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7월 27일 경북 영천군 영천읍 금호강. 백사장 땡볕에 난데없이 5일장이 섰습니다. 6월 중순부터 계속된 가뭄에 논에 모가 타들어가, 곳곳에서 올린 기우제도 모두 허사. '장터를 하천으로 옮기면 비가 온다'는 속설에 급기야 관·민이 함께 문외동 시장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1962년에도, 68년에도 시장을 옮기자 우연인지 비가 왔다", "영천시장을 옮기면 일주일 내 틀림없이 비가 온다"… 노인들은 여부 없이 효험을 장담했습니다. "이럴 시간에 한줌이라도 강바닥을 파는 게 더 낫겠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시큰둥했습니다.
"현대 과학 문명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군민들의 요구가 심해 도리 없었다" 영천읍장은 장터를 옮겨 놓고도 내심 속이 탔습니다. 그런데 또 우연일까, 지성이면 감천일까? 이날 오후 3시쯤 마른 하늘에서 갑자기 소낙비가 내렸습니다.
같은 시각, 28km 떨어진 경주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날은 황남동 155호분(천마총) 발굴 현장에서 금관을 꺼내 올리던 날. "청명하던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기상이변이었다…." 당시 조사단원이었던 윤근일 전 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정말 효험이 있었던 걸까. 금호강에 장이 선 지 사흘 뒤인 30일, 새벽부터 흠뻑 비가 내렸습니다. 이날 낮 12시 현재 영천 강우는 37mm. 의성·경주·경산·선산·칠곡·성주·군위 등엔 50mm 안팍으로 흡족하게 내려 완전 해갈을 봤습니다. 이런 연유로 영천에선 가뭄이 들면 으레 시장을 옮기곤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비가 왔습니다.
1976년 7월엔 9일(강수량 14mm) 하루 빼고는 비 다운 비가 없어 8월 2일 금호강에 장이 선 다음날 46mm나 왔습니다. 가뭄이 혹독했던 1977년에는 6월 중순부터 비 구경을 못해 7월 17일, 또 영천장을 강변으로 옮겼더니 이날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20.1mm가 내렸습니다.
그해 성주에선 보기 드문 '키 기우제'가 열렸습니다. 7월 27일, 벽진면 가암1동 부녀자들이 목욕재계 후 모인 곳은 마을 앞 냇가 이천(利川). "용신님 제발 비를 내려 주소서" 아낙네들은 저마다 키에 물을 담아 까부르며 빌었습니다. (매일신문 1973년 7월 29일, 1976년 8월 4일, 1977년 7월 19·29일 자)
옛날부터 가물 때면 시장을 옮겼다는 사시(徙市). 신라 진평왕 때도 큰 가뭄이 들어 시장을 옮기고 용을 그려 빌었다고 합니다. 그 기저에는 음양(陰陽)사상이 있었습니다. 용왕이 사는 하천(음)에 장을 세워 시끌벅적하게 하면 하늘(양)의 용신이 감응해 비를 뿌린다는 것. 키의 모양새는 용의 꼬리. 하천에서 용이 꼬리치듯 부녀자들이 키를 까부르면 하늘의 양기가 발동해 비를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영천은 비가 적게 내리기로 이름난 곳. 그래서 저수지(정부 누리집 2023년 8월 기준)가 무려 985개. 경북 전체(5천4개)의 19.6%가 영천에 몰려 있습니다. 1956년 제2 탄약창이 영천에 들어선 것도, 1996년 천문대를 영천 보현산에 세운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장마가 입추(8월 7일)가 지나도 계속되면 기청제(祈晴祭)를 올렸습니다. 제발 해를 보게 해 달라고 또 빌었습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한없이 약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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