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무더위가 시작됐다. 더위에 습도가 개입하면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불쾌지수를 직설하면 짜증이다.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짜증'은 1893년 작이다. '짜증'은 한 장의 악보로만 이루어진 곡으로, 사티 사후에 존 케이지가 발견하여 본격적으로 알렸다. 사티의 작품 중에는 '짐노페디'(Gymnopédies)를 비롯해 '당신을 원해요'(Je te veux) 등 대중적인 공감을 얻어낸 곡들도 있다. 작곡가는 평범하지 않은 피아노곡 '짜증'에 대해 특별한 제안을 했다. 이 곡을 840회 연속으로 연주하자는 것이다. 악보를 보면 증음정과 감음정으로 진행하는 저음의 선율이 이어지고 이 주제 위에 공간을 차지하는 불협화음이 차례로 얹히는 구조이다. 사티는 이 곡을 느리게 연주하며 현대문명의 불안과 피로, 강박, 무의미한 소음의 연속 등을 표현한다.
'짜증'은 느긋한 반복으로 리듬을 이룬다. 그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 물과 공기의 흐름, 다람쥐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처럼 특별한 심미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진 화성 또한 중력처럼 자연스럽고 느낌이 없는 것이어야 했다. 그는 '짜증'에 대해 "음악에 관심을 두지 말고 그곳에 음악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를" 요구했다. 듣지 말 것을 요구하는 그의 음악은 원래부터 거기 있던 붙박이 같은 '가구 음악'(Furniture music)의 시도이다. 가구 음악은 음악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음악임이 드러나지 않는 음악, 눈에 띄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없는 듯한 음악이다. 음악을 제거하고자 하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짜증'은 미니멀리즘 음악을 대변한다. '짜증'은 가구처럼 백색소음처럼 한쪽 구석에서 침묵의 배경이 되어 분위기를 중화하고 어색한 시간을 다스리는 역설의 음악, 부조리의 음악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짜증'은 840회에 달하는 릴레이 연주를 통해 음악의 본질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탐구를 한다. 교대하는 연주자들의 자유로운 해석이 이어지면서 극단적인 단조로움과 지루함에 도달하려는 것이 주요 의도이다. 이 지루함에 반응하는 청중의 태도나 소음 또한 '짜증'의 의도에 포함된다. 반복은 리듬을 구성하고 구조의 질서에 기여하지만 극단적인 나열은 시간적, 공간적 질서를 무너뜨린다. 관객은 지루한 소리와 장황한 시간을 동시에 들으며 산만한 실험을 체험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소비 체계의 과잉을 음악으로 느끼며 이 시대의 진정한 리얼리티를 경험한다. 아마도 객석에는 주체가 배제된, 영혼이 빠져나간 객체들이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처럼 늘어져 초월적인 광경을 연출하고 있을 것이다.
'짜증'은 충격보다는 편안함을, 형식이나 내용보다는 본질을, 아름다움보다는 아름답지 않음을 추구한다. 그리고 경험의 극대화보다 경험의 보편화를 추구한다. 음악 본연의 극적인 긴장이나 변화는 없지만 진부한 삶에 길들어진 관객을 깨우치는 신선함이 있다. ''짜증'은 당대의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관통하는 소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이러한 압박에 대응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음악적 체험의 공간을 제공하고 여기에 가능성의 음악이 개입하면서 관객에게 더 많은 것들을 체험하게 한다.
같은 곡을 여러 연주자가 반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성과 몰개성의 문제, 여기에 개입하는 음악과 소음은 왜소화된 존재와 파편화된 자아 같은 주변성을 전면화한다. '짜증'에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익명의 인간들과 음악임을 부정당하는 익명의 음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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