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수능 유감(修能 遺憾)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디지털 보존이 의미하는 바를 정립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질문은 실제로 무엇을 보존하려고 하는가이다. 이는 정보 콘텐츠가 물리적 매체에 풀 수 없게 고정된 아날로그 환경에서는 분명하다.(31번)/ 고도로 표현주의적인 작품에서는 새로운 스타일 장치가 주제와 조화롭지 않은 방식으로 작용하여, 그럼으로써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39번)/ 인식의 모형과 관련하여, 우리가 특정 문화와 역사적 환경에 국한하더라도, 우리가 누구의 인식을 모형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 생긴다.(34번)

무슨 말인지 모르더라도 당황하지 마시라. 지난달 4일 치러진 '2025학년도 6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모의평가' 영어 문제에 실린 내용들이다. 본문 내용 중 일부를 발췌(拔萃)한 탓에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전문(全文)을 다 읽어 봐도 이해 불가는 마찬가지다. 6월 모의평가 영어 영역 1등급 비중은 1.47%로, 역대 최고 난도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 모의평가(7.62%)나 지난해 수능(4.71%)보다 훨씬 낮다. 점수 상위 4%만 1등급을 주는 다른 과목과 달리 영어는 절대평가여서 90점만 넘으면 1등급이다. 영어를 너무 어렵게 출제하면 사교육을 부추긴다면서 2018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바꾸었다. 우리말로 번역해도 어떤 맥락인지 곰곰이 따져야 할 내용들인데, 시간을 다투는 시험에서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갖고 이런 문제를 내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수험생을 가르치는 한 영어 강사는 "영어 지문(地文)으로 수업은 아예 불가능하고, 해설지를 펴 놓고 설명해도 학생들이 어려워한다"고 털어놨다. 문해력(文解力),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의 한계라는 말이다. 영어뿐 아니라 수학·과학·사회까지도 포기하는 이유는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수능, 즉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학년도부터 도입됐다. 당시 수학(數學) 시험만 치느냐는 농담도 나왔는데, 수학능력(修學能力), 즉 배우고 익힐 역량을 측정하는 시험이라는 뜻이다. 한 세대를 풍미한 수능의 한계가 온 듯하다. 중등 교육과정이 수능에 매몰(埋沒)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점수로 줄 세우기 교육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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