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볼리비아軍 '쿠데타 시도'…대통령궁 무력 진입했다가 회군

前합참의장 "무너진 조국 되찾겠다" 긴장 고조…정부 등 강경 대응에 철수
시민들 반발 움직임도 '한몫'…아르세 대통령, 군 지휘부 즉각 교체

남미 볼리비아에서 군부 일부가 26일(현지시간) 대통령궁을 진입해 쿠데타를 시도하다 3시간 만에 철군했다. 라파스 정부 청사 앞에서 군경들이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자를 가로 막고 있다. EPA 연합뉴스
남미 볼리비아에서 군부 일부가 26일(현지시간) 대통령궁을 진입해 쿠데타를 시도하다 3시간 만에 철군했다. 라파스 정부 청사 앞에서 군경들이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자를 가로 막고 있다. EPA 연합뉴스

남미 볼리비아에서 군부 일부가 26일(현지시간) 쿠데타를 시도하다 3시간 만에 철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은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대통령궁에 무력으로 진입해 "무너진 조국을 되찾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쿠데타 시도' 강경 대응 천명과 시민들의 반발 움직임 등에 결국 회군했다.

◆ 대통령궁 무력 진입 '긴장 고조'

볼리비아 군 일부 장병들이 탱크와 장갑차 등을 앞세운 채 수도 라파스 무리요 광장에 집결한 건 현지시간 이날 오후 3시 전후다. 무리요 광장 앞에는 대통령궁(정부청사)과 국회, 대성당이 있다.

볼리비아 군은 청사 앞에 대오를 갖추고 시민들의 통행을 일부 통제했고, 장갑차로 청사 건물 입구를 부쉈다. 일부 장병은 광장에 몰려온 시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가스를 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펑, 펑'하는 소리가 광장 주변을 채우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이날 '수도 진군'은 합참의장이었던 후안 호세 수니가 장군 주도로 진행됐다. 수니가 장군은 대통령궁 밖 현지 취재진에게 "수년 동안 소위 엘리트 집단이 국가를 장악하고 조국을 붕괴시켰다"며 "우리 군은 민주주의 체제를 재구성해 국가를 일부 소수의 것이 아닌 진정한 국민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미 볼리비아에서 군부 일부가 26일(현지시간) 대통령궁을 진입해 쿠데타를 시도하다 3시간 만에 철군했다. 대통령궁의 발코니에서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이 사람들에게 손짓하는 모습. 연합뉴스
남미 볼리비아에서 군부 일부가 26일(현지시간) 대통령궁을 진입해 쿠데타를 시도하다 3시간 만에 철군했다. 대통령궁의 발코니에서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이 사람들에게 손짓하는 모습. 연합뉴스

◆ "당장 돌아가" 명령 3시간만에 '회군'

아르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통령궁 청사 안으로 들어온 수니가 장군과 대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군 통수권자로서 이런 불복종을 용납할 수 없으니 철군할 것"을 요구했다. 두 사람 주변에 몰렸던 사람 중 누군가 수니가 장군에게 "그만 물러나라, 이래선 안 된다"고 외치기도 했다. 수니가 장군은 아르세 대통령에게 일부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짧은 만남 후 아르세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연설에서 "볼리비아가 군의 쿠데타 시도에 직면했다"며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저와 내각 구성원은 이곳에 굳건히 서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그러면서 군 지휘부(3명)를 즉각 교체했다. 신임 합참의장에 호세 윌슨 산체스가 임명됐다.

대법원, 경찰과 소방 노조, 시민사회단체 등은 잇따라 군을 성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무리요 광장에 모인 시민들도 군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볼리비아 군은 결국 이날 오후 6시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에 철군했다.

남미 볼리비아에서 군부 일부가 26일(현지시간) 대통령궁을 진입해 쿠데타를 시도하다 3시간 만에 철군했다.
남미 볼리비아에서 군부 일부가 26일(현지시간) 대통령궁을 진입해 쿠데타를 시도하다 3시간 만에 철군했다. '쿠데타 시도' 주동자로 지목된 후안 호세 수니가가 당국에 체포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수니가 장군 "대통령 지시 받고 쿠데타"

'쿠데타 시도' 주동자로 지목된 후안 호세 수니가 볼리비아 장군(전 합참의장)은 대통령으로부터 '장갑차 동원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현지 일간 엘데베르와 AP통신에 따르면 수니가 장군(전 합참의장)은 이날 밤 경찰에 체포돼 경찰청사로 압송되기 전 현지 취재진에게 "최근 루이세 아르세 대통령이 내게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매우 엉망이라고 말했다"며 "대통령은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뭔가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고 항변했다.

아르세 대통령은 '장갑차를 동원할지' 묻는 자신의 질의에 "꺼내라"고 답했다고 수니가 장군은 덧붙였다.

아르세 대통령은 한때 정치적 동맹 관계를 맺었던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과 반목 중이다. 양 지지자 간 시위도 번갈아 가며 발생하고 있다. 볼리비아 정계 좌파 거물로 꼽히는 두 전·현직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상황이다.

현지에서는 수니가 장군이 아르세 현 대통령에게도 '팽'당할 위기에 처하자, 병력을 동원한 것으로 분석했다.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대통령궁에서 군부 지도부를 임명한 뒤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대통령궁에서 군부 지도부를 임명한 뒤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사회 규탄 "민주주의 지켜야"

국제사회는 볼리비아 군부 일부의 쿠데타 시도에 대해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켜야 한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미국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을 통해 "미국은 볼리비아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진정하고 자제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볼리비아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단호하게 규탄한다"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럽연합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편에 서있다. 우리는 볼리비아의 헌법질서와 법치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표명한다"고 덧붙였다.

루이스 알마그로 미주기구(OAS) 사무총장도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사건을 가장 강력하게 규탄한다. 군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시민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볼리비아와 갈등을 빚어온 주변국들을 비롯한 중남미 주요국들도 쿠데타를 시도한 군부를 규탄하고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의 현 볼리비아 정부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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