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 꿈꾸는 시] 이수진 '그 이름'

2009년 '현대시'로 등단

이수진 시인의
이수진 시인의 '그 이름' 관련 이미지.

〈그 이름〉

투명한 하늘이 연못에 머무는 늦은 오후

연못을 반쯤 걸어가다

내가 말했다

꽃창포가 많이도 피었네

오리가 풀잎에 올라타 하늘을 쪼고 있었다

그건 붓꽃이라고 하던데

그 사람이 밑줄을 긋듯 느리게 말했다

푸른 띠를 두른 앞산 그늘이 못 가까이 내려오고 있었다

서둘러 한 바퀴 더 돌다 보았다

붓꽃이라 쓴 나무 명패

어느 이름은 잠깐 열렸다 닫히기도 한다던데

그 이름은 어느 시간 어느 공간으로 나가는 길이었을까

저녁을 향해 오는 길들이 환해지고 있었다

발걸음이 가픈 호흡으로 우리를 밀고 있었다

이수진 시인.
이수진 시인.

<시작 노트>

봄 뜰 앞, 낚시 의자에 앉은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내 이름 길남이는 원래 죽은 내 오빠 이름이야. 오빠가 난지 이태 만에 죽었거든. 내가 태어나 엄마 젖 먹을 때 엄마가 나를 길남이라 부르며 그렇게 울었대. 내 이름은 원래 순남인데, 아버지가 이태 지나 출생 신고하러 가서는 면사무소 앞에서 한나절을 서성이다 그냥 돌아오고 말았데. 내 이름은 순남인데 ..." 까무룩 잠든 할머니 무릎 위로 어디서 왔는지 모를 노란 꽃잎 하나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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