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을 놓고 시작된 의정갈등이 4개월째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사와 정부의 고위관료 두 집단 모두 전문가 집단으로 서로의 논리를 주장하며 한치의 양보 없는 대치를 지속하고 있다. '의료 대란'이라고 불리는 정책갈등이 어떤 형태로 해결이 될지 현재로선 전망하기 어렵지만, 이로 인한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한국의료의 심각한 질 저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전공의가 의대증원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나기 시작한 지난 2월 19일은 4년전 대구에 31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뒤 응급실이 폐쇄되었던 2월 19일과 정확히 일치한다. '코로나 시대' 의과대학 교육은 파행을 거듭했다. 대면수업은 이뤄지지 못했고, 임상실습도 이론수업으로 대체되었다.
지금 의사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의대생들이나 병원을 떠나 복귀하고 있지 않는 수련의, 전공의들은 모두 코로나19 시대에 의과대학을 다니거나 수련을 받았던 '코로나 세대'이다. 특히, 의대생의 경우 올 한해 겨우 수업이 정상적으로 재개되었는데 다시 학업 중단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정부는 학업에 복귀하기만 하면 의사가 되는 '구제의 길'을 열어 주겠다고 제안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들 학생들을 면담해 보면 스스로가 "제대로 된 의사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휴학을 하더라도 이 사태가 해결된 뒤 제대로 공부해서 '제대로 된 의사'가 되길 원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증원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의과대학과 교수들이 떠 안게 되었다. 의과대학 교육은 1~2년에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향후 6년간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과밀학급 수업이 진행될 것이다. 이들이 졸업한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들이 적절한 수련을 받을 수 있는 수련기관의 부족으로 졸업 후 4~5년간 이어질 수련의, 전공의 과정이 파행을 거듭할 것은 자명하다. 즉, 지금의 의정갈등의 결과로 적어도 한국의 의학교육은 향후 '잃어버린 10년'을 겪게 될 것이다. 그나마 10년만에 해결되면 다행이다.
교육의 문제는 닥쳐올 문제라고 치더라도 대학병원의 구조개혁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이다. 정부는 국립대 교수 1천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오히려 현직 의대교수들은 진료현장을 떠나고 있다. 특히, 지역의 내과, 외과, 응급의학과와 같은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국립대 교수들이 사직하면서 필수의료의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들은 '저임금, 고강도 업무'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10년이상 필수의료를 지탱해온 '허리' 교수들이다. 이들의 이탈로 지역의 필수의료는 '허리'가 부러졌다. 서울은 어떨까? 지금은 빅5병원의 전임의가 복귀하면서 최소한의 진료기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임의가 떠나는 내년 3월이 되면 혼란은 불가피하다. 벌써부터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젊은 교수들을 중심으로 대학병원을 이탈하는 '엑소더스'가 시작될 조짐이다. 이들 교수들의 이탈은 대학병원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향후를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의정갈등은 의료 '대란'이라기 보다는 '소란' 수준이다. 진정한 '의료 대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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