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인류를 위한 간절한 속삭임

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지음 / 북하우스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인간은 어떤 공간과 장소에 놓이는가에 따라 삶의 환경이 달라진다. 지구가 온전하다는 전제하에 환경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지구와 한 몸이었다. 자연환경이 환경문제의 모든 것이 돼버린 시대. 가진 자에게 환경은 삶의 질과 결부되지만, 가난한 사람에겐 생존 조건의 문제이다. 그래서 환경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여야 한다.

꽃노래도 삼 세 번이라고 했다. 환경주의자들은 항변할 것이다. 악을 쓰고 소리 질러야 사람들이 쳐다보기라도 한다고, 좋은 말로 요청한 결과 지구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말이다. 아니, 당신들이 틀렸다. 조근 조근 부드러운 목소리로도 얼마든지 지구를 걱정하게 만들 수 있다. 김초엽의 '방금 떠나온 세계'가 그랬고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이 쓴 '시간과 물에 대하여'도 그렇다.

아이슬란드의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마그나손은 외침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란 걸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선언한다. 대다수 사람에게 백색잡음에 불과한 '기후변화'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은 너머, 옆으로, 아래로, 과거와 미래로 가는 것이라면서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쓰지 '않음'으로써 써야 한다. 뒤로 돌아감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다짐한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마그나손의 할아버지 세 분과 할머니 두 분의 이야기로 씨줄을 삼는다. 즉 1차 대전 직후에 태어나 대공황을 겪고 2차 대전과 20세기 굵직한 사건과 변화를 거쳐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가 슬라이드와 사진첩과 도록과 증언을 거쳐 생생하게 전해진다. 1951년 눈에 파묻힌 미군수송기를 파낸 할아버지와 아이슬란드 여성 최초로 행글라이딩 면허를 딴 할머니가 등장하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아흔네 살 증조할머니를 거쳐 저자의 2008년 생 딸이 증조할머니 나이가 되는 2186년으로 나아간다. 증손녀와 증조모 사이의 262년이라는 시간. 저자는 이 연결된 시간의 길을 가리켜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라 말한다.

조부모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큰바다오리 생존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양심의 가책은 큰바다오리를 죽인 사람이 아니라 그 후손의 몫이라고 경고한다. 사냥꾼은 그게 마지막 새들인지 알았을리 없을 테니까. 결국 이대로 가면 우리가 수치스런 조상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가족사에 환경과 지구가 날줄로 합류하는 순간이다.

우리세대의 임무이자 아이들의 임무인 핵심과제는 불을 끄는 것이며 대안은 없다고 말하는 마그나손. 그래서 얻는 대가는 지구에서의 삶, 자손들의 삶이다. 하늘을 날고 에이즈를 치료하고 달에 가려고 갈망한 것만큼 열렬히 해결책을 갈망하자고 요청한다. 시종 부드러운 어조를 유지하던 저자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1997년 여름 레이캬비크의 할머니 생일파티에서 시작한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2102년 10월 마그나손의 딸 휠라가 증조할머니가 된 미래 시점, 즉 여전히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감격스런 장면으로 끝난다.

마그나손은 말한다. "지구 기온이 섭씨 2도 상승하면 동식물에게 얼마나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한가? 인간 체온이 언제나 39도를 유지한다고 생각해보라. 사람은 살 수 없게 된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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