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망:未忘] "아내를 잃은 곳에 다시 돌아갈 수 없다"…끝나지 않은 재난

지난해 여름 '극한 호우'에 예천에서만 17명 세상 떠나
특히 피해 컸던 효자면 백석리… 아내 잃은 연호 씨 사연
아내 구하다 다리에 남은 상처 여전… 트라우마로 집 복구도 못해

지난해 7월 유례없는 극한호우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산사태 피해 현장을 약 1년 만에 찾은 26일 피해 복구가 진행 중인 모습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해 7월 유례없는 극한호우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산사태 피해 현장을 약 1년 만에 찾은 26일 피해 복구가 진행 중인 모습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어떻게 다시 살 수 있겠어요. 아내를 잃은 곳에서…."

경북 예천군에선 지난해 6월 26일부터 7월 18일까지, 23일 중 무려 19일 동안 비가 쏟아졌다. 전례 없던 '극한 호우'에 예천에서만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가운데 5명이 효자면 백석리에서 발생할 만큼 특히 피해가 컸다.

지난 21일 찾은 백석리 마을. 마을회관에서 소형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고 가파른 도로를 따라가니 커다란 보호수 한 그루가 보였다. 그 뒤로 컨테이너 건물과 민가가 뒤섞인 작은 마을이 있었다. 마을 쪽으로 더 들어가면 '효자 백석리 농로 재해복구사업'이라고 적힌 공사 안내판이 서 있고, 옆엔 빈터가 보였다. 바로 김연호(가명·70) 씨의 집이 있던 곳이다.

농사를 지으며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던 연호 씨는 지난해 7월 15일 새벽 문득 잠에서 깼다. 바깥의 낌새가 심상찮아 현관문을 열고 확인하려는 순간, 집이 무너져 내렸고 현관문에 부딪힌 연호 씨는 마당 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모든 게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연호 씨는 "아내가 잠들어 있는 집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암흑처럼 캄캄했다. 우선 119에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에 속옷 바람으로 이웃집으로 달렸다"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119구조대·구급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김 씨는 이웃 주민들과 함께 무너진 집 속에서 아내를 꺼내려 안간힘을 썼다. 맨발로 진흙탕을 헤매느라 두 다리는 피투성이가 됐다.

그로부터 1년이 다 돼가지만, 연호 씨의 다리에는 주홍빛 생채기가 여전히 선명하다.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남아 있는 상처처럼 아내에 대한 기억도 아직 또렷하다. 그날 가까스로 아내를 구조했지만, 도로가 군데군데 끊겨 이송이 늦어졌다. 아침 7시가 넘어 읍내 병원에 도착했고 결국 아내는 숨을 거뒀다.

연호 씨는 "미리 대피했다면 좋았을 텐데 산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며 "구급차 안에서 아내의 몸이 따뜻해 병원에만 도착하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렇게 따뜻했는데"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현재 예천군이 마련해준 비좁은 임시 컨테이너 주택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내년 9월 1일까지만 지낼 수 있어 새로운 거처를 알아봐야 하지만, 그에겐 아무런 계획이 없다.

예천군이 감천면 벌방리 일대에 조성할 이주단지에 분양을 받을 수 있었지만 포기했다. 생계 때문이다. 이주단지는 연호 씨의 일터와 차로 30분이 넘는 거리여서 오가기가 어렵다.

임시주택의 다른 이웃 중엔 원래 집이 있던 자리에 새집을 지어 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연호 씨는 집을 지을 생각이 없다. 무너져 내린 산과 집을 삼킨 진흙더미, 그 아래 깔려 고통스러워했을 아내. 1년 전 그날의 아픔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올여름 장마가 시작됐다.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산사태의 공포가 다시 밀려오지만, 그는 갈 곳이 마땅찮다. 그렇게 피해가 복구되지 않은 마을에 다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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