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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53>화려한 모란을 우아하게 그리다

미술사 연구자

송영방(1936-2021),
송영방(1936-2021), '대부귀도(大富貴圖)', 2003년(68세), 종이에 담채, 가로 53㎝, 개인 소장

화조화의 주요 소재인 모란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신라 때다. 진평왕 때 당나라에서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신라로 보냈다고 '삼국사기'에 나온다.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의 총명함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이야기 중 하나로 실려 있다.

모란은 당나라 때부터 궁중에서 사랑받은 왕의 꽃이어서 '화왕(花王)', '화중왕(花中王)', '부귀화(富貴花)'로 부르며 왕이 누리는 부유함과 고귀함을 상징했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그림으로 그려져 모란도를 아예 부귀도(富貴圖)로 부른다.

신라에서도 궁중에서부터 모란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후 모란은 원예와 문학과 회화와 문양으로 우리와 함께 해왔다. '꽃 중의 왕'으로 찬사를 받는 길상의 꽃이 모란이 된 것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중국의 영향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각종 의례에 활짝 핀 모란꽃과 장수를 상징하는 괴석을 함께 그린 채색화인 석모란 병풍을 사용했다. 이 모란병풍이 민간에서 '궁모란'으로 유행하며 혼례식 병풍인 혼병(婚屛)으로 활용됐다.

서양화가들이 장미를 많이 그리듯 동양화가들은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모란을 즐겨 그렸다. 조선 말기 허련은 문인화풍 묵모란을 병풍화로 다작해 '허모란'으로 유명했고, 20세기에는 김은호의 공필(工筆) 화풍 백모란, 박생광의 일본화풍 흑모란이 인기를 끌었다.

송영방의 '모란'은 활짝 핀 백모란 한 송이를 선면 한가운데 커다랗게 그리고 약간의 잎과 줄기를 곁들인 담채화다. 하얀 꽃 색은 바탕의 종이 색을 그대로 활용했다. 풍성한 꽃잎을 미풍에 하늘거리는 듯 묘사한 기품 있는 백모란이다. 백모란 중에서도 갈색 암술과 노란 수술이 있는 안쪽이 분홍색이어서 속 꽃잎에 이중색이 나는 특별한 품종이다.

송영방은 이 부채의 주인께서 크게 부귀하시라며 '대부귀도(大富貴圖)'라고 썼다. 이어서 부채꼴의 곡선과 사선을 모두 활용하며 '위(爲) 김연수선생(金淵洙先生) 청상(淸賞) 우현(牛玄)'으로 낙관했고, 자신의 성을 새긴 작은 인장 '송(宋)'을 찍었다. 한 송이 꽃이라 한 글자 인장 하나만 찍어 리듬을 맞춘 것이다.

모란은 꽃이 크고 꽃잎이 겹겹이어서 모양이 풍성한 데다 색깔도 다채로워 심미적 특징을 풍려(豊麗)하다고 한다. 송영방은 모란꽃의 풍려함을 놓치지 않으면서 세련되게 함축해 화려하기보다 우아하며 청초하기까지 한 모란으로 그렸다. '모란'은 중국의 부귀도와 확연히 다른 유형의 모란도다.

이 그림을 보며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모란의 영향이 문화적인 데에 그쳤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쩌면 대국인 이웃나라 황실의 꽃 모란이 부귀영화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우리의 심성까지 추동해 온 것은 아닐까?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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