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럽도 '행정 통합' 화두…지방에 최대한 권한 부여

프랑스, 대구경북 통합 롤모델로 주목
영국 '지방 권한 강화'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 이상 이어져 온 지방 행정체제를 개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단순하게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양적 통합이 아니라, 통합 이후 효과를 낼 수 있는 질적인 통합이 요구된다. 2026년 출범을 목표로 재추진 되고 있는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광역 대 광역 통합 모델로, 대한민국에서는 그간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3년 전 처음 시도한 행정통합 역시 시·도민 의견 수렴 부족, 하향식 통합 추진 등의 이유로 결국 실패했다.

유럽 국가들은 한국보다 약 200년 이상 앞서 근대적 의미의 공화 정치 체제를 구축했다. 또 불과 30년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무늬만 지방자치제'와 달리 지방에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한 지방자치제가 정착돼 있다. 유럽 국가들의 행정체제 개편 논의 과정을 살펴보고,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방향성도 진단해 본다.

◆프랑스, '지방 행정통합' 롤모델

프랑스의 행정체제는 한국의 광역시·도에 해당하는 레지옹(Region), 기초지자체인 데파르트망(Département), 최소단위 행정구인 '코뮌(commune)'으로 구성돼 있다.

오랜 기간 중앙집권적 국가 형태를 유지해 온 프랑스는 여러 단계에 걸쳐 지방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행정체제 개편을 추진했다. 2003년 개헌을 통해 헌법에 지자체의 자치권을 명시했다. 지자체가 독립적으로 정책을 수립·실행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지방 분권의 가치가 명문화 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프랑스는 3단계의 행정 체계 전체를 손봤다. 한국의 읍·면·동에 해당하는 코뮌은 2010년부터 10년에 걸쳐 통합이 이뤄졌다. 코뮌 통합 이전 프랑스에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3만6천여개의 코민이 존재했으나 2천508개의 코뮌을 774개로 통합했다. 인구 감소와 행·재정적 자원 부족으로 독립 행정 수행에 어려움을 겪던 코뮌들은 통합을 통해 규모를 키웠다.

시·군 단위인 데파르트망 통합은 상대적으로 진척을 내지 못했다. 이 또한 인구 감소나 재정이 열악한 지역을 중심으로 시도됐으나, 주민의 정체성 문제나 정치적 저항 등으로 쉽지가 않다. 성공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건 2021년 알자스(Alsace) 지역의 오 랭(O-Rhin)과 바 랭(Bas-Rhin) 두 데파르트망을 통합해 알자스 유럽 메트로폴리탄 공동체(Collectivité Européenne d'Alsace)가 출범한 것이다.

대구경북 통합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레지옹 통합은 2016년 1월 기점으로 이뤄졌다. 한국의 수도권에 해당하는 일드프랑스((Île-de-France)등 6곳을 유지하는 대신 16개 레지옹을 7개로 통합했다.

역사적으로 한 지역이던 상 노르망디(Haute-Normanie)와 바스 노르망디(Basse-Normandie)가 통합한 노르망디(Normandie) 사례는 대구경북 통합과 유사하다. 통합을 통해 지역 정체성 강화와 함께 주력 산업인 관광·농업·해양 부분에서의 협력 증대로 이어졌다. 통합 이후 르아브르(Le Havre)와 캉(Caen) 등 주요 항구 도시가 통합 노르망디의 경제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오베르뉴-론알프(Auvergne-Rhône-Alpes) 레지옹 통합은 오베르뉴(Auvergne)의 약점으로 여겨지던 경제·산업 부문을 보완한 통합으로 여겨진다. 론알프(Rhône-Alpes)는 리옹(Lyon), 생테티엔(Saint Stephen)을 중심으로 화학제품, 금속가공 등 다양한 공업이 발달한 반면, 오베르뉴는 치즈나 축산·곡물 생산 등이 주요산업이었다. 통합 이후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권이 형성됐으며, 현재는 관광, 농업, 첨단기술 산업 등에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영국, '지방정부에 강한 자치권' 부여

영국은 산업 혁명 이후 수도 런던의 급격한 도시화·산업화가 이뤄졌다. 런던 인구가 급증하면서 영국 정부는 1965년 대대적 개편을 통해 '대런던(Greater London)'을 설립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도 런던을 확장한 것인데 대런던의 면적은 1천572㎢로 서울의 2.5배에 달한다. 대런던은 32개의 자치구(Boroughs)와 런던시(City of London)와 지역을 총괄하는 대런던의회(GLC)로 구성됐다.

이후 GLC는 폐지됐고, 교통·주택·도시계획·소방 등 GLC의 광역행정 기능은 32개 개별 자치구와 중앙 정부로 이관됐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지방행정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광역행정 공백과 도시 문제 등이 발생하면서 2000년 대런던청(GLA)를 설립해 '런던시장'과 '런던의회' 체제를 구성했다. 시장은 광역 행정을 총괄하고, 의회는 시장을 감시·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런던 개편과 함께 영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지방 분권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에 자치정부와 의회를 설립했다. 전통적으로 3개 왕국의 연합체제인 영국은 각기 다른 민족성·역사 등을 갖고 있는 각 지역에 대해 교육, 보건, 교통 등 주요 정책을 자율적으로 수립해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또 잉글랜드 내에서는 일부 지역에 대해 '단일 권한 당국(Unitary Authorities)을 도입해, 강한 자치권을 부여하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도 추진했다.

2010년대에는 주요 도시와 지역에 '대도시 시장제(Metro Mayor)'를 도입했다. 런던 외에 맨체스터, 리버풀, 버밍엄 등 주요 도시에 도입된 이 제도는 지역 주민이 선출한 시장이 지역의 주요정책을 결정하도록 했다. 대도시 시장은 교통, 주택, 경제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율적으로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런던 대확장 이후 영국은 반세기 넘게 지자체 권한 강화와 효율성 증대를 위해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재정적 부담이나 정치적 갈등 등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끝내 무산되기는 했으나 주민투표까지 이뤄졌던 스코틀랜드 독립 시도를 들 수 있다. 주민투표 결과 통합 찬성 여론이 과반에 미치지 못해 끝내 독립은 무산됐다.

이후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전 영국의 지방 행정 체제를 강화하고 자치권을 확대하는 등 분리·독립 여론을 달래왔다.

◆스페인, '지역 간 협력' 강화

스페인은 17개의 자치지방(Comunidades Autónomas)과 2개의 자치 도시(Ciudades Autónomas)로 나눠져 있다. 각 자치지방은 헌법에 따라 자치권을 부여받고 있으며, 교육·보건·주택 등 분야에서 자율적으로 정책을 수립해 집행할 수 있다.

스페인의 지방 행정 체제는 국가(Estado)-자치지방-주(Provincias)-시(Municipios)-읍·면(Parroquias) 등 5단계다. 이 같은 복잡한 구조로 행정 효율성이 저하돼 통합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성과를 이뤄내지는 못했다.

다만 역사적·문화적 밀접한 관계를 지닌 지역 간 협력을 강화하는 형태로 단계적 통합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바스크(Vasco)와 나바라(Navarra) 두 도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재생 에너지 산업이 발달한 나바라는 첨단 제조업을 갖춘 바스크와의 협력을 통해 지역의 산업단지와 기술 혁신을 이뤘다.

또 지역 기업의 성장·일자리 창출, 지역 대학·연구기관 간 공동 연구프로젝트 진행, 연결성 강화를 위한 교통 인프라 구축 등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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