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못 믿을 정부 행정전산망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가 '세계 최고의 디지털정부'라고 내건 구호를 거둬들여야 할 판이다. 국가 행정전산망이 최근 2년 사이 짧게는 서너 달 간격으로 오류를 일으키거나 먹통 사태를 빚고 있다. 새로운 전산망을 도입한 뒤 시스템 안정화 작업을 제대로 확립하지 않고 섣부르게 운영에 나섰다 오류나 장애가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전산망 운영 기관의 전문성과 운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올해 2월 개통한 지방세와 세외수입 업무를 처리하는 '차세대 지방세입정보시스템'의 경우 개통 직후부터 한 달 넘게 오류가 발견됐다. 행정안전부는 보완을 했다고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재산세 등 세액이 제대로 맞지 않는 등 시스템이 불안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스템은 행안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예산 2천억원 이상을 모아 3년여 동안 사업단을 꾸려 준비해 왔는데, 각 지자체가 시스템 운용이 불안정하다고 개통을 미룰 것을 요구했는데도 강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 한 세무 공무원은 "7월 재산세 고지서 발급을 앞두고 세액 등을 점검 중인데 오류가 잦다. 6월 자동차세는 세액 계산이 크게 복잡하지 않아 잘 넘어가고 있지만, 7월 말 재산세 납부를 앞두고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온라인 민원 서비스인 '정부24'에서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가 담긴 민원 서류가 대거 발급되는 등 1천200여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행안부는 지난 4월 초 정부24에서 성적·졸업증명서 등 교육 민원 관련, 법인용 납세증명서 등 국세 민원 관련 서류를 발급할 때 증명서 등이 잘못 발급되는 오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보름가량 잘못 발급된 증명서는 모두 1천223건. 타인 명의 주민등록번호 등이 담긴 채 발급된 교육 관련 증명서가 646건, 사업자등록번호 대신 법인 대표 성명과 주민번호가 노출되는 등 잘못 발급된 납세증명서가 587건 등이다. 행안부는 한 달가량 쉬쉬해 오다 언론의 확인 요청 뒤 "잘못 발급된 민원 서류는 즉시 삭제했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했다"는 요지의 자료를 냈다. 이 시스템은 지난해 11월 먹통이 됐다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여태 뚜렷한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정부 행정전산망 사고가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있는 데다 같은 시스템에서 오류가 반복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개통한 교육부의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오류가 속출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전국 지자체 공무원이 사용하는 전산망 '새올' 먹통 사태, 주민등록 통합행정시스템, 조달청의 나라장터시스템 등이 잇따라 장애를 일으켰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문제가 발생할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다.

정부는 행정전산망 사고를 두고 네트워크 장비 이상이었다고 해명했다, 엉뚱한 데이터가 출력됐을 때는 코딩 오류라고 하는 등 사고 뒤 설명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정부는 행정전산망 사고 때마다 명확한 원인 규명 없이 외주 업체 탓만 해서는 곤란하다. 시스템의 신규 개발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현재 운영 중인 시스템의 안정화 작업에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 또 국가 정보통신망의 책임 운영 기관인 행안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전문성과 시스템 관리 역량도 제고해야 한다. 결국 시스템 도입 전 사전 점검을 철저히 하고 안정화를 확립한 뒤 운용해야 한다. 행정전산망 관리·운영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는 바로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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