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미국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일례로 60세가 넘어도 높은 생산성을 내며 일하는 언론인이 미국엔 많고 한국엔 드물다. 올해 81세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기사·칼럼 외에 31세부터 21권의 저서를 냈는데 이 중 10권을 61세부터 78세까지 18년 동안에 썼다. 그는 40대, 50대엔 2권, 4권의 저서를 냈다.
뉴욕타임스 최초의 여성 논설실장을 지낸 올해 79세의 게일 콜린스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같은 명저를 쓴 71세의 토마스 프리드먼 등 60~80대 나이의 현역 기자·앵커·PD들이 미국엔 수두룩하다. 꽤 많은 나이에도 탁월한 성과를 낸 전문 직업인들이 잇따랐고 이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존경·보상이 더해지면서 '나이 불패(不敗)' 문화가 굳어진 것이다.
1993년 84세에 타계한 해리슨 솔즈베리 기자는 1989년 6월 천안문 시위 당시 마침 베이징에 있다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유혈 사태를 '신참 기자가 화재 현장을 묘사하듯' 방송에 생중계했다. 그는 65세에 직장을 자진 사직하고 중국 탐구를 시작해 마오쩌둥의 1930년대 장정 루트를 직접 답사해 77세에 〈The Long March〉를 내는 등 75~84세에 4권의 중국 전문 서적을 발간했다.
그의 중국과 러시아 관련 저서들은 웬만한 학자·연구원의 책보다 정확성과 깊이, 통찰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의 한 칼럼니스트는 "솔즈베리 기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서가에 꽂힌, 고금(古今)을 망라한 책들에 압도되어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고 술회했다. 30세에 퓰리처상을 받고 73세에 타계한 언론인 데이비드 핼버스템도 평생 21권의 저서 중 9권을 60세 이후에 냈다. 비록 대필 작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올해 78세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60~69세에 10권의 저서를 쓴 것도 미국 사회의 이런 분위기 영향일 수 있다.
태평양 건너편 한국에선 언론인, 관료는 물론 학자들까지 60세가 넘으면 대개 생산성과 성과물이 뚝 떨어진다. "이 나이에 뭘 또…"라는 고루한 생각에서다. 이는 평균수명 80대 중반에 도달한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 조로(早老)이자, 평생 연마하고 축적한 사고력과 경험·지혜를 파묻어 버리는 비극적 현상이다.
동시에 공부를 입시 또는 출세 수단으로만 여기는 전(前)근대적인 습속에 한국인이 갇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직위 및 돈벌이 기회와 멀어지는 정년 퇴임 무렵부터는 공부와 담쌓고 인맥과 줄서기로 생존한다는 중·후진국 시절 발상 그대로다.
올해 104세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와는 다른 삶을 당부한다. "우리나라 50대 이상 어른들이 독서를 즐기는 모습을 후대에게 보여 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행복인 동시에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진입·유지하는 애국(愛國)의 길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한다.
나이 들수록 공부하고 이웃·국가·민족을 생각하며 인생 마라톤을 완주하는 국민이 많아야, 한국도 세계를 이끄는 일류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바람에서다.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에 몰입해 활력 있는 인생 후반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애국 행위라는 말이다.
주변을 보면 등산이나 골프, 주식투자, 유튜브, 술 등으로 소일하는 60, 70대가 많다. 은퇴 후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이런 모습만 넘쳐난다면 한국의 앞날은 어둡다. 쇠락하는 코리아의 조짐은 이미 조금씩 표출하고 있다. 마침 올해부터 1964~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 부머 954만 명의 은퇴가 시작된다.
앞선 1차 베이비 부머(1955~63년생, 705만 명)와 함께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1천650여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산업화·글로벌화를 성취한 역량 있는 세대이다. 이들이 여가·휴식과 더불어 각자 형편에 맞춰 즐겁게 '마지막 애국'에 도전하면 어떨까. 애국하는 6070이 큰 흐름이 될 때, 코리아는 다시 도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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