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응한 남한의 서북도 해상 실사격 훈련 등 남북한 간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통일부는 27일 '2024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인권보고서에는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적용해 주민들을 공개 처형한 사례를 처음 공개했다. 2022년 황해남도에서 22세 청년 A씨가 남한 노래 70곡과 영화 3편을 시청하고 이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에 의해 공개 처형됐다고 한다.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3) 등을 잇따라 제정했다. 주민 통제의 필요성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의미다. 반대로 체제 이완의 흐름도 가속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북한판 MZ세대인 장마당세대들이 실질적인 소득 창출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움직임에 남북한 당국 모두 관심이 쏠린다.
장마당세대는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유·소년기에 겪었다. 배급제가 무너지고 장마당을 통해 극한의 생존을 경험했다. 장마당을 통해 시장경제 원리를 체득해 휴대전화 구매, 외부 문화 빠른 접촉, 중국 은행에 차명 계좌 개설 등 기존 세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동시에 한국이나 외국의 정보, 소식, 대중문화에 큰 호기심을 보인다. PC, 휴대전화를 다룰 줄 알거나 프로그램 개발에 능숙한 덕분에 K드라마와 교양 프로그램 등을 자주 접한다고 한다. 이들이 북한 체제 변화의 주역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북한인권보고서는 탈북민 649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발간됐다. 이 보고서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국내외적 압력의 기초 자료로 활용돼야 한다. 북한 주민 인권 보호 필요성에 여야의 초당적 공감대도 필요하다.
보고서에 실린 구체적인 증언들을 분야별로 묶어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실었다.
◆'아빠' '쌤' 사용하면 단속
북한 당국은 외부정보 차단을 위한 통제와 처벌 강화에 나섰다는 증언들이 줄을 잇고 있다.
〈2023년 탈북, 남성〉 "2022년 황해남도 ○○군의 광산에서 공개처형을 보았습니다. (처벌 대상자는) 농장원으로 나이는 22살입니다. 처형장에서 재판관으로 추측되는 사람이 '괴뢰놈들(남한)의 노래 70곡과 영화 3편을 보다가 체포되었다.'고 읊어줬습니다. 그런데 심문 과정에서 7명에게 유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했습니다."
〈2018년 탈북, 여성〉 "손전화기(휴대전화)를 들고 걸어가면 단속원들이 와서 손전화기를 다 뒤져봅니다. 주소록도 단속을 하는데, 예를 들어 주소록에 '아빠'라고 쓰면 우리식이 아니라고 단속합니다. 아빠라는 말은 북한에서 안 쓰는 말이고 남한식입니다. 주소록에는 이름만 있어야지 그 앞에 '예명(별명)'을 붙여서도 안 됩니다. 선생님도 '쌤'이라고 쓰면 단속을 합니다."
〈2023년 탈북, 남성〉 "2020년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나 '청년교양보장법' 같은 것들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싹 쓸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법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처벌하니 말입니다."
◆대소변도 허락받아야
강제 북송 과정에서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심각한 인권 침해가 벌어지고 있었다. 강제 북송 돼 구금 중인 여성 수감자들은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2014년 탈북, 여성〉 "북송되어 구금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동료 수감자가 새벽 1시경에 울면서 감방으로 들어와서는 저에게 '비서가 찾으니 남자 직원 탈의실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곳(탈의실)에서 저 역시 강간을 당했습니다."
〈2018년 탈북, 여성〉 "2016년 북송 당시 여동생의 나이는 15세였습니다. 여동생이 교화소에서 출소하고 나서 겪은 일을 말해주었는데, 성인과 같은 감방에서 '고정자세'를 강요받았고 대소변도 허락을 받고 2시간마다 10분만 제자리에 서서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4시간 밖에 못 자
노동자 해외 파견은 북한의 외화 '돈줄'이다.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 중동(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유럽, 아프리카, 몽골 등에 파견돼 장시간 노동, 계속되는 감시, 과도한 상납으로 착취당했다. 휴일이 거의 없이 매일 장시간 근무하고, 임금의 70% 이상, 많게는 90%까지 '국가계획분'과 경비 명목으로 상납해야 했다.
〈2018년 탈북, 남성〉 "러시아에 파견된 노동자들은 오전 6시 기상, 1시간 식전작업, 조식 후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작업, 점심식사 후 13시부터 18시까지 오후작업, 저녁식사 후 19시부터 24시까지 야간작업입니다. 잠은 4시간 정도 잡니다. 저희 직장에서는 휴일이 없었는데, 1년에 쉬는 날이라고 해야 1월 1~2일, 노동절 하루 정도 쉽니다. 정 힘들 때는 하루 이틀 쉴 수 있지만, 휴식 때 하지 못한 일까지 해야 하거나 받을 돈에서 일수만큼 삭감하였습니다."
〈2020년 탈북, 남성〉
"함께 일하던 동료가 손전화기(휴대전화)로 남한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보위부에 적발되어 강제송환되는 사례를 목격했습니다. 나중에 그 동료가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정은 유언비어 유포하다 가족 전체 추방
북한 당국의 감시도 더욱 치밀해지고 있다. 이웃의 일거수일투족을 당국에 낱낱이 보고 하고, 하룻밤 새 온 가족이 강제 추방을 당하는 사례도 나온다.
〈2016년 탈북, 여성〉
"2016년까지 (이웃들을 감시하는) 통보원을 했는데, 외래자 숙박 현황, 주민들 (사이의) 유언비어, 몰래 이사 가려고 준비하는 집, 수입 대비 지출이 맞지 않는 집, 남한 드라마를 보는 집, 개인 소(牛)를 가지고 있는 집, 당에 대한 충성심, 농촌동원 참여율 등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다 파악하여 담당 보안원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2023년 탈북, 남성〉
"초급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2014년경 옆 반 친구 친형이 김정은에 대해 유언비어를 유포해서 그 집 가족이 다 추방을 당했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3태자를 낳았다. 연개소문도 아들 셋을 낳았는데 아들 때문에 망한 것처럼 김정은도 그 아들 셋 때문에 망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후로 옆 반 친구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그 집안 전체가 강제추방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책은 적발이 두려워 불태워
종교와 사상의 자유도 없다. 녹음 파일을 몰래 들으며 설교 듣고 찬송을 부르는 사례도 있다.
〈2020년 탈북, 여성〉
"저희 친정식구들은 성경책을 처음 접한 2009~2010년경부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기도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것과 같은 형식은 지킬 수 없었지만 기도를 하고 USB에 저장되어 중국에서 넘어온 목사님 설교말씀을 이어폰으로 듣고 찬송가도 따라 불렀습니다. 중국에서 밀수 일을 하는 형부를 통해 성경책과 USB를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성경책 두 권은 적발될 것이 두려워 모두 태웠습니다."
〈2023년 탈북, 여성〉
"강연을 위해 만든 영상 자료에서 결혼식 장면을 보았습니다. 영상 속 해설하는 사람은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를 업고 가는 것도 '괴뢰식'(남한식)이고, 여성이 귀걸이나 팔찌 등 장신구를 여러 개 하는 것, 신부가 흰색 드레스를 입은 것이나, 선글라스 착용한 모습, 와인 잔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 등도 모두 '반동'이라고 했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처벌을 받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결혼식에 나온 사람들이 머리를 삭발하고 죄인처럼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양곡판매소에서만 곡물 거래
장마당에서 곡물 거래를 금지시킨 탓에 주민들의 식량권도 무너지고 있다. 굶어 죽는 주민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23년 탈북, 여성〉
"제가 살던 ○○군에는 2022년 즈음부터 장마당에서 쌀을 내놓고 팔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군내에 몇 군데의 '양곡(곡물)판매소'를 만들어 놓고는 곡물은 무조건 그곳에서 거래하도록 했습니다. 곡물판매소는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고 운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 것은 두 곳이었습니다. 2023년 판매소에서 쌀을 살 때는 5천300원 정도였고, 팔 때는 5천원 정도였습니다."
〈2021년 탈북, 남성〉
"2021년 4월 22일 양강도 혜산시 역전 공원에서 30대 중반 남자가 아사(餓死) 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남자는 삼지연 돌격대원이었는데, 역전 분주소 안전원이 시신을 처리했다고 합니다. 또한, 장사꾼들이 2021년 겨울에만 15명이 아사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편 1g=쌀 10kg
마약류가 퍼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건강도 위협을 받고 있다. 마약은 주민 일상 곳곳에 침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2023년 탈북, 여성〉
"2023년 황해남도에서는 급할 때 의약품 대신 '빙두(필로폰)'를 조금씩 사용했습니다. 잠수부들이 잠수병을 이겨내기 위해서 빙두를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쇼크가 왔을 때 빙두를 약간 사용하면 깨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17년 탈북, 여성〉
"북한에서는 마약을 많이 합니다. 2017년 탈북 직전에는 '함흥에는 코 달린 사람은 얼음(빙두)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적발되면 교화소에 가기도 하지만 사전에 간부들과 재배 후에 얼마 주겠다고 말을 해둡니다. 옥수수 밭에 한 줄은 옥수수를 심고 한 줄은 양귀비를 심는 식으로 숨겨서 키웁니다. 제조한 아편은 개인 거래로 팔아넘기며, 아편 1g에 쌀 10kg와 값이 같습니다. 요즘은 도시 젊은이들도 하는 추세로 북한 사람들 80~90%는 경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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