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살의를 품는 사람들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어떤 사람이 낭떠러지에 난 위태로운 길을 걷다가 실수로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고 하자. 이 사고의 결정적 원인은 무엇일까. 실수로 발을 헛디딘 것일까, 낭떠러지에 난 길을 걸은 것일까.

낭떠러지 길을 걸은 것이 사고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디거나 넘어지는 일은 가끔 있을 수 있다. 그 길이 평지인 경우 옷을 툴툴 털고 일어나 가던 길을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발을 헛디딘 장소가 낭떠러지라면 결과는 달라진다. 귀찮지만 둘러 가면 위험을 피할 수 있는데 낭떠러지 길을 택한 것이 사고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낭떠러지는 널렸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음주운전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사고가 날 수 있다. 사고가 나더라도 큰 피해 없이 수습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음주운전 사고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처벌도 무겁고, 사고도 대형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

음주운전이 낭떠러지 길을 걷는 것과 같은 짓임을 보여 주는 사례는 많다. 호남에서 한 운전자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다. 피해자는 초등학생이었고,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사고였다. 운전으로 생업을 이어 가던 운전자는 음주운전에 따른 면허취소가 두려웠다. 피해 아동을 병원으로 데려가던 중 그는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세우고 학생을 살해했다. 그가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면 무난하게 마무리됐을 접촉 사고가 무참한 범죄로 비화해 어린 학생의 생명을 빼앗고, 그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한을 남겼다.

몇 해 전 대구에서 한 공무원이 술을 가볍게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자동차 간 접촉 사고를 냈다. 그는 음주운전에 따른 공직자 징계가 두려워 차를 몰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그를 추적했고, 계속 달아나던 그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고속도로 출구(입구가 아니라)로 진입했다. 그리고 마주 오던 경차와 충돌했고, 경차에 타고 있던 2명이 사망했다. 가볍게 생각한 음주운전이 점점 커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수 김호중 씨가 단순히 운전하다가 충돌 사고를 냈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것을 잃었을까. 음주운전은 자기 인생을 벼랑 끝에 세우는 짓이고,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에게 살의(殺意)를 품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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