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14>남도 민어보양탕

매년 8월 초 민어축제가 열리는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초입에 서 있는 민어 조형물. 임자도 해역은 한국 최대 민어 산란장 중 하나이다.
'민어'(民魚). '백성의 생선'이라! 조기‧새우‧홍어‧낙지와 함께 전라도만의 '게미'(지역적 풍미)를 풍겨낸다. 선상에 올라오자마자 죽어버리는 민어. 그래서 피를 빼고 얼음을 채워 선어 형태로 유통된다.

'민어'(民魚). '백성의 생선'이라! 조기‧새우‧홍어‧낙지와 함께 전라도만의 '게미'(지역적 풍미)를 풍겨낸다. 한국 최대 민어 공급처이기도 한 신안수협 송도위판장(국내 공급량의 15% 차지. 최대 소비처는 목포권), 올해는 지난 5월 27일 초매식(初賣式)이 열렸다.

목포 만호동 민어의 거리 전경. 현재 코스식 민어 전문 식당은 네 곳(영란‧중앙‧유달‧포도원횟집)이 있다.
'민어'(民魚). '백성의 생선'이라! 조기‧새우‧홍어‧낙지와 함께 전라도만의 '게미'(지역적 풍미)를 풍겨낸다. 선상에 올라오자마자 죽어버리는 민어. 그래서 피를 빼고 얼음을 채워 선어 형태로 유통된다.

나무상자 얼음 속에 누워 있는 그의 자태를 보았다. 죽은 생선이 아니었다.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닥나무로 만든 조선 한지가 비바람과 뒤엉켰을 때 잉태되는 고현(高玄)한 얼룩이 어른 손톱 크기의 비늘 위에 어른거린다. 실제 예전 여인네들은 그 비늘을 갖고 바느질용 골무를 만들기도 했다.

◆신안군은 민어의 고향

동해안의 '명태', 남해안의 '대구'와 필적될 수 있는 민어. 동해안 같은 청정해역과는 궁합이 안 맞다. 대게와 서해안이 서로 안 맞는 것처럼.

새우가 많이 사는 수심 100m 미만의 서해안 황토빛 사질토 갯벌이 주 서식지. 동절기에는 추위를 피해 제주도 아래로 물러나 월동했다가 5월 부근이면 다시 신안군 근역으로 알을 낳기 위해 북상한다.

피크는 8월 초, 바캉스 시즌과 딱 겹친다. 그래서 품귀현상이 더 짙다. 이 흐름과 맞물려 한국에서 가장 넓은 백사장(14km)을 가진 임자도 대광해수욕장에서 민어축제가 열린다. 민어의 섬답게 초입에 5m 높이의 민어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고려 때 합죽선인 고려선 접착제로도 사용됐고 미식가로부터는 최고의 식감을 주는 부위로 사랑받는 민어 부레.
매년 8월 초 민어축제가 열리는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초입에 서 있는 민어 조형물. 임자도 해역은 한국 최대 민어 산란장 중 하나이다.

물량이 귀할 때는 kg당 6만6천 원까지 치솟는다. 100만 원급 민어도 탄생된 적이 있다. 그런데 왜 백성 민 자를 사용했을까? 자산어보에는 '면어'(鮸魚), 동의보감에는 '회어'(鮰魚)라고 적혀 있다.

보통 삼복철에는 암놈인 '암치', 그 외의 달에는 수컷인 '수치'가 주로 유통된다.

늦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특수를 보이는 병어, 그 병어(신안군 지도읍이 메카) 시즌이 준치와 함께 끝나자마자 민어철이 개시된다. 보통 추석 전까지지만 조황이 좋으면 10월 중순까지 잡힌다. 인천 신포시장에도 민어 전문점이 있지만 민어 주요 위판장은 전남 여수, 목포, 신안 정도다. 대구 같은 경우는 홍어와 달리 민어는 아직 생소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달서구 '만덕횟집'이 직접 낚시로 잡은 살아 있는 민어를 팔고 있다.

◆민어 파시

일제강점기 최고의 민어 어장은 신안군 임자도와 옹진군 굴업도 어장. 굴업도는 일찍 민어가 사라졌지만 임자도는 아직 건재하다. 대광해수육장과 이어져 있는 임자면 하우리에서 조금 떨어진 타리섬. 여기는 섬타리와 물타리로 나눠져 있다. 일제강점기, 민어철이면 순식간에 거대한 '파시'로 변한다. 100여 개의 임시 점포가 들어섰다. 돈이 많이 돌 수밖에. 이를 겨냥한 한국과 일본 기생 130여 명이 한철 포진했다는 신문 기사도 나온다. 여기서 잡힌 꽤 많은 민어는 일본 각처로 보내졌다. 바다인문학자인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광복 후 하우리와 섬타리의 모래사장은 모 유리회사에서 원료로 퍼가는 바람에 거대한 면적이 사라졌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신안에서 인천까지, 서해권에서 민어가 고르게 잡혔다. 하지만 남획으로 어장이 메말라갔다. 1980년대부터 신안 임자도 주변 바다에서만 주로 잡힌다. 신안산 민어는 목포로 직행한다. 목포에서는 북항 위판장에서 주로 처분된다. 목포가 민어의 고장이 된 이유다. 2014년부터는 양식 민어도 나온다.

남도 복달임 1회 음식으로 등극한 민어탕.
목포 만호동 민어의 거리 전경. 현재 코스식 민어 전문 식당은 네 곳(영란‧중앙‧유달‧포도원횟집)이 있다.

◆목포 민어의 거리

1969년부터 목포 근대역사 거리인 만호동에 민어 취급하는 식당이 하나둘 생겨났다. 처음엔 선술집 수준. 그러다가 80년대 초 민어 전문 식당 3곳이 등장했다. 1990년대 민어의 거리 전문점은 16곳으로 늘어난다. 2000년대, 40~50년 전통을 자랑하는 3곳을 비롯해 민어 코스요리 전문 횟집 7곳으로 정리된다. 현재는 4곳(영란횟집, 중앙횟집, 만호유달횟집, 포도원횟집)뿐이다. 75년부터 장사를 시작한 중앙횟집은 2016년 목포시 민어찜 명인으로 지정된다. 관광객은 상당수 영란횟집으로 간다. 나는 관광객이 덜 모여드는 '용당골'에서 맛을 봤다.

◆선어로 유통되는 민어

민어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남도에서는 큰 민어를 '개우치', 법성포에서는 30㎝ 내외 것을 '홍치', 완도에는 작은 민어를 '불등거리'라 한다.

주로 데쳐 먹는 껍질.
'민어'(民魚). '백성의 생선'이라! 조기‧새우‧홍어‧낙지와 함께 전라도만의 '게미'(지역적 풍미)를 풍겨낸다. 선상에 올라오자마자 죽어버리는 민어. 그래서 피를 빼고 얼음을 채워 선어 형태로 유통된다.

전어처럼 민어도 선상으로 잡혀 올라오자마자 죽는다. 전처리가 필수다. 축산물이나 수산물이나 마찬가지. 가급적 피가 살점에 침투하지 못하게 막아야 된다. 안 그러면 비린내 때문에 제대로 된 식감을 느낄 수가 없다. 아가미 부근을 찔러 피를 빼고 한 마리씩 비닐로 감싸준다. 이후 얼음이 깔린 선어용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빙장(氷藏), 그다음 코스는 냉장고 안이다. 그렇다고 냉동의 금물.

대략 1㎏ 이하의 민어 새끼는 '통치'. 홍어는 암치가, 민어는 수치가 맛있다고 한다. 암치의 민어살은 살이 퍽퍽하며 수치는 감칠맛이 난다. 그래서 수치 가격은 암치 가격 보다 약 2배가 비싸다. 암치 살은 민어전으로 시용된다. 1∼2㎏의 민어는 소민어, 3㎏ 이상을 민어 횟감으로 분류한다. 통치는 말려서(이를 '건정'이라 한다) 제사 때 구워 먹거나 젓국, 아니면 찜으로도 좋다.

◆민어 백배 맛있게 먹기

주로 회, 건정찜, 탕, 묵, 젓갈, 백숙, 죽 등으로 먹는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신안 대파와 양파, 개두릅 등은 이들 민어 요리와 찰떡궁합이다.

현지 토박이들은 구질구질하게 많이 섞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직격탄으로 담백하게 먹는 걸 즐긴다. 우리 지역처럼 왜간장, 고추냉이의 맛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막걸리식초, 된장, 고춧가루와 소금, 젓갈, 참기름, 다진 마늘, 깻가루 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섞어서 먹는다. 미식가라면 참기름, 아니면 소금만 조금 올려 먹는다. 본래의 물성을 음미하기 위해서다. 워낙 다양한 입맛 고수가 찾아오기 때문에 전문 업소마다 부위별 특제 소스를 개발해두었다.

고려 때 합죽선인 고려선 접착제로도 사용됐고 미식가로부터는 최고의 식감을 주는 부위로 사랑받는 민어 부레.

몸통 살점은 솔직히 인기가 없다. 대신 부레와 껍질, 알감치, 뼈다짐볼 등을 기다린다. 대구의 뭉티기 전문점에서 만나는 오드레기‧간천엽‧소골(연수)‧간에 필적한다고 보면 된다.

마니아들은 쌈으로도 즐기지 않는다. 채소가 되레 민어 맛을 반감시킨다고 믿는다. 문제의 알감취는 뭐람? 민어의 아가미살과 볼테기살을 도마에서 칼로 다져, 마늘, 소금, 참기름을 넣고 다진살이다. 동그랑땡처럼 보인다. 살짝 데친 민어껍질은 꼬들꼬들하고, 민어의 부레는 질길 것 같지만 껌처럼 씹으면 부드럽고 고소하다. 껍질과 부레는 천일염에 참기름, 깻가루를 넣은 기름장에 찍어 먹어야 짱이다. 처음 먹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맛인가 싶을 거다. 너무 밋밋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극적인 소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스를 버려보라. 눈감고 오래 씹으면 진미가 먹구름을 뚫고 햇살처럼 전해진다.

남도 복달임 1회 음식으로 등극한 민어탕.

마른 민어 '건정'은 약대구처럼 명품 중 명품으로 통한다. 건정은 말린 생선을 의미한다. 건정 민어는 각종 약재를 넣고 탕으로 끓여도 되고 살짝 불려 양념을 해 굽거나 찜으로도 먹을 수 있다. 건정 민어를 쌀뜨물에 넣고 푹 고아 내놓는 건민어탕이나 민어곰탕은 민어 본연의 맛을 살려준다. 숭어알보다 크기가 큰 민어알도 '어란'이 될 수 있다. 참기름을 발라 그늘에 말린 '어란'은 부추와 쌈 싸 먹으면 별미다. 이밖에 새콤한 '민어회무침', 2시간 넘게 끓여 육수를 낸 '민어어죽'은 보양에 그만. 묵은지나 갓김치를 넣어 자작하게 끓여낸 민어찜, 민어껍질을 자글자글하게 끓인 뒤 소금 간을 하고 굳힌 '민어껍질묵'과 1년 이상 저온고에서 숙성시킨 '민어머리젓'. 경상도에서는 맛보기 힘든 이 식감라인, 곰삭은 남도 맛의 출발선이다.

주로 데쳐 먹는 껍질.

◆가짜 민어 진짜 민어

수중에서 뿌욱뿌욱~ 소리를 내는 민어. 부레가 커서 물 위로 올라오면 바로 죽는다. 그래서 활어회로 먹고 싶어도 먹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현재 목포 민어 거리에서는 거의 24∼36시간 숙성한 민어를 회로 내놓는다.

개고기 식용 문화가 자취를 감추자 민어 인기가 더 폭등하고 있다. 일종의 대체재 효과랄 수 있다. 제철에는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러다 보니 은근슬쩍 악덕상혼이 기승을 부릴 수가 있다. 정부도 진짜 민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요즘 민어를 닮은 '큰민어'와 '남방먹조기'가 민어류로 수입신고 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관세청과 협업으로 '2023년 관세청 수입물품 표준품명 개정안'에 수입산 활 '큰민어'를 추가하고 '남방먹조기' 명칭을 병기하기로 했다. 남방먹조기'는 국내산 민어와 달리 옆줄을 따라 검은 반점이 있으며, 국내산 민어가 최대 90㎝까지 성장하는 데 비해 남방먹조기는 최대 2m까지 성장한다. 주로 횟감용으로 중국에서 수입된다. 유사 어종인 '대민어'와 '점성어'도 민어로 둔갑할 수 있다.

국산 민어의 비늘과 꼬리 부분을 보고도 구분 가능하다. 국산 민어는 비늘이 얇고 작은 것이 특징이며, 꼬리지느러미가 가지런한 돌출형 마름모꼴(◇)이다.

아무튼 목포에서 제대로 먹으려면 1인분 4만원 정도는 생각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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