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준의 새론새평] 겨우 이러자고 지방자치 하자고 했나?

김성준(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정치적 선택의 본질은 집단적 의사결정이며, 집단적 의사결정의 핵심은 '합의'이다.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합의에 필요한 의사결정 비용은 증가한다. 가장 이상적인 합의는 만장일치이지만, 만장일치에 가까워지려면 토론하고 설득하는 데 소모되는 시간과 노력 등 큰 비용이 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최적의 상태로 집단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이 때문에 선진국을 비롯한 우리나라가 중앙집권제보다 지방분권과 자치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를 통해 해당 지역 주민이 필요로 하는 공공재와 서비스를 보다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나아가 지자체 간 경쟁을 통해 행정 서비스의 품질이 나아지고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복지 수준이 높아진다.

지난 6월 말로 지방의회 의원들의 전반기 임기 2년이 마무리됐다. 1995년부터 정책을 결정하는 의결기관인 광역 및 기초의회와 집행기관인 자치단체장을 주민의 직접 선거로 뽑았으니 지방자치를 시행한 지 벌써 30년이 됐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성숙한 청년이 된 셈이다. 하지만 정신연령이나 하는 행동의 수준은 여전히 철없는 애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전국 243개 광역 및 기초의원들의 공무국외출장 관련 기록을 전수조사한 결과 외유성으로 의심되는 해외 출장이 무려 1천 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적으로는 의원과 공무원이 해외에 나가 많이 배우고 경험하는 데 예산이 지나치게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늘 같은 곳에서 같은 것만 보고 책상에 앉아 궁리만 해서는 시민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업무와 연관성이 거의 없이 해외로 놀러 다니려는 목적의 '외유성(外遊性)' 출장이라는 점이다. 이번 조사 결과 의원들이 쓴 비용도 약 240억원에 달했다. 물론 이 모든 비용은 국민의 혈세로부터 나온다. 서민들은 돈 한 푼에도 벌벌 떠는데 의원님들은 적지 않은 연봉에 더하여 놀러 다니시느라 귀중한 세금을 펑펑 쓰고 있는 것이다. 국회부터 기초에 이르기까지 의원들의 외유성 출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단 지난 2년뿐이겠는가!

그렇다면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무릅쓰고까지 왜 의원들은 외유성 해외 출장을 강행할까? 이는 '공(公)돈은 공(空)돈'이라는 사고방식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이 같은 사고방식은 결국 경쟁적으로 공(空)돈을 자기 돈처럼 쓰도록 부추긴다. 결국 외유성 출장을 단순히 공사(公私)를 구분 못 하는 일부 의원들의 의식 수준 문제로 치부해서는 앞으로도 이런 행태는 계속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인센티브의 동물이기 때문에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절대로 '도덕적 해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센티브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법과 제도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현재의 법과 제도를 손봐야 한다. 우선, 의원들의 해외 출장을 엄격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 공무원들의 경우 해외 출장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공무국외여행 규정이 마련되고 각 부처가 공무국외여행 사전심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시행한 이후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

다음으로 지방의원들이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과 사업비를 폐지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흔히 재량사업비는 지방의원들이 지역구의 소규모 주민 숙원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집행부에 예산 집행을 요청하는 것인데, 그동안 의원들의 '쌈짓돈'으로 불려 왔다. 그들의 쌈짓돈 역시 국민의 혈세이다.

이제는 일부 지방공무원들이 지방자치의 장(場)을 절도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짓을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지방자치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민주제를 후퇴시킬 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합법적으로' 도적질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납세자 호주머니를 몰래 훔쳐 특정인들의 외유를 위해 갖다 쓴 것이기 때문에 대놓고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보다 죄질이 더 사악하다.

가능한 한 의회 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정 지원만을 남겨두고 지방의원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바꾸어 오직 지역민을 위한 이들이 봉사할 수 있게 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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