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누가 도둑인가?

박성현 사회부 기자

박성현 사회부 기자
박성현 사회부 기자

국민의 혈세가 무한정 현금인출기로 전락하고 있다. 주인의 손을 떠난 돈은 서류 몇 장과 관계자들 간의 말 몇 마디를 거쳐 누군가에게 지극히 당연한 존재로 변모한다. 증액을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이던 이들은 향후 증빙을 요구받을 땐 한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내역을 숨긴다. 마치 그 돈의 주인이라도 된 듯.

대구 중구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해 존재하는 봉산문화회관을 두고 대대적인 감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매년 투입되는 예산은 늘어나는 반면 그에 마땅한 문화공연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봉산문화회관 관장이 허위로 출장 신청을 하고 개인 공연을 다닌 정황이 확인된 데 이어 직원들의 시간외근무 수당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의회에서 터져 나왔다.

중구청에 따르면 봉산문화회관이 소속된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으로 지급되는 예산은 매년 증가 추세다. 지난 2019년 8천만원을 시작으로 2020년 3억6천만원, 2021년 4억5천439만원, 2022년 3억9천597만원, 2023년 8억2천만원, 2024년 17억3천194만원이 지급됐다. 올해 예산 중 약 78%가 인건비에 사용됐다.

사람의 전문성이 중요하다지만 이를 고리로 일탈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봉산문화회관장으로 취임한 A씨는 취임 직후부터 이달 5일까지 관내·외로 63번의 출장을 다녀왔다. 이 중 3번은 신고된 출장 목적과 장소를 벗어나 개인 공연을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현재 봉산문화회관으로부터 매달 560여만원의 급여를 받고 있다.

직원들에게는 사실상 상한선이 없는 시간외근무 수당이 지급되고 있다. 김동현 중구의원에 따르면 봉산문화회관에 근무하는 공무원 6급 상당 직원 B씨는 지난달 급여 644만5천130원에 약 23%에 달하는 154만4천390원을 시간외근무 수당으로 받았다. 직원들 중에서는 한 달에 최대 72시간 시간외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같은 정황에 대해 봉산문화회관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개인 공연을 간 사실을 인정한 관장 A씨는 "앞으론 주의하겠다"는 말로 모면하려 하고 있고, 직원들은 김 구의원의 지적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타 기관에 비해 직원 수가 적다 보니 자연스레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업무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시간외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과 지방의회를 통해 문제 제기가 이뤄졌지만 각종 의혹이 말끔히 해소될지는 의문이다. 봉산문화회관 관리감독 역할을 맡고 있는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은 그동안에도 자료 공개 요구에 답을 늦추며 사태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한 지 한 달 가까이 돼서야 부분적으로 공개하거나, 같은 자료를 여러 번 쪼개 공개하는 편법도 있었다.

지난주 봉산문화회관을 대상으로 행정사무감사가 진행되고, 관련 기사가 쏟아졌지만 재단 측의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재단 소속 직원은 "기사가 나온 이후 보도 자료 아이디어를 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하더라. 이슈를 이슈로 막는다는 것"이라며 "지난 월요일에 예정된 회식 자리도 축제 분위기에 가까웠다"고 했다.

사실상 재단의 대표 격인 상임이사는 지난 24일 직원들에게 '축제의 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자'는 내용이 담긴 자작시를 공유했다. 재단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구청이 감사를 하더라도 결국 징계 처분은 재단을 통해 결정된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없던 일'이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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