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베스트셀러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새로 문을 연 가게나 입주한 집의 적요함을 덜어 주는 무난한 소재로 책이 활용된다. 인테리어 비용치고는 경제적이다. 손때도 묻어 읽은 티가 나는 중고 책 100권 정도면 몇십만원으로 충분하다. 기왕이면 베스트셀러 비치를 권한다. 시대적 흐름을 읽는 독서인으로 비친다. 주인의 지적 매력을 고양하는 이미지도 자연히 따라붙는다.

베스트셀러는 '화제' '흥미' '유행' 세 요소를 장착하면 어김없다. 예컨대 유명인이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이야기를 쓰고, 출판사가 마케팅에 나서면 대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다. 지난해 초 발간된 영국 해리 왕자의 자서전 '스페어(Spare)'를 들 수 있다. 형인 윌리엄 왕자에게 맞았다는 둥, 17세 때 첫 경험을 했다는 둥 통속적인 이야기와 함께 영국 왕실의 인간적 면모를 궁금해한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덕분이다.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처럼 열지 말라는 방을 더 열어 보고 싶어 하는 심리 자극형도 있다. 작품이 희소해지면 더 찾는다. 사적 대화 무단 전재 논란에 휩싸였던 2020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그런 생활'이 그랬다. 소설인데 어떻게 피해를 주장하나 싶지만 그럴 만했다. 진한 마산 사투리를 텍스트에 배어나게 한 작가의 능력도 걸출했지만, 자신과 나눈 대화이므로 작품에서 빼라고 한 지인의 눈썰미도 절륜했다.

사람들이 결코 봐선 안 된다며 낸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이 베스트셀러 등극의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21년 나온 '굿바이 이재명'이다. 형수 욕설 등 이재명 대표의 가족 갈등을 다루며 민감한 이야기가 실린 책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커졌다. 더불어민주당이 뜻밖의 영업력 좋은 마케터가 된 셈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부인 김혜경 씨가 2018년 펴낸 '밥을 지어요'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이 대표의 변호사비 마련을 위한 격려성 구매로 보인다. 정치인 관련 책은 순수 베스트셀러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 팬덤으로 사들이는 경우가 많아서다. 인기 아이돌 가수나 트로트 가수의 음반 판매량을 근거로 명곡이라 단정 짓기 어려운 것과 흡사하다. 그럼에도 66가지 레시피가 담겼다는 '밥을 지어요'는 요리 젬병을 돕겠다는 본래의 목적이 휘발되지 않길 바란다. 서가의 장식품으로 떠도는 운명도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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