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은진 송씨 여인에게 효를 묻다

최병호 전 경북도 혁신법무담당관

최병호
최병호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효를 인간이 지녀야 할 최고의 가치이자 덕의 근본으로 여겨 왔다. 이 효 사상은 전통 미풍양속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삶 속에 녹아 그 맥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과 핵가족화로 효의 개념은 허물어지고 이를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나는 등 효 사상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정신적문화적 황폐는 치유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으며 효가 무너진 자리에 전통은 매몰되고 퇴폐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민낯이다.

이러한 각박한 세태 속에서도 7년의 긴 세월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한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은진 송씨 일가의 송희자(69·서울) 여사이다. 그녀가 10세 때에 아버지는 2녀 1남을 남겨둔 채 지병으로 이 세상과 이별했다. 그녀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온갖 궂은일을 해 가며 어린 자식들을 키운 장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85세가 되던 해에 치매에 걸렸다. 그녀의 정성스러운 간병에도 불구하고 88세부터는 병세가 점차 악화되어 말도 못 하고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와상 환자의 몸이 되었다. 의사도 어머니의 병세가 위중하다며 치료를 포기했지만 그녀는 집에서 의료시설을 갖추고 대소변을 받아 가며 어머니 곁을 지켰다. 밤을 지새울 때도 많았다. 또한 병간호를 위해 전문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그녀는 임종을 맞는 어머니에게 속삭였다. "엄마,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로 태어날 거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고 여기까지 성장시켜 주셔서 고마워. 앞으로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로 잘 살아갈게. 걱정과 염려, 무거운 짐은 다 내려놓아. 이다음에 천국에서 만나. 엄마, 사랑해." 이 마지막 작별 인사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고 큰 울림을 주었다. 어머니는 지난해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어머니와 이별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리움의 세월을 살고 있다.

우리가 일생 동안 맺는 숱한 인연 중에 가장 소중한 인연은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이다. 그녀의 효심은 천성적으로 착한 심성, 맏이로서의 무게감과 책임감, 그리고 기독교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이다.

평소 그녀는 어머니가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내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는 효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인 철학이 있다. 그 철학은 자식의 희생 없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희생은 자식으로서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긴 세월을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어머니를 봉양하고서도 그것도 모자라고 부족해서인지 또다시 봉양할 상황이 오더라도 결코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녀는 어느 이름 모를 한 송이 꽃처럼 세상에 물들지 않고 때 묻지 않은 깨끗함과 순수함, 변하지 않고 꺾이지 않는 곧은 마음 그리고 깊고 진한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칭송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우리의 효는 조상 전래의 가장 위대한 사상이자 계승 발전시켜야 할 민족 문화유산이다. 우리는 7년의 긴 세월 동안 한 편의 감동의 드라마를 써 내려간 송 씨 여인의 효 사상을 거울 삼아 부모가 더 늙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효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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