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하계올림픽이 프랑스 파리에서 폐막했다. 코로나19 탓에 관중 없이 진행된 직전 도쿄 대회와 달리 지구촌 최대 스포츠축제다운 위상을 되찾았다.
6년 전 세계의 이목은 한국에 집중됐다. 92개 나라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 특히 남북 선수단 개회식 동시 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치러진 '평화 올림픽'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환희와 감동을 선사한 평창 대회를 진두지휘했던 이희범(75·부영그룹 회장) 조직위원장에게 올림픽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최근 '성화는 꺼져도 올림픽 정신은 이어가야'(사람과삶 출판)라는 제목의 비망록을 낸 그를 만나 솔직한 감회를 들었다.
-스포츠계와 인연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개막 1년 9개월을 앞둔 2016년 5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갑자기 물러나면서 조직위원장을 대신 맡아달라는 연락이 국무총리실에서 왔다. 하지만 당시 LG그룹에 몸담고 있기도 했고, 스포츠에는 문외한이어서 극력 고사했다. 그래서인지 격려해주신 분도 계셨지만 염려와 걱정을 한 분이 더 많았다. 하하하.
-취임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제 책 추천사에서 "어려운 여건과 심지어 정치적 긴장이 높은 시기에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도전에 맞서 싸웠다"고 저를 평가했다. 실제로 그랬다. 대통령 탄핵과 북한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내우외환의 연속이었다. 해외 언론들이 한반도 위기론을 쏟아내면서 각국의 불참 움직임마저 있었다.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나
▶재정 문제였다. 사업비는 예상보다 늘어나는데 돈은 부족하다 보니 각종 공사가 중단됐다. 하도급 대금과 월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조직위를 찾아와 아우성을 쳤다. 취임 직후 새로 재정계획을 만들면서 아무리 쥐어짜봐도 3천억원 적자가 불가피했다. '적자 올림픽=실패 올림픽'이란 각오 아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편 끝에 흑자 올림픽을 달성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조직위 수입을 늘리려면 기업 후원금이 확대돼야 하는데 많은 기업 총수들이 당시 논란이 됐던 스포츠재단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얻은 별명이 '울고 다니는 위원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조직위에서 봉급을 받지 않았고, 수행비서도 두지 않았다. 직원들과 식사할 때도 거의 대부분 제 개인카드를 썼다.
이런 일이 알려지면서 한 번은 익명의 독지가가 조직위에 3천만원을 보내왔다. 알아보니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의 친형인 권오성 씨였다. 너무 고마워서 언론에 실명을 공개했는데 그는 언론사를 찾아가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잊지 못할 추억도 많았을 것 같다
▶2016년 8월 리우 올림픽 때는 차기 대회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지구 반대편 브라질을 한 달 새 3차례나 가야 했다. 개·폐회식과 이어진 패럴림픽에 성화 주자로 참여했다. 고생은 했지만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배울 것과 배워선 안 될 점을 빼곡히 메모했다.
한국에 이어 2020 도쿄 하계올림픽,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예정돼 있어서 평창이 맏형 노릇을 했다. 도쿄와 베이징 조직위 직원 200여 명이 한 달 이상 평창을 견학했고, 평창 직원들은 도쿄와 베이징 조직위에 파견돼 우리 경험을 전수했다. 폭설이 잦은 대관령의 2월이었는데도 대회 내내 날씨가 좋았던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아쉬운 점은 없었나
▶2017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서자 조직위를 흔드는 움직임이 있었다. 사표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국가 대사를 팽개치는 것은 공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대회가 끝난 뒤 자원봉사자, 유공자, 조직위 직원 등에 대한 포상을 건의했는데 정부는 감사원 감사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1년 6개월이 지나고서야 기대보다 적은 인원만 상을 받았다. 책을 낸 것도 대회 성공의 주역인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장이라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사죄의 마음에서 비롯됐다.
-지난 1월 강원도에서 동계청소년올림픽이 열렸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무척 기뻤다. 평창 올림픽의 소중한 경험이 도움 됐길 바란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 6년 전 첫 만남에서 업무 얘기만 나눴을 정도로 일벌레인 그는 나와 찰떡궁합이었다. 평창 대회 당시 실무 협의에서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난제를 푸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도 달라졌으면 한다. 국제 사회에서 벼락치기식 인맥 형성은 통하지 않는다. 해외 인사들과 오랜 시간 우정을 쌓으며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국제통을 양성해 일관성을 갖고 현장에 투입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관계, 재계, 학계를 두루 거쳤다. 자리 운을 타고 났다는 말이 따라다닌다.
▶과분하게도 상공부 사무관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의보다는 타의로 옮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산업자원부 장관이 될 때는 서울산업대 총장 취임 직후여서 고사했는데도 '부안 사태' 탓에 본의 아니게 중책을 떠안았다.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경북 경주로 결정된 뒤 대학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무역협회장을 맡아달라고 당부했다. 자리 욕심 없이 직무에만 매진한 게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게 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비록 안동댐 건설로 수몰됐지만 중학교 졸업 이후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 양성 등 봉사하고 싶다. 2020년 초대 경북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았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69세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안동으로 낙향한 퇴계 선생이 롤 모델이랄까. 대부분의 직책은 그만뒀으나 경상북도, 안동시 투자유치위원장과 한국정신문화재단 이사장 직함은 계속 갖고 있는 이유다.
-대구경북 발전을 위한 고언을 부탁드린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 가장 큰 이슈이다. 결국 기업이 있어야 일자리가 생기고 인구 감소에도 대응할 수 있다. 대구경북은 우리 역사의 뿌리이고 산업화의 선봉장이었다. 이제 문화강국, K-컬쳐의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대구경북 행정 통합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각 지역이 자존심만 내세울 게 아니라 각자의 장점을 융합, K-컬쳐의 선봉이 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 기회발전특구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한다.
◆프로필
△1949년 경북 안동 출생
△월곡초-안동중-서울사대부고-서울대 전기공학과(학사)-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 경영학과(석사)-경희대 경영학 박사
△행시 12회-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산업자원부 차관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 서울산업대 총장
△산업자원부 장관
△한국무역협회장
△STX에너지·STX중공업·STX건설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경상북도 문화재단 대표
△부영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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