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스트레스가 방아쇠 역할" 지난해 '대한민국 허리, 40,50대 공황장애 시달린다.'라는 헤드라인을 달아 언론에 보도된 언론보도 일부다. 국민 20만 540명(2021 기준)이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공황장애는 불안 장애의 일종이다. 가슴이 뛰고, 숨이 막혀 쓰러질 듯한 발작이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공황장애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심리적인 불안은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20대 초중반,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경쟁사회에서 심리적인 압박은 불안과 우울, 공포와 두려움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운동선수와 연예인 중에는 이러한 사례를 토로한 경험들도 적지 않다.
연극에서도 선수들의 불안, 우울 등을 소재로 한 공연은 극단 신작로의 <새빨간 스피도(RedSpeedo)>(이영석 연출) 정도가 떠오른다. 올림픽 출전 준비를 하고 있는 수영선수 레이(경지은 분)를 통해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침묵을 강요하는 도핑 시스템과 스포츠계의 공정과 윤리 문제를 드러낸 작품이다. <다이빙보드>(작, 말레나 페니쿡 연출 박혜선)는 <억울한 여자>, <어떤 접경지역에서는>, <타바스코>, <백 년의 비밀> <친절한 고르스키 씨>를 통해 극 중 인물의 섬세한 형상화와 동시대적인 무대 형식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의 현상을 극단 사개 탐사 방식으로 무대화해 오고 있는 박혜선 연출이 번역했다. 청소년 수영선수인 극 중 인물 애니(신윤지 분)가 다이빙 보드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심리적 불안감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국내 초연 작품이다.
◆박혜선 연출의 치유극복 설명서 <다이빙 보드>
스토리는 심플하다. 주인공 애니(신윤지 분)는 17세로 고등학교 1, 2학년 정도로 설정되어 있다. 다이빙 도중 낙상 사고가 난 뒤 불안감을 증폭하는 알 수 없는 남자들의 형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형체들은 애니를 향한 대중의 시선들이면서도 불안한 의식의 내면들이다. 과도한 경쟁에서 오는 내면은 거세할 수 없는 형체들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매일 꿈처럼 시달리고 있는 듯 말이다. 배우들은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표현된다. 수영 팀 동료 티어난(정민주 분)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애니와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고 애니와 티어난의 불안감은 증폭된다. 모레노 코치(정나진 분)도 선수 시절 과거 이야기를 꺼내면서 용기를 주려고 하지만 애니는 알 수 없는 형체를 마주할수록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은 커지게 된다. 애니 대신 다이빙부 신입생 조앤나가 티어난이 지역 예선경기에 참여하고 통과하게 된다. 알 수 없는 형체들이 자신의 내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다이빙 플랫폼으로 향하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이빙 보드에 올라선다. 애니가 수영장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것이 마지막 장면으로 처리된다. 마치 우리들의 내면에서 자라나고 있는 불안과 우울, 공포와 두려움은 스스로 제거할 수 있는 것처럼.
무대 오른쪽으로는 3미터 정도 높이로 다이빙보드 플랫폼 구조가 설치되어 있다. 무대 공간은 관객이 마주 보고 극을 바라보는 구조이다. 중앙공간 사이에 직사각형 풀장의형태를 설치했고 우측으로는 플랫폼 다이빙 보드가 보이는 정도로 무대를 상상하면 될 것 같다. 애니와 동료 선수들이 연습하는 수영장 풀의 물속 이미지들은 영상과 파란 에메랄드빛의 천으로 활용했다. 모네노 코치도 수영선수 시절 올림픽 출전 때 사고 후유증을 겪고 있다. 애니의 친구 티어난도 대학 진학을 위해 대표팀으로 선발되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성적 문제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인물이다. 조앤나(이현지 분)는 외계인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라틴계인 나초(안병준)는 퀴어적인 성 정체성을 보이고 있다. 눈치를 챘겠지만, 등장인물들은 불안, 공포, 트라우마, 정신적인 장애를 공통으로 겪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연극은 등장인물들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내면을 거세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얼굴 없는 형체들을 마주하며 애니는 다이빙보드에 올라 " 무서워도 다이빙을 해야 해. 그냥 뛰어내리면 돼"라며 다이빙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비로소 불안한 형체들은 애니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거세되고 물속으로 소멸한다.
◆다이빙 보드에서 뛰어 내릴 수 없는 '불안한 내면'
작품이 다이빙 보드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불안한 내면의 형체들과 마주하고 있는 공간적 의미가 특정적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수영장은 사회구조이면서도 삶의 공동체이다. 현대인의 경쟁구조를 수영장 풀로 드러내는 것이다. 연출은 폐쇄적인 극장 공간을 수영장 환경과 동일화시켜 불안함과 두려움을 마주 볼 수 있도록 설정하고 있다. 마치 애니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나'와 '우리'가 겪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승리의 욕망으로 레일의 반환점을 돌며 우승을 위해 물속에서 온몸으로 달리는 것은 삶이다. 애니가 3미터 높이의 플랫폼 다이빙 보드에 오를 수 없는 것도 경쟁에서 오는 심리적인 불안감과 우승에 대한 두려움이 폐쇄성 공포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이빙 플랫폼은 인생의 목표를 향해 매일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정상에 서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성이다.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과거에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과도한 경쟁심리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그 내면에서 파동 되는 알 수 없는 형체들은 애니를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내면과 동일화되고 있다. 애니가 불안한 내면을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도 공동체이다. 아픔을 공감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번 박혜선 연출의 <다이빙 보드>는 알 수 없는 불안한 형체들에 시달리고 있는 애니와 티어난의 경쟁 구도 속에서 서로의 내면을 공감하며 아픔과 트라우마, 불안한 내면을 치유해 가는 것이다.
대체로 수영 선수들을 모티브로 한 작품에서 물은 공간과 극적인 전환을 이루는 오브제가 될 수 있음에도 블랙박스 쿼드극장 공간은 연출의 허구적 상상을 제약하고 있다. 연극이 시각적으로 구조회 될수 있도록 공간 활용이 되어야 함에도 쿼드 극장에서 공연된 작품들이 특수한 효과를 표현해야 하는 장면에서는 대체적으로 연극적인 상상을 개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무대로 돌아가 보자. 설치된 직사각형 풀 안에 물은 부재해 있고 애니의 심리적인 상태와 알 수 없는 형체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파동 될 수 있는 공간으로만 활용된다. 직사각형 상단 면을 넓게 활용해 배우들의 움직임과 등퇴장로를 연결했고 다이빙 플랫폼 앞을 망샤막으로 처리해 영상으로 물속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첫 장면은 아나운서 목소리로 애니와 티어난의 경기가 진행되고 배우들의 연속적인 다이빙 동작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다.
◆ <다이빙 보드>를 대학로 극장 쿼드로 설치하는 연출의 방식
우선 수영풀을 직사각형으로 하고 내부를 천으로 활용해 사실적 공간보다는 애니를 중심으로 심리적인 변화 공간으로 처리했다. 애니의 불안과 공포, 두려움을 거세할 수 없는 내면의 형체(남자)들을 그림자처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연출적 방식을 취했다. 수영대회에 나선 티어난과 조앤나가 수영 자세를 취하고 입체감 있는 등, 퇴장의 연결 동작과 다이빙 포즈로 두 선수를 대비적으로 표현한 것도 공간의 한계성을 최대한 활용해 보였고 파티장면도 적절했다. 그러나 아나운서 소리만으로 선수들의 경쟁구도와 수영대회, 인물의 심리변화를 입체적으로 활용해 감각적인 장면 형상화는 없었다. 시각적인 방식보다는 극중인물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 불안,공포, 두려움의 심리변화에 초첨이 맞춰진 듯 보인다. 물이 부재한 설정에서 영상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점은 박혜선 연출이 그동안 보여온 연출적인 미장센에 비해 클래식하게 처리되었다. 코러스들을 활용해 휴대전화 하면을 점수판으로 활용하는 연출적인 아이디어는 매끄러웠다.애니가 두려움을 떨쳐내는 마지막 장면에서라도 사실적인 물을 활용해 포인트 적인 연출성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공연은 애니의 심리적인 불안감과 얼굴을 알 수 없는 형체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내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불안감을 물의 이미지로 최대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 장면을 특징적으로 부각하지도, 극 중 인물들의 내면을 파고드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무대로 증폭시키지 않으며 텍스트를 일루젼화해 평면적으로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애니역의 신윤지는 내면의 불안감을 심리적인 연기로 잘 드러내 주었고 티어난의 정민주는 무대에서 감각이 좋아보였다. 모레노 코치 정나진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인물을 과하지 않게 표현해 주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음향(지미 세르) 조명(정태민), 의상(김우성), 영상(윤호섭), 무대(김정란)의 역할이 무대로 두드러졌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음향은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불안함을 다양한 멜로디로 내면을 뒷받침해 주었고, 의상은 색의 톤으로 인물의 대비감을 드러냈다. 얼굴 없는 사람들도 블랙 후드와 검은 바지로 통일하고 검은 전면 마스크로 형체를 알 수 없는 애니의 내면성을 보여주었다.
조명은 극장을 폐쇄적인 공간으로 활용해 불안감이 각 인물 별로 증폭되어 가는 분위기를 물이 부재한 설정임에도 공간성과 등장인물들의 대비 감을 장면별 조명으로 활용해 주었다. 영상은 극장 공간 전체로 확장했으면 어떨까 하면서도 물이 서서히 차오르는 애니의 마지막 장면은 물속으로 입수하는 듯한 사실감을 배우의 연기 속도와 통일성 있게 보여주었고 무대는 심플했다. 애니의 마지막 장면만이라도 2~3미터 다이빙 프레임 앞에 간이 수조를 사실적으로 설치해 불안함과 두려움을 거세하고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면 <다이빙 보드>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극장 쿼드도 과도하게 연극 연출가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특수한 연극적 장치를 무대공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극단 사개 탐사는 2012년도에 창단해 사회와 개인을 탐사해 그 상관관계와 부조리함을 발견하고 미래를 고민하고자 만들어진 극단이다. <그 집 여자>를 창단 공연으로 박혜선 연출은 <친절한 고르스키 씨>(2023)로 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우수 작품상, 히서연극상(2013), <억울한 여자>(2008)로 동아연극상 신인 연출상과 그해 이 작품으로 한국연극 공연베스트 7에 선정됐다. 김관 연출이 < 다이빙 보드> 드라마터그로 참여했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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