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용모의 영혼의 울림을 준 땅을 가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산 라카포시

순백의 설산, 밤하늘엔 푸르게 ‘빛나는 벽’
세계 27위·파키스탄 12위의 고도…트레킹 시작부터 자갈 덮인 오르막
베이스캠프 도착 원주민과 새참도…하룻밤 사이 본 별똥별·일출 감동
능선 넘자 ‘백설 봉우리’ 파노라마…빙하 등정 어려워 안전하게 귀환

라카포시 빙하위에서 가슴 벅찬 기쁨으로 플랜카드를 펼치자 신기루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라카포시 빙하위에서 가슴 벅찬 기쁨으로 플랜카드를 펼치자 신기루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 빛나는 벽 라카포시

아침을 맞는 미나핀 마을에서 본 라카포시(Rakaposhi)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다. 만년설을 인 산허리에 난 실오라기 같은 길이 하염없이 이어지다 사라진 곳에는 양과 소, 말들이 풀을 찾아 고원을 누비고 다닌다.

7,788m의 라카포시는 나가르 계곡에 위치한 '빛나는 벽 또는 안개의 어머니'라고도 알려져 있는 파키스탄 카람코람산맥의 장엄한 산이다. 현지 언어로 빛나는 벽을 의미하는 그 이름은 웅장함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라카포시로 불리는 이 봉우리는 세계에서 27번째로 파키스탄에서는 12번째로 높다. 이런 순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그림 같은 산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놀라운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트레킹 능선에서는 디란 빙하와 미나핀 빙하의 멋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1958년 영국 파키스탄 원정대의 마이크 뱅크스와 톰 패티가 라카포시를 처음으로 등정했다. 산의 폭은 매우 넓어 동서로 거의 20km에 달한다. 정상에서 기슭까지 거의 5,000m에 걸쳐 중단 없이 직접 떨어지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봉우리로 나가르 계곡위로 솟아 있다.

산 북쪽 아래에 있는 미나핀 빙하는 카람코람 고속도로(KKH)와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거대한 설산과 빙하가 어우러진 풍광이 일품이다.

흰 뭉게구름과 만년설을 머리에 인 라카포시와 산장미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흰 뭉게구름과 만년설을 머리에 인 라카포시와 산장미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 엽서같이 아름답고 신비한 라카포시 트레킹

라카포시 트레킹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킹 중 하나다. 트레킹은 아름다운 마을 미나핀에서 시작된다. 베이스캠프에서 1박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먹을 음식과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다. 트레킹을 안내하고, 고산의 짐을 감당하기 위해 셰르파와 함께했다.

미나핀 마을을 출발하여 왼쪽으로는 높지 않은 회색빛 산이 병풍처럼 압도하고 있다. 본격적인 지그재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시작부터 돌과 자갈로 덮인 오르막길을 오르자니 쉽지 않다. 계곡에는 눈 녹은 회색빛 물이 높은 폭포로 바위 사이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방이다스 초원에 돌로 만든 오두막집에서 원주민이 직접 만든 피타와 짜이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방이다스 초원에 돌로 만든 오두막집에서 원주민이 직접 만든 피타와 짜이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산중턱에는 돌을 쌓고 나무로 지어진 작은 원주민의 집도 있다. 야생화가 핀 싱그러운 초원에 양과 소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방이다스(Bangidas)라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피타와 짜이를 마시며 잠시 쉬어 간다. 여기는 방목을 하는 소나 양을 몰러 올 때나 여행자를 안내하고 마을로 돌아 갈 수 없을 때 사용하는 임시 처소 같은 곳이라 한다.

출발 후 3시간이 지난 중간쯤에 하파쿤(Hapakun)이라는 평원 목초지에서 휴식중인 트레커들과 준비한 점심을 나누어 먹었다. 이곳에는 텐트, 주방, 화장실 및 사전 설치된 숙박용 텐트가 있는 캠핑장이다.

하바쿤에서 능선을 향해 빙하계곡이 나타나는 산비탈을 어렵게 올라간다. 해발3,000m의 높은 지역이라 한발 한발 천천히 이동한다. 능선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반대편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능선의 앞과 뒤가 이렇게 극명한 대조를 이룰 수 있을까?

마지막 능선위로 올라선 순간, '으악!'하고 탄성을 지른다. 바로 눈앞에 라카포시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설산과 엄청난 빙하가 맞이하고 있다. 여행자도 모르게 환호와 탄성을 토해내며, 두 팔을 벌려 만세를 불렀다.

베이스캠프에서 원주민들과 함께하며, 새참으로 정을 나누었는데 이분들이 모두 70세 이상으로 장수 마을이다.
베이스캠프에서 원주민들과 함께하며, 새참으로 정을 나누었는데 이분들이 모두 70세 이상으로 장수 마을이다.

◆ 라카포시와 사랑에 빠진 베이스캠프의 별천지

능선을 올라 오른쪽편의 언덕을 내려가서 트레킹을 시작한지 6시간만에 라카포시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가 있는 방목지의 이름은 타가판(Tagaphan)이다. 7월의 라카포시 베이스캠프는 몇 마리의 말과 양들이 잔설을 뒤집어 풀을 뜯고, 이곳을 찾아온 원주민들이 돌집을 짓는다. 그 일을 잠시 도왔더니 맛있는 새참을 함께했다.

텐트를 치려다 베이스캠프에 있는 돌집에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트래커가 없는 날 여행자는 원주민에게 무언가 기여를 하고, 또 함께 하고 싶었다. 얼음 같이 찬 빙하가 녹은 물이 생수였고, 양젖을 발효시켜 요구르트를 마시고, 즉석에서 요리한 간단한 식사를 했다.

라카포시 빙하위에서 가슴 벅찬 기쁨으로 플랜카드를 펼치자 신기루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라카포시 빙하위에서 가슴 벅찬 기쁨으로 플랜카드를 펼치자 신기루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하늘아래 가장 가까운 곳, 하늘과 연결된 천상의 고원에 어둠이 내리자 설산 라카포시는 푸르게 빛났다. 별들도 어느새 밤하늘을 수놓는다. 별똥이 떨어지고, 한꺼번에 두 세 개가 떨어지기도 하더니 나중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똥들이 라카포시의 어깨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이른 새벽, 원주민들의 기상에 여행자인 필자도 깰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니 서쪽 하늘에 별들이 가까이 내려앉았다. 날이 밝아오고, 떠오르는 해와 함께 여행자는 바위에 올라 라카포시를 바라본다. 거대한 자연을 여행자의 작은 가슴에 다 담을 수 없었다.

라카포시 산 능선을 따라 핀 붉은 꽃과 만년설의 봉우리와 빙하계곡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라카포시 산 능선을 따라 핀 붉은 꽃과 만년설의 봉우리와 빙하계곡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 안개의 어머니 라카포시 품에 안기다

베이스캠프에서 왕복12km의 빙하를 가로질러야 디란(Diran)베이스캠프를 다녀올 수 있다. 약 7~8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디란 베이스캠프를 다녀올 계획을 하고, 라카포시 베이스캠프에서 하룻밤을 묵었었다.

작은 능선을 넘어서자 믿기 힘든 초현실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어제 능선에서 보던 것과는 또다른 라카포시 빙하가 맞이하고 있다. 눈앞에 영화에서나 볼 법한 빙하와 라카포시, 디란 등 백설 봉우리가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조심스럽게 빙하로 들어서자 라카포시 빙하가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발밑으로 빙하 녹은 물이 졸졸 흐른다. 혹시나 크레바스가 나타날까 더럭 겁이 나 셰르파의 발자국만 따라 걸었다. 빙하를 가다가 입을 쩍 벌린 크레바스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옥빛을 발하며 웅크리고 있다.

매혹적인 트레킹기념으로 미나핀 마을 회장의 축하를 받으며 기념석에 사인을 하여 전달했다.
매혹적인 트레킹기념으로 미나핀 마을 회장의 축하를 받으며 기념석에 사인을 하여 전달했다.

얼마를 들어가니 더 깊고 넓은 크레바스들이 나타나자 온몸이 오싹해지고 더럭 겁이 났다. 1km정도를 가는데 2시간은 더 걸린 듯하다. 추위도 엄습하고 호흡이 무엇보다 힘들고, 발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머리가 띵하고 숨이 가쁜 고소증세다. 셰르파는 벌써부터 위험하다고 돌아갈 것을 종용한다. 오후에는 빙하가 녹아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거대한 설산을 바라보며 감동의 눈물과 먹먹한 가슴은 지금도 여여하다.

환상적인 라카포시 빙하의 반대편에 있는 디란 베이스캠프로 계속 가려면 트래킹을 벗어나 빙하를 등정하기 위한 충분한 장비를 갖추어야 했다. 준비가 부족했고 안전과 건강이 우선이고, 여행자의 여행목적은 안전한 귀환에 있기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준비한 플랭카드를 펼쳤다. 만년설에 뒤덮인 라카포시 산은 거대한 빙하덩어리와 함께 신기루 같은 감동을 안겨준다. 장엄하다고 외쳤다.

안용모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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