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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칼럼] 법의 탈을 쓴 무법적 폭거 ‘이재명 방탄법’

정경훈 논설주간
정경훈 논설주간

유권자 1인 1표제 보통 선거를 기반으로 한 의회 체제하에서도 독재는 가능하다. 그것은 외양은 의회 민주주의이지만 실상은 '합법적 독재'다. 이는 기존 법률을 개폐하거나 새로운 법률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국민의 대표들의 표결이라는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합법적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법의 지배'(Rule of law)의 허울을 쓴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법이 지배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헝가리 최장수 총리인 빅토르 오르반이다. 그는 2010년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피데스당이 52.7% 득표로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자 장기 집권을 위한 법률 '정비'에 착수했다. 그 첫 수순은 사법부 장악이었다. 헌법을 수정해 헌법재판소 판사를 11명에서 15명으로 늘리고 늘어난 4자리를 자신의 측근들로 채웠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법률을 바꿔 대법원장 자격 조건으로 '헝가리 내 사법부 경력 5년 이상'을 신설했다. 이는 독자적 행보로 눈엣가시였던 안드라스 바카 대법원장을 축출하기 위한 공작이었다. 바카는 유럽 인권재판소에서 17년간 근무한 권위 있는 판사였지만 헝가리 내 판사 경력은 5년이 안 됐던 것이다. 오르반의 의도대로 바카는 물러나야 했다. 이어 오르반은 판사 정년을 70세에서 62세로 낮추고 62세 이상 판사는 즉각 물러나도록 법을 바꿨다. 이에 따라 모두 274명의 판사가 물러났다. 이 법은 나중에 유럽연합의 압박으로 폐기됐지만 물러난 판사는 복직하지 못했다.('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렛) 그 자리를 어떤 판사가 메웠을지는 짐작이 간다.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도 이에 못지않다. 오르반의 권력 강화를 위한 피데스당의 도구가 법이었듯이 7개 사건 11개 혐의로 4개의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적 방어를 위한 민주당의 도구도 법이다. 수사 검사를 무고죄로 처벌한다는 법, '특정인'을 '표적 수사'하지 말라는 법,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한 검사를 수사한다는 특검법, 수사와 판결에서 법을 왜곡한 판검사를 고발 처벌한다는 법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들 법률 조문에 '이재명'이라는 글자는 어디에도 없지만 '이재명 방탄법'임은 누가 봐도 안다.

이재명 1인을 위한 법이다 보니 코미디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도 버젓이 법이란 이름을 가진다. '표적 수사 금지법'이 그런 예다. 이는 수사의 본질에 대한 의도적 외면이다. 수사는 본질적으로 '특정인(들)'에 대한 '표적 수사'다. ('표적 수사'라는 표현이 거부감이 있다면 '집중 수사') 범죄가 의심되는 인물을 특정해 첩보와 정보를 수집·검증해 사실이거나 그럴 가능성이 확실한 것으로 판단되면 혐의로 전환하는 것이 수사다. 특정하지 않으면 수사 자체가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표적 수사 금지법'은 이재명과 그 공범이라는 '특정인'을 수사하지 말라는 소리다.

이런 법들은 '무엇이 법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법철학은 법률의 속성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일반성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적 행동 규칙이 법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추상성이다. 모든 사람들의 특수한 이해관계에서 중립적이어야 하는, 바꿔 말하면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한) 목적이나 동기를 내포하지 않은, 탈목적적인 사회적 행동 규칙이 법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재명 방탄법'은 이들 원칙을 모두 배척한다. 범죄 혐의자에 대한 수사와 재판의 방해라는 목적과 동기(추상성의 파괴), 이를 통해 모든 범죄 혐의자에게 적용돼야 하는 사법적 판단에서 이재명을 제외(일반성의 파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방탄법'은 법이라고 할 수 없다. 국회가 만든다고 무조건 법이 될 수 없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저서 '자유의 헌법'(1960)에서 이를 예리하게 갈파(喝破)했다. "입법부가 정한 법이면 무엇이든, 이런 법 아래에서 정부가 내리는 명령은 무엇이든, 이를 법이라 부르는 것, 이런 것만큼 웃기는 코미디는 없다. 이는 무법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하이에크, 자유의 길', 민경국) 민주당은 듣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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