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낙동강 물고통 33년] "팔팔 끓인 찌개서도 악취가"…잊을만하면 반복된 수질오염사고

① 9천억원 무색한 대구 물 문제
1991년 3월 '페놀 오염사건' 발단…구토·자연유산 등 사회적 파문으로
2004~2018년 수질오염사고 9건 이상 반복
수질사고 때마다 '생수대란'…익숙해지는 수돗물 불신
대구·부산 정치권도 "물 문제 해결하라" 중앙정부에 촉구

2008년 코오롱유화 김천공장 화재로 대구 달성군 낙동강 수계 문산취수장에서도 페놀이 검출되자 가창면 약수터에 생수를 받기 위한 시민들이 몰렸다. 매일신문DB
2008년 코오롱유화 김천공장 화재로 대구 달성군 낙동강 수계 문산취수장에서도 페놀이 검출되자 가창면 약수터에 생수를 받기 위한 시민들이 몰렸다. 매일신문DB

대구시민은 33년간 먹는 물 불신 속에서 살고 있다. 잦은 수질오염사건을 목격해온 일부 시민들은 "수돗물을 끓여 마시려다 멈칫하게 되고 정수기를 쓰거나 생수를 사 마시는 게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매일신문은 낙동강 수질오염사건을 추적해 보고, 녹조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대구에서 경남까지 물길을 따라가며 집중 취재했다. 먹는 물 불신의 발단과 현재, 맑은 물 확보를 위한 해법을 담은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수돗물을 팔팔 끓인 찌개에서도 악취가 가시질 않았어요."

1991년 3월 14일 이후 대구 지역 약수터는 식수를 구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두부, 음료수 등 수돗물로 만든 음식들은 모조리 폐기됐다. 구토와 두통, 설사 등의 증세를 호소하는 시민들은 물론 임산부 자연유산과 임신중절까지 사회적 파문으로 번졌다. 수돗물 불신 확산에 1994년 생수 시장이 국내 최초로 합법화됐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영남권 주민은 물론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양손에 물통 들고"…꼭두새벽 물 찾으러 다닌 시민들

1991년 3월 14일 밤 10시. 경북 구미시 구포동에 위치한 두산전자의 페놀 원액 저장탱크에서 파이프가 파열, 다음날 오전 6시까지 30톤(t)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으로 흘러들었다. 대구·부산을 비롯한 영남지역 식수원인 낙동강을 오염시킨 사건의 발단이다.

페놀(phenol)은 1급 발암물질로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는 유독성 물질로 무색에 심한 악취가 난다. 오염된 낙동강 물은 16일 대구시의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에 유입됐고 수돗물로 만들어져 지역 곳곳에 공급됐다. 당일 오후부터 지자체와 관공서에는 "수돗물에서 심한 악취가 난다"는 항의 전화가 들끓었다.

약 한달 뒤인 4월 22일 2t의 페놀원액이 다시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고가 발생, 강 하류 밀양 등을 비롯해 부산의 수돗물에서도 페놀이 검출됐다. 그해 8월 대구지역 주부 등 30여명 여성들은 서울 을지로 두산그룹 본사 앞에서 '무해하다 주장 말고 우리 아기 살려내라'는 피켓을 들고 울분을 토했다. 당시 현장은 수돗물을 마셔 임신한 아이가 유산됐다는 분노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분노한 국민들이 두산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국회가 진상조사에 나서자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이 물러나고 환경처 장관이 경질됐으며 대구지방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 등은 구속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낙동강은 2004년 발암물질 1,4-다이옥산 검출, 2006년 갑상선 장애 유발물질 퍼클로레이트 검출, 2008년 페놀 유출, 2009년 1,4-다이옥신 유출, 2012∙2013년 불산 등이 검출되는 등 수질오염사고만 9건 이상에 달한다.

2018년에도 사고는 재현됐다. 낙동강 수계 정수장에서 발암물질인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된 것이다. 당시 이마트 월배점에서 판매된 생수 수량은 평소의 5배에 달했고, 시민들은 경쟁적으로 생수를 더 빨리, 더 많이 사가려했다.

대구 달서구 도원동에 거주하는 한모(51) 씨는 "대구 수돗물이 찝찝해 연수기는 진작 설치했고, 마트에서 1.5ℓ 생수 수십 병을 샀던 기억이 있다"며 "집 근처 도원근린공원에 비상급수시설이 있는데 사고 이후 매일 아침 어르신들이 식수를 뜨러 줄을 서 있었다"고 전했다.

2018년 대구 수돗물에서 과불화화합물질 검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시민들이 대구 두류공원 비상 급수대에서 생수를 담고 있는 모습. 매일신문 DB
2018년 대구 수돗물에서 과불화화합물질 검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시민들이 대구 두류공원 비상 급수대에서 생수를 담고 있는 모습. 매일신문 DB

◆익숙해진 수돗물 불신과 트라우마

먹는 물 불신은 대구시민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다. 잦은 수질오염사고로 수돗물에 유해성분이 녹아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대구 동구에 거주하는 4인 가구 주부 김 모(58)씨는 "대구에서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가정은 없을 것"이라며 "페놀 사태 이후 항상 끓여 마시거나 정수기를 설치해 마시는 게 당연한 일이 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북구 태전동에 사는 직장인 박아름(28) 씨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수돗물은 그냥 마시지 말고 무조건 끓여먹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며 "끓여먹기는 귀찮아서 생수만 사서 마신다"고 말했다.

수돗물 불신에 대구·부산 정치권도 중앙정부를 향해 물 문제 심각성을 지속적으로 표출해왔다.

국민의힘 대구시당 소속 국회의원 12명은 2021년 성명을 내고 "대구시민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왔다"며 "중앙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물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답보상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재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부산 남구을)은 지난해 "낙동강 하류지역 부산시민은 낙동강 녹조 등으로 수질이 악화된 원수를 정수해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고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부산 사하구을)도 "왜 부산시민은 똑같은 세금을 내고 나쁜 물을 마셔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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