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몇 발자국만 가면 커피 향이 풍겨온다. 옷을 챙겨 입을 필요도, 까치집 머리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쓸 필요도 없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맞춰 원하는 잔도 선택 가능. 아메리카노를 마시다 비엔나 커피가 생각난다면? 휘핑크림을 찾아서 얹으면 된다.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오래 앉아 있더라도 눈치 볼 필요 없다. 답답한 이어폰을 꽂는 대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흥얼거려 보라. 필(feel)에 취해 큰 소리로 따라 불러도 아무 상관 없다.
여기는 바로 '홈카페'. 길어지는 고물가와 고급화된 입맛으로 직접 자신의 취향에 맞춘 커피를 저렴히 즐기려는 수요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연간 커피 소비량만 '405'잔에 달하는 한국인. 돈은 아껴야 하지만 커피는 마셔야겠기에 아예 집으로 카페를 들여 놨다. 그리고 이들의 홈카페는 여느 유명 카페 못지 않은 내공을 자랑한다.
◆인테리어부터 내 맘대로
이사 갈 때, 혹은 인테리어 단계부터 홈카페를 구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구 한 인테리어 업자는 "신축 아파트를 보면 냉장고를 두는 자리가 두 개씩 나오는데 그 중 한 공간을 홈카페로 많이 꾸미는 추세다"라며 "베란다 확장을 많이 하지만 홈카페를 위해 일부러 베란다를 살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식물을 가득 놓는다든가, 우드 선반으로 포인트를 준다든가, 테이블 위에 예쁜 조명을 단다든가. 홈카페는 하나하나 꾸며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홈카페를 조성하는 데 드는 비용은 천차만별. '가찌아' '드롱기' '일리' 등 이탈리아산 에스프레소머신과 해외 유명 찻잔, 인테리어 소품, 가구까지. 욕심을 내면 끝도 없다.
홈카페에 'OO 다방' 이라는 이름까지 붙인 이OO 씨는 "카페를 정말 많이 다녀봤는데, 그때 봤던 것들 중에 내가 편했고, 좋았던 것들로만 채워진 내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며 "내가 원하는 카페는 아늑함이었다. 그래서 요근래 비싼 1인용 쇼파 하나도 구입했다"고 말했다.
홈카페 10년 차라는 우OO 씨는 나름의 인테리어 꿀팁을 내놨다. "커피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홈카페를 만들어야겠다 결심을 했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좋다는 것은 다 사들였다. 에스프레소 머신부터 거품기, 얼음정수기까지. 하지만 매번 세척을 해야하고 관리가 까다로운 머신 때문에 오히려 집에서 커피를 안마시게 되더라"며 "드리퍼나 프렌치 프리스, 모카포트 등 홈카페 도구는 다양하다. 이 중 내게 맞는 것이 뭔지를 잘 선별해서 구매하기 바란다"
하지만 이것 또한 취향차. 미니멀라이즈(최소화·단순화)를 추구하는 홈카페도 많아졌다. 커피 주전자와 드립 도구, 커피 원두, 미니오븐 등 최소 5만원에서 10만원 안팎의 저렴한 비용으로 가볍게 홈카페를 조성하는 것이다. 특히 20~30대 젊은 층 사이에서는 복잡한 제조 과정 없이 캡슐 하나를 넣어 간편하게 커피를 뽑아내는 10만~30만원대 소형 캡슐형 커피머신만 갖춘 '간편 홈카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유튜브 보고 배워요!
홈카페 레시피를 공유하는 유튜브 채널들도 많아졌다. 자몽에이드, 레몬에이드의 재료가 되는 수제청 만드는 법부터 라떼 아트 비법을 공유하는 영상까지. 홈카페 초심자들은 이들을 통해 무럭무럭 성장한다. 홈카페를 9년 째 운영중인 김OO 씨는 "2012년 스타벅스 오늘의 커피의 케냐 AA를 접하며 스페셜티 커피에 눈을 뜨게 됐다.
이후 2015년 방 한켠에 컨벡스 CMA201A를 들인 것이 홈카페의 시작이었고, 지금은 컴프레소와 드리퍼를 함께 하고 있다"며 "나의 홈카페 성장은 유튜브 채널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가 현업이 아닌 사람에게 이러한 교육 영상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생두 회사나 커피 프렌차이즈 업계에서 소개하는 레시피 영상도 눈길을 끈다. 레시피 비법은 가족에게도 공유하지 않는다는게 국룰 아니던가. 그만큼 레시피 공유는 자기 자산의 영역이라 해당 영상에는 감사한 마음을 담은 댓글들이 특히 잇따른다. 특히 홈카페 운영자들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몰랐던 꿀팁을 얻기도 한다. 한 커피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 유OO 씨는 "3년 전까지는 정수기 물로 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유튜브를 보고 생수로 추출한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이 외에도 영상에서 '커피에서 왜 신맛이 날까' '커피 향미가 잘 느껴지지 않는 이유' 등을 설명해준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며 "메뉴에 따라 우유를 달리 사용하는 것도 영상을 통해 알았다. 우유 34종을 비교하는 영상을 통해 더 풍성한 라떼나 밀크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는 수많은 변수가 개입한다. 커피 원두의 종류와 분쇄도, 물의 온도, 내리는 사람의 숙련도 등에 따라 미묘하게 커피 맛이 달라지는 것. 변수들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맛과 향은 내 취향을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이런 매력에 점점 더 많은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이 홈바리스타를 위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여들고 있다.
◆남은 재료가 홈카페 메뉴 되기도
"얼마전엔 녹차와 망고를 섞어 봤다. 망고를 으꺠서 컵 가장 아래에 깔아주고 녹차가루와 우유를 섞은 것을 그 위에 올린 것이다. 이거 참 별미더라.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레시피, 유명 카페의 유명 메뉴. 이를 따라하는 것도 좋지만 나만의 메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홈카페의 가장 큰 장점이다"
홈카페 메뉴를 위해 일부러 장을 볼 필요는 없다. 이른바 '냉털(냉장고에 있는 남은 재료들을 털어 먹는다는 신조어)'로 여러가지 메뉴를 만들어 보면 되기 때문. 실제 홈카페 사장들은 서로의 레시피를 아낌없이 공유한다. '냉장고를 뒤지다 보니 이런 메뉴까지 나왔다'는 게시글 부터 '이 조합은 절대 하지마라' 라는 경고도 서슴치 않고 나눈다. 이는 손님 유치를 두고 경쟁하는 사업주가 아닌, 홈카페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홈카페에는 음료는 물론 디저트메뉴까지도 다양하다. 처음에는 커피만 내려먹자 생각했다가 디저트를 위해 베이킹 도구를 샀다는 증언도 속출한다. 최근 제과제빵 자격증을 땄다는 이OO 씨는 "커피에 어울리는 빵을 매번 사다보니 그것도 돈이더라. 그래서 나의 홈카페는 요즘 유행하는 디저트 카페로 만들어 보자 싶었다"며 "아메리카노에는 달달한 브라우니, 고소한 라테에는 신선한 루꼴라 샌드위치, 청량한 에이드 종류에는 목 막히는 스콘. 내가 원하는 대로 그때그때 조합해서 만드니 재고 걱정도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귀찮게 무슨 홈카페야, 남타커(남이 타주는 커피)가 최고지!" 라고 외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당신도 이미 홈카페 주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 엄마가 갈아 주는 토마토 쥬스, 남편이 내려주는 따뜻한 커피, 아이를 위해 정성껏 만든 수제청 에이드. 이 모든 것 또한 홈카페가 아닐까.
인테리어부터 장비까지 완벽하게 갖춘 것이 홈카페의 전부가 아니다. 오늘 퇴근길 사랑하는 이에게 문자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내 홈카페에 한번 놀러와! 맛있는 커피 만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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