대론과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 노동성을 착취하는 국가폭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한국연극사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극작가 작품 중 국립극단이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연극< 활화산>을 선택했다는 것과 연극적인 일루전을 거부하고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재현의 연극성을 감각화 방식으로 전복시켜온 윤한솔 연출가가 무대화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실주의 작가와 연출 스타일이 상호적이지 않은 교집합에서 충돌되는 새마을 운동의 70년대는 정치적인 메커니즘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사실주의 극작가와 연출의 재구성

윤한솔 연출은 희곡을 각색하거나 재구성하지 않고 텍스트를 그대로 살렸지만 무대방식의 연출 해석은 반세기 전 공연과는 차이를 보이며 연출적으로 재구성되었다 할 수 있다. 50년 전의 희곡을 현재적인 관점에서 재해석된 것은 바람직하다. 무대화 방식을 들여다보자. 윤한솔은 희곡을 각색하지 않은 채 텍스트를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윤한솔 작업방식으로 형상화되는 텍스트와 거리두기, 다큐적인 전경화, 그로테스크한 미장센, 해체와 전복, 감각의 재분할 같은 방식으로 연극 <활화산>을 무대를 통해 감각시키고 있는데, 연출이 <활화산>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 지점은 그의 인터뷰대로 "마지막 장면에 온 세상이 녹색이 되고, 돼지도 녹색이 되면, 그 세계는 어떻게 보이느냐는 거죠. 거기에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면, 그 세계는 과연 어떤 모양일거냐는 거죠. 다 그렇게 되면 이게 좋은 세상인지? 궁극적으로 이게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지. 이런 질문을 던졌으면 해요. 그래서 이 작품을 고르게 됐어요." 라고 말하고 있다. 희곡 <활화산>에서 그려지고 있는 13대째 내려온 이 씨 종가 집안의 몰락 과정, 이 노인의 죽음, 상석의 조합장 선거와 정치권의 결탁, 국회의원과 정치의 부패, 돼지를 키우고 새마을 운동을 통해 정숙이 이씨가문과 농촌 마을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과 마을 지도자(연설)가 되는 시간까지 '새마을 운동' 시대를 재감각화 시키는 윤한솔의 방식에는 세 가지가 투영되고 있다.

첫 번째는 차범석의 '활화산'이 프로파간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새마을 연극'을 대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라디오 장면 등). 두 번째는 새마을 운동은 국가적인 동원으로 그 노동성은 녹색으로 물들고 있는 전제주의적 군부정권의 독재(2막, 그로테스크한 분홍 빛 돼지의 형상, 새마을 운동을 상징하면서도 군복처럼 보이는 듯한 녹색)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 세 번째로는 마지막 장면의 걸개 그림이다. 70년대 잔재는 빨갱이를 외치던 반공사상으로 역사의 자국이 남아있는 시대성을 은밀한 비유로 드러내고 있다.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마지막 장면이다. 새마을 운동의 영웅이 된 여성 정숙의 연설 뒤 대형 걸개그림으로 채워진다. 녹색도 아닌 빨간색 노동복장으로 정숙이로 특정 할 수 없는 한 여성이 희망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앞으로는 농촌을 상징하는 이미지와 대형 옥수수, 감자와 과일 등이 채워진 구도의 그림이 있다. 대형 걸개그림의 분위기는 특정 국가의 선전 포스터를 연상하게 할 수 있는 이미지와 색감으로 연상(聯想)하기에 충분했다.

희곡 <활화산>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윤한솔 연출의 새마을 연극운동의 70년대는 정숙이 마을의 지도자(지배층)이 되어 녹색으로 국민의 노동을 강제화하고 획일화하는 시대이며, 그 시대의 잔해는 반공사상과 유신 정권의 독재로 정치 권력을 연장한 시대임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4막에 등장한 돼지의 형상화는 표면적으로는 돼지를 키우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정숙의 살기좋은 마을로 변화로 나타난다. 마을 분위기의 압축적인 상징으로 형상화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홍빛 돼지의 형상에서 과거 한 고위공직자가 망언한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한 발언이 떠오를 정도로 강렬하게 감각되었다. 새마을 운동을 국가 국민운동으로 전개한 70년대 군부정권이 그래왔던 것처럼 읽혀졌다.\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 희곡의 감각을 재분활 하는 윤한솔 연출의 무대화 방식

무대 뒷면과 철구조물이 감각적으로 전달되는 중앙 회전무대에 1960년대 경상북도 한 마을을 지키며 13대째 살아가고 있는 '옥석마을' 이노인(정진각 분)의 종가 한옥 한 채가 들어서 있다. 한옥의 전면을 회전방식으로 전환시키며 한옥의 구조를 극 중 장면으로 입체적으로 활용된다. 무대 좌측으로 첫째 아들의 자식인(원례, 식, 길례) 등이 라디오를 맨 채 무대 시작 전부터 마을 일각(一角) 에서 놀고 있고 아이들을 퇴장없이 무대에 연속시킨다. 이 노인 가문으로 종속되는 가족의 구성원보다는 세대를 분리해 70년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50대 중반으로 접어든(성장한) 70년대생에게 '박정희 시대'를 정치적으로 묻는 물음이라고 할까. 1막은 13대째 내려온 이씨 문중의 종가에서 3대가 힘들게 살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노인은 13대조(祖)가 대사헌 이라는 벼슬을 지냈다는 것만으로 뼈대 종가라는 점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한 끼를 채울 수 없는 곡간이 비워있어도 아내 심씨(백수련 분)는 빚을 내서라도 가문의 체통을 연명하려한다. 이씨 종가의 구시대적인 봉건의식이 몰락해 가는 분위기다.

2남 2녀를 둔 이 노인의 첫째 아들과 며느리는 전쟁 통에 죽고 환(이주형 분)은 어린 나이에 종손의 역할을 못 한다. 둘째 아들 이상만(이상은 분)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고 박씨(박소연 분)와 대를 이를 아이가 없는 채로 살아간다. 막내아들 이상석(구도균 분)은 정치적인 야심을 키워가며 전답을 팔아 축산조합장 선거에 나서지만 정치적인 결탁과 야합선거로 떨어지고 이노인마저 충격으로 죽게 된다. 이노인을 중심으로 구시대의 몰락은 상석의 조합장 선거와 이노인이 죽음까지 연결되는 3막까지이다. 4막부터 경숙은 '빚을 대물림할 수 없다'며 사십구재로 시아버지 장례를 탈상하자며 봉건적인 제례의식을 거부한다. 이때부터 경숙은 이노인 가문의 가장 역할을 하며 돼지를 키우며 '잘 살아가는 모범적인 마을'로 변화시키는 시간이 그려진다. 구시대가 저물고 정숙을 중심으로 새마을 운동과 농촌운동과 경제개발 계획으로 이어지는 70년대 새마을 운동과 산업화 시대의 박정희 정권의 국가정책 변화의 전환기를 정숙을 통해 희곡은 드러내고 있다.

윤한솔 연출은 5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희곡을 2막 정도로 느껴질 수 있도록 이노인의 죽음(3막)까지를 1부로 묶고, 인터미션 후 2부는 정숙을 통해 변화되는 4, 5막을 향해 달린다. 무대는 근면, 자조, 협동 정신으로 변화되는 극 중 인물들의 장면전환들이 단일 막(장)으로 스트리밍하듯 연결된다. 정숙의 연설 장면까지 무대에서 발화되는 장난과 조롱, 비약들이 희곡 '활화산' 주변으로 윤한솔의 기발함과 그린피그 스타일로 재구성되어 무대를 끌고 간다. 스탭들이 무대로 등장해 극적 환영을 거세하며 무대를 전환하기도 한다. 까마귀가 웹툰 장면처럼 탈을 쓰고 등장해 극 중 인물과 교감하고 관계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한옥 마루에 뻐꾸기가 등장해 태연스럽게 "뻐국, 뻐국" 거리며 시간 변화를 전달하는 식이다. 연출은 이러한 표현 방식으로 무대로 난입해 연극 <활화산>을 비현실적이면서도 날것 그대로의 현실적인 미장센으로 전경화하고 장면을 감각적으로 분활한다. 사실주의 희곡에 연출적인 재구성 표현의 층위를 장면으로 섞어 서사의 몰입과 감정이입을 차단하고 이성의 감각으로 시대를 환기할 수 있도록 하는 표현 방식으로 전개된다. 미학성을 거세한 무대는 때로 산만해 보일 수 있는 연출 형식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산만함은 무대 위 환영을 제거해 현재를 드러내는 '존재의 살아있음'으로 전달되는 방식일 것이다.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3막의 마지막 장면이다. 3대 종손(이노인)의 죽음과 몰락을 형상화하면서 한옥은 윤한솔 방식으로 무대 위로 분해되어 올려진다. 스텝들은 한옥 철거반이 된 것처럼, 지붕 위로 올라가 와이어로 극장 상단부와 연결하는 과정을 생중계하듯 드러내고 마침내 한옥은 공중으로 분해된 것처럼 무대 바닥에서 올려져 있는 구도를 만든다. 한옥 기둥을 지탱하는 것은 이 노인의 대형 초상화가 걸러지고 제사상이 차려진다. 49재로 탈상(脱丧) 하자는 정숙은 박씨를 향해 "어무이, 아직도 살길은 있습니더. 우리가 지금부터, 마음만 달리 먹고 합친다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더! 자기 스스로 일하고 일어서는 사람을 하늘은 결코 저버리지 않습니더! 어무이요! 그라이 저한테 모든 일을 맡겨 주시이소!" 하며 상석의 야망으로 전답문서가 사라져가는 원망을 늘어놓는 술취한 환이의 절규가 이어질 때 쯤, 원작에 있는 지문과 대사 "(절규도 아니요 노래도 아닌 소리를 뱉는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하늘 저 산아래...."는 죽어서도 옥돌마을 13대 종가집을 잊지 못하는 이노인 망령이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를 활보하는 것처럼 등장한다.

심씨와 '꿈에 본 내 고향'을 듀엣으로 부르고 사람처럼 형상화되는 두꺼비까지 등장시킨다. 가문의 몰락, 상석의 조합장 선거와 좌절, 이노인의 죽음, 다리건설과 마을 선거, 정숙모의 방문과 돈다발, 정숙의 돼지키우기, 정숙의 연설 등으로 장면으로 전환되면서 봉건주의 구시대의 몰락과 정숙으로 대변되는 새마을운동의 70년대 사이를 윤한솔 연출은 장면을 감각시키고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새마을연극 <활화산>을 연출적으로 분해하고 재구성을 시도하는 것인데, '꿈에 본 내 고향'을 이노인의 노랫소리로 재소환한 것은 여전한 한국사회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꿈에 본 내고향 '처럼 지워지지 않는 정치이념의 현재성을 이노인과 심씨을 통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출적 감각의 재구성의 장치들은 5막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한옥의 구조를 재분활해 장면화시키는 방식도 그렇다. 이노인의 삶과 3대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가문의 구조 내부를 360도 회전시키며 두 장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전달되는 대비감과 입체적인 효과를 보여준다. 평면적인 롱테이크 구도안에 투샷과 클로우즈업이 연결되는 것처럼. 라디오로 전달되는 앵커의 반복적인 뉴스는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 옥돌마을, 국가정책사업을 홍보하는 멘트를 연속적으로 흘려보내면서 전달되는 동정뉴스와 정책홍보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선전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라디오를 극 중 인물의 생활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연출적인 설정이란 점에서 그렇다. 4막부터는 이노인의 죽음으로부터 4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집 마당에는 벌겋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홍시 감나무를 샤막스크린처럼 그로테스크하게 형상화되어 정숙을 중심으로 하는 이씨 가문의 변화를 보여준다. 매달린 감들 사이로 길가를 만들어 배우들 이동로로 설정해 마을 입구를 표현하는 기발함도 돋보이지만 감나무가 걷히고 무대 중앙에 들어선 분홍빛 돼지 구조물이 돼지우리의 공간으로 무대를 압도한다.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돼지 조형물이 회전무대에서 다른 각도의 분위기로 감각되는데, 오로지 농촌에서 돼지를 키워 '잘살아 보고' 싶은 정숙의 욕망은 새마을 운동으로 상징되는 특정 색의 의상들로 획일화된다. 정숙과 마을 사람들의 '잘살아 보세'의 생산적인 노동과 마을의 변화는 자주적인 삶의 욕망보다는 유신 정권에 의해 국민의 노동력이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활용됐다는 점을 돼지의 형상화와 새마을 운동을 연상하게 하는 녹색 의상으로 설명된다. 마지막 장면은 4년 전 선거 때 마을에 다리를 완공시키겠다며 기공식만 한 후에 국회의원이 된 강상구 의원의 재출마를 하면서 다리 재건립 논쟁이 붙는다. 정숙은 마을 사람이 모인 가운데 "우리 가난하고 몽매한 농민들은 해방 이후 배번 그런 식으로 속여왔고 속아 왔습니더. 그래서 우리 옥돌 마을은 이렇게 몬 살고 이렇게 뒤떨어진 게 아닙니꺼! 이제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있다면 우리 자신 뿐입니더!. 강대국 등살에 약소국은 항상 밥이 되어 왔습니더! 여러분 이제 다시는 속아서도 속여서도 안 됩니더!(중략) 화산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듯 우리 농촌에도 새로운 화산이 숨쉬기 시작했습니다." 경숙의 군중연설 뒤 마을 주민들은 우리 힘으로 일어섭시더!, 우리는 가난을 이겨내고 몰아내자! 고 외치고, 상석은 "우리도 잘 살 날이 오리라!"라는 대사 뒤 무대는 새마을운동의 영웅이 된 정숙의 걸개그림으로 채워진다.

녹색도 아닌 빨간색 노동복 복장으로 정숙으로 특정할 수 없는 여성이 희망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고 그 앞으로는 농촌을 상징하는 이미지와 대형 옥수수, 감자와 과일등의 구도로 채워진 그림이다. 대형 걸개그림의 분위기는 특정 국가의 선전 포스터를 연상하게 할 수 있는 이미지로 충분했다. 윤한솔 연출의 새마을 연극운동의 70년대는 정숙이 마을의 지도자(지배층)이 되어 녹색으로 국민의 노동을 강제하고 획일화되는 시대이며, 그 시대의 잔해는 반공사상과 정권의 독재로 유신으로 정치 권력 연장한 시대임을 드러내고 있다. '돼지'의 형상화까지는 윤한솔의 표현 방식으로 읽혔고 걸개그림이 걸리는 장면에서는 이러한 잔상을 지워내기는 쉽지 않다. 70년대 '새마을 운동' 시대를 돌아보니 윤한솔 연출 방식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은 국민 노동의 착취와 시대의 폭력성, 유신독재, 그리고 '때려잡자 빨갱이'를 외치던 70년대의 반공사상이란 점을 전달하고 있다.

<활화산> 공연이 정치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것은 차범석 희곡을 각색하지 않은 채로 윤한솔 연출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점인데, 희곡을 객관적으로 감각시키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웹툰처럼 형상화된 은밀한 비유와 연극적인 장치로 새마을 운동의 시대를 소환할 때 무대의 잔상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은 불편함이었다. 국립극단이 차범석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화된 이번 공연은 '활화산'을 연출적으로 객관화시키려고 했어도 '프로파간다' 새마을 연극을 '프로파간다' 적인 연출 방식으로 냉소하고 조롱하는 잔상은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이노인의 정진각, 심씨의 백수련 선생의 화술과 연기는 무대를 중화시키는 활화산이었다. 배우 구도균은 <붉은 낙엽>, <정의의 사람들>, <성난 파도 속에 앉아있는 너에게>, <겟팅아웃>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음에도 <활화산>에서 상석으로 분한 연기가 감각의 절정을 보여준다.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기예술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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