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한국의 미래, ‘전(錢)박사’에게 물어라.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한국은 지금 중국의 C커머스 업체 테무, 알리의 공습에 난리가 났다. 불과 1년여 만에 두 회사의 가입자 수는 한국 최대 업체 가입자 수의 50%에 육박한다. 중국 공급과잉의 수출이다, 유해 물질 범벅이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는 소비자들에게 씨알도 안 먹힌다. 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안전 규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가 3일 만에 번복하는 일도 벌어졌다. 돈은 애국심이 없다.

중국의 C커머스 업체가 초저가로 소비시장을 장악하고, 무료 배송으로 물류 유통을 장악하고 난 뒤가 큰일이다. 경쟁자를 다 죽이고 나서 소비 가격을 올리면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소비자의 몫이다. 중국이 전 세계 초저가 공장이 된 것은 40년도 넘었는데 지금 다시 중국이 초저가품을 수출한다고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문제는 한국이다. E-커머스는 중간상을 없애 소비자와 생산자의 이익을 극대화시킨다는 얘기를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지만 그간 한국의 유통 구조는 바뀐 게 없었다. C-커머스가 등장하면서 중간상을 배제한 진짜 C2M(Customer to Manufacturer)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농산물 수입을 확대한다고 물가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장관까지 나서서 해명하지만 최근 25년간 농산물의 유통 마진을 보면 1999년 38%에서 2022년 50%로 오히려 더 높아졌다. E-커머스를 활용해 유통 구조만 제대로 개선했다면 농산물 가격을 50%나 내릴 수 있었는데 그간 떠들기만 했지 실행은 없었다.

모든 것이 공급과잉인 시대에 창조적 파괴를 하는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혁신의 진짜 지표는 주가다. 주가가 올라가면 진짜 혁신한 것이고 세계 최고, 최초 어쩌고 떠들어도 주가가 제자리면 가짜 혁신이다.

전쟁과 증시는 친구다. 미 서부의 골드러시 때 진짜 떼돈을 번 사람은 노다지 캐는 데 필요한 청바지와 곡괭이 장사였다. 미중이 AI 전쟁을 벌이면서 새로운 AI 골드러시가 벌어졌다. AI 전쟁 시대 유일한 AI 무기상인 엔비디아 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미국 IT의 전설인 M/S와 Apple을 제치고 시총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이젠 엔비디아가 아니라 갓비디아로 승격한 엔비디아의 선택을 받은 파운드리에서 대만의 TSMC와 HBM에서 한국의 하이닉스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선단의 GAA 기술을 가지고 있고 DRAM에서 세계 1위인 삼성전자는 HBM에서 엔비디아의 품질 인증을 통과하지 못해 주가가 영 신통치 않다. HBM에서 뒷북친 삼성전자, 뒤늦게 CEO를 바꾸고 새로운 팀을 짜고 난리법석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아직 싸늘하다.

돈에는 이념도 사상도 좌도 우도 없다. 돈 되면 투자하는 것이고 돈 안 되면 언제든 돌아서는 것이다. 그래서 냉정한 돈의 흐름을 주의해야 한다. 미국으로 '주식 이민' 가고 자녀에게 물려줄 주식을 삼성전자에서 '미국 주식'으로 바꾸는 1천400만 동학 개미들의 투자 패턴을 개미들의 헛발질이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온 세상의 거짓은 돈이 정확히 판결한다. 정부가 IMD가 평가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이 2023년 대비 8단계 상승해 67개국 중 20위로 1997년 평가 대상에 포함된 이래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 외국인은 왜 투자하지 않는 것일까? 답은 GDP 순위에 있다. 국가경쟁력은 8단계나 올랐다지만 IMF의 국가별 GDP 순위는 2020년 10위에서 2024년 14위로 추락했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가들을 오라고 하는 밸류업(Value-Up)을 부르짖기 전에 한국 개미들의 탈한국을 되돌아봐야 한다. 한국인도 한국 시장을 버리는데 외국인이 올 이유가 있을까? 2002년 이후 세계 평균 성장률을 못 따라가는 나라 한국, 5년마다 성장률이 1%씩 낮아지는 나라에 투자하고 싶을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지금 한국은 Value-Up이 아니라 Growth-Up이 더 급하다.

패권이 어디로 가는지는 황금박사에게 묻고, 세상이 어디로 돌아가는지는 '전(錢·돈)박사'에게 물어보면 답이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상속세율, 주식 차익에 고율 과세 하겠다고 위협하는 나라에 투자할 마음이 생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돈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정치와 정부는 결국 망한다. 돈이 떠나면 마음도 떠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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