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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인터뷰] 반기문 “한미일 공조, 北 도발 신속 대응…‘자강’ 노력 한층 강화해야”

국민 핵무장 찬성 70%이지만 자체 핵무기 보유 신중해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매일신문DB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매일신문DB

매일신문은 창간 78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외교사의 산 증인이자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세계속에 드높인 반기문 '보다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 재단'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사전 질문지를 통한 서면, 그리고 7월3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재단 사무실에서의 대담으로도 진행됐다. 반 이사장은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여러 외교·안보 현안을 짚어줬으며 특히 대한민국을 구해낸 '다부동 전투'에 대한 의미 부여를 잊지 않았다.

- 문재인 정부 때 악화일로를 걸었던 일본과의 관계를 윤석열 정부는 복원했다. 이를 통해 한미일 협력 강화 기반도 마련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36년간의 식민지배 때 일제의 탄압은 대단히 통탄스러운 것이고 역사왜곡을 하는 일본을 보면 얄밉기 그지 없다. 하지만 대일 관계는 대승적 차원에서 봐야한다. 중국을 보라. 나라의 절반이 일제에 의해 점령당했고 난징대학살 때는 30만명이 학살당했다. 중국에는 수치스러운 역사이지만 그들은 이를 좀처럼 거론하지 않는다. 수치스러운 역사를 자꾸 꺼내는 것은 우리 가슴만 후벼파는 것이다. 정치권조차 후진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이제 젊은 세대가 기를 펴고 나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한다. 한일 관계는 미래 지향적으로 나가야한다.

- 북한에 대해 유엔 주도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진행되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유엔이 형해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불량국가 북한을 제어하는 등 예측 가능한 세계질서를 위해 유엔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한데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유엔 안보리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래, 무려 10개에 달하는 대북한 제재를 시행하고 있다. 북한을 포함, 193개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제재 결의를 충실하게 이행해야 할 헌장상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며 탄도미사일 발사와 무기 거래 등 각종 불법적 도발을 일삼고 있지만, 안보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안보리의 기능 마비 상황은 '유엔 무용론' 또는 '유엔 형해화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이는 유엔 기구 중에서 국제평화와 안보 현안을 관장하는 안보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안보리가 북한의 새로운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남용 때문이다. 러시아의 경우, 더욱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예를 들어, 북한에 대한 안보리의 제재 이행을 감시하기 위한 전문가 패널의 기한 연장조차도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올 4월 말에 중단된 바 있다. 그런데, 유엔 회원국 중 5개 상임이사국에만 부여된 '특권'인 거부권의 남용 문제는 현 유엔 시스템의 근본적 한계와도 직결되는 핵심 현안이다. 이런 가운데, 올 6월 19일 푸틴 대통령이 방북해 북-러 간 사실상의 동맹 조약을 체결한 것은 러시아가 안보리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을 편들겠다는 노골적인 의사 표시다.

- 지금 흘러가고 있는 상황의 타개책을 든다면?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불법행위를 제어하기 위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우리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미국, 일본, 유럽 등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 및 우방국들과 공조해 북한의 도발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 비록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남용으로 안보리의 의사결정 메카니즘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지만, 유엔 체제 하의 개발협력 및 인도지원 활동은 계속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분쟁 지역에서 유엔 주도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요청은 증가하고 있다.

- 오랫동안 외교 현장을 누비시면서 소련의 붕괴도 직접 목격하셨을 텐데 북한의 현재 상황, 그리고 미래를 어찌 보는가?

▶내년이면 남북한이 분단된 지 80년이 되지만, 한반도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특히, 북한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우리는 소련 및 동구권 등 엄격히 통제된 절대 권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을 목격한 바 있다. 21세기 들어, 지구상에서 북한처럼 3대에 걸쳐 세습 독재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국가는 없다. 그런데, 북한 정권이 이처럼 상당 기간 유지되는 배경은 국내적으로는 국민들에 대한 국가의 철저한 통제와 감시 때문이며, 국제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과 버팀목 역할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경제난 타개와 국민복지 향상 필요성을 종종 외쳐대지만, 거버넌스와 기본 시스템의 개선 없이 주민생활 향상 등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아울러, 안보리가 10개에 달하는 대북 제재 결의를 시행하고 있음에 따라, 북한의 경제적 고립은 계속 심화되고 있다. 최근, 북한이 외국 주재 공관들을 잇달아 축소한 것도 경제난에 따른 자구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북한은 사이버 해킹을 통해 탈취한 암호화폐 및 안보리 제재회피로 벌어들이는 외화를 핵미사일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이처럼 '정상 국가'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북한은 윤석열 정부가 직전의 문재인 정부와는 반대로, 원칙에 입각하여 일관된 대북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데 대해 큰 부담과 불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 2국가론을 들고 나왔는데 그 속셈은 무엇으로 보나?
▶올 4월부터 북한이 2국가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과의 대화나 교류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이와 동시에, 윤석열 정부와의 단절을 통해 내부 결속을 공고화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또한, K-Pop 등 한류가 북한의 청년층에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을 효율적으로 차단하려는 속셈도 있다고 본다. 북한의 대남 적대시 정책에 대응하여, 우리는 자강(自强)과 동맹, 그리고 국제공조를 기본 축으로 삼으면서,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개선을 일관되게 추구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북한의 2국가론 및 관련되는 움직임에 대해 일일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우리의 지상과제라는 기존의 확고한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해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들끓고 있다. 미국 주도 핵 비확산 체제에 정면 배치되는 부분이라 비현실적 시도라는 의견이 일단 지배적이다. 미국의 핵우산으로 북핵을 방어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핵무장을 해야 할까?

▶ 최근 스웨덴의 연구기관인 SIPRI는 북한이 5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는데, 북한이 한국을 '전쟁 중인 적대국'으로 지칭하면서 핵 미사일의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다. 특히, 올 6월 러시아와 북한이 '준동맹 조약'을 체결함에 따라, 향후 우리에 대한 북한의 '핵공갈'이 더욱 대담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적으로는 자체 핵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분출될 것으로 본다. 70%가 넘는 우리 국민들이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한국이 핵무장을 시도할 경우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는 우리에 대해 제재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사회의 제재는 우리에게 크나큰 고통을 줌과 동시에, 정치적 고립을 초래할 것이다. 무역 및 투자는 물론, 원전용 연료 확보 등에도 큰 차질이 발생할 것이다. 특히, 북한과는 정반대로, 대외의존적인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생활해온 우리 국민과 기업이 경제 제재에 따른 고통과 불편을 감내해낼 수 있을지 매우 의문시된다. 우리가 핵무기 개발을 위해 핵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할 경우, 국제사회는 한국을 북한과 유사한 수준의 문제국가로 취급할 것이다. 즉, 한국을 '제 2의 북한'으로 간주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북한 비핵화와 인권개선을 추구해온 한국의 가치 우위적 외교가 심대한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다. 또한,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과 대만의 연쇄반응을 야기해,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핵무기 경쟁은 물론, 핵비확산 체제의 실질적인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 핵무장을 못한다면 현실적 대안이 있을까?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우리 스스로 '핵무장의 길'로 나가는 것은 현명치 않으므로, 한미동맹 차원의 확장억제 강화를 추진하되, 향후의 상황 전개 여하에 따라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 및 플루토늄 재처리는 핵비확산 조약의 4조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불가양의 권리(inalienable right)'인 만큼, 우리의 농축 및 재처리 활동이 가능하도록 미국을 상대로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을 재차 개정하기 위한 원자력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등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우려가 크다. 트럼프는 과연 동맹을 해체하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감행할 수 있을까?

▶올 7월 중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소위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미국의 동맹국을 포함, 많은 나라들이 트럼프의 재등장을 우려하면서 자체적으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본다. 만일 11월 선거 결과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그는 자신이 선호하는 '상거래적(transactional) 접근' 방식에 따라, NATO 및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에서는 의회와 언론, 그리고 여론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트럼프가 독단적으로 군사동맹을 와해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트럼프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비하며, 우리는 트럼프의 외교안보 참모들에게 우리의 입장을 꾸준히 설명하면서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여 '자강(自强)' 노력을 일층 강화해야 한다. 최근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자강 없이 동맹에만 의존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해올 것이다. 올 11월 이후 대한민국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재집권한 트럼프가 주한미군 분담금의 엄청난 증액을 요구하면서 미군 철수를 위협하고, 우리와 사전 협의 없이 김정은과 직접 접촉하여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면서 미-북 관계 정상화 및 경제협력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여, 일차적으로 핵공유 방식을 통한 전술핵 재배치를 관철해야 한다.

- 다부동 전투는 유엔군 선봉이었던 미군이 우리 국군과 함께 싸우면서 대한민국 공산화를 막아낸 피의 현장이었다. 다부동 전적지가 가진 국제적 의의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다부동 전적지가 한국 내 기념물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전적지로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얘기해준다면?

▶국군과 미군(유엔군)은 1950년 8~9월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낙동강 전선을 지키면서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했다. 북한의 전면남침 직후, 1950년 7월 유엔 안보리는 결의를 채택하여 유엔사령부(UNC)를 설치하였으므로, 다부동 전투에 참전한 미군은 유엔군의 선봉대로 참전한 것이다. 한국 전쟁 초기 서울을 신속히 함락한 데 이어, 대구 및 부산을 향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북한의 정예부대를 상대로 우리 국군이 보여준 영웅적인 항전은 미군의 대규모 참전 결정 등 추후 유엔군의 전폭적인 동참을 견인했다. 다부동 전투의 최대 성과는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결정적인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국군과 미군이 전투 지역을 분담하면서 합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다부동 전투는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이미 한미동맹의 취지와 정신이 실전(實戰)에서 발현된 최초의 사례다. 한국전 참전 유엔군은 유엔 역사를 통틀어 침략국을 상대로 대규모 전투를 수행한 유일한 경우다. 특히 다부동 격전지는 '유엔군의 선봉'인 미군이 국군과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북한군을 물리친 기념비적인 장소다. 이처럼, 당시 국군과 미군(유엔군)이 긴밀한 합동작전을 통해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음에 비추어, 한미동맹 차원 및 참전 우방국들과의 협조 하에, 다부동 전적지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외교 무대를 떠나서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나라의 인성 교육 강화를 위한 조언을 교육현장에 하는데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우리 세대는 교육을 참 잘 받았는데 그 핵심은 도덕 교육이었다. 최근 어느 고교에 가서 교장선생님과 대화를 했는데 교장선생님이 학생들과 대화를 하는 기회가 없고 방송으로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가 막혔다. 우리 세대는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서 도덕을 가르쳤다. 주입식 교육으로 지식만 쏟아부어서는 안된다. 이주호 교육부총리도 그러하고, 전국의 교육감들도 그러하고 내가 찾아다니며 읍소를 했다. 지식만 채운 학생이 아닌 사람으로 키워야한다. 인성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 반기문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재단' 이사장 약력

1944년 충청북도 음성 출생

충주고·서울대 외교학과·하버드대학교 케네디행정대학원 석사

케임브리지대학교 법학 명예박사

1970년 외무부 입부

김영삼 정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

제8대 유엔 사무총장

전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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