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 속 호모에스테티쿠스] <38>루쉰의 ‘비누’, 씻어 내야 할 때의 종류

이경규 계명대 교수

중국 작가 루쉰.
중국 작가 루쉰.
이경규 계명대 교수.
이경규 계명대 교수.

루쉰은 중국 근현대 문학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아큐정전'을 제외하면 일반인들에게 크게 알려진 작품은 없다. 당시 중국인들을 계몽하려는 마음이 절박해서 문학 미학적인 문제는 관심 쏟을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필자의 독서 반경 내에서는 그나마 '비누'(1924년)라는 단편을 그런 방향으로 독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누,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물론 당시의 미흡한 청결성이나 미의식은 충분히 지적할 만하다. 그러나 루쉰은 그런 외적 현상을 넘어 좀 더 깊이 내려간다. 그의 비판적 시선은 청결 문제에서 에로스를 거쳐 미덕의 차원까지 관통한다.

주인공 쓰밍은 1남 2녀를 둔 가장으로 중산층 지식인이다. 그는 유교와 전통문화에 경도된 꼰대 중화주의자다. 신세대들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만 그도 대세는 어쩔 수 없는지라 신문물을 아주 외면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아들을 신식 학교에 보내 영어를 배우게 한다. 쓰밍의 아내도 가정주부로서 종래의 사고방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뛰어난 감각으로 남편의 모순과 위선을 들추는 내부 고발자의 역할을 한다.

쓰밍은 퇴근길에 향기 좋은 외제 비누를 하나 사와 아내에게 준다. 아내는 안 그래도 잘 씻기지 않는 목덜미의 때로 인해 창피하던 참이라 반가워한다. 그러나 남편이 비누를 사 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기분이 가라앉는다. 쓰밍은 가게에서 비누를 고르며 꼬치꼬치 따지다가 주변에 있던 여학생들에게 '어두푸(惡毒婦)'라는 말을 듣는다. 분명 욕 같은데 영어를 몰라서 속을 끓이다 집에 온다. 또래의 아들을 보자마자 '어두푸'가 무슨 뜻인지 알아내라며 다그친다. 그러자 아내는 "무슨 말이 밑도 끝도 없이 그러냐"며 남편의 막무가내를 꼬집는다. 그제야 전후 사정을 설명하면서 쓰밍은 신세대를 무차별 공격한다. "학생도 도덕의식이 없고 사회도 도덕 관념이 없고. 무슨 대책을 생각하지 않으면 중국은 망하고 말 거야."

그러면서 쓰밍은 예외적 사례로 길가에서 목격한 거지 처녀에 관해 이야기한다. 18∼19세쯤 되는 이 처녀는 눈먼 할머니를 위해 헌신적으로 동냥하는 효녀다. 쓰밍은 요즘 학생들과 달리 너무나 훌륭한 젊은이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동전 한 푼 건네지 않았다. 게다가 거지 처녀도 비누로 뽀드득뽀드득 씻기만 하면 예쁠 거라는 건달들의 말에 눈길이 다시 간다. 이게 쓰밍을 비누 가게로 가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남편이 거지 효녀를 상찬하고 신식 여학생들을 싸잡아 비난하자 아내는 대꾸한다.

"당신네 남자들은 열여덟 아홉 된 여학생을 욕하거나 아니면 또래의 여자 거지를 칭송하지만 다 좋은 마음에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뽀드득뽀드득 이라니, 뻔뻔하기 짝이 없어요."

'어리숙한 게 당수 팔 단'이라고 아내의 반격이 날카롭다. 아내는 남편의 효녀 칭송 뒤에 가려진 성적 욕망을 들춰내고 신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꼬집는다. 실로 쓰밍이 젊은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일종의 자격지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구지식인들의 오만과 시대착오는 바뀌지 않는다. 이날 밤 쓰밍과 친구들은 신문에 기고할 글을 다듬는데, 애국지사인 양 젊은이들을 훈계하고 계몽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거지 효녀를 미담 사례로 소개할까 하다가 그녀가 한시를 짓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만둔다. 시를 모르는 사람의 충효는 공적인 칭찬의 대상이 못 된다는 것이다. 엘리트주의의 오만이 극치를 이룬다. '비누'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목덜미의 묵은 때야 좋은 비누로 씻으면 되지만 봉건 관념의 굳은 때는 무엇으로 씻어 낼 것인가. 다음 날 아침 쓰밍의 아내는 세면대에서 비누 거품을 퐁퐁 내며 신나게 목 때를 씻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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