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기술과 깊은 예술성의 조화, 통찰력 있는 해석과 폭넓은 레퍼토리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이 지난 3월 23일 타계했다. 오직 그만이 성취할 수 있었던 경지의 예술적 유산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난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1942~2024)는 단순히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보다는 평생을 바친 탐구와 혁신을 통해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던 진정한 예술가로 정의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1960년 당시 18세였던 폴리니는 제6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하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고,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기술적 완성도로 인해 얻은 활동 초기의 유명세는 1972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된 쇼팽의 '에튀드' 음반으로부터 시작됐다. 기악이 성행하던 16세기 초부터 연주 기교의 연습을 위해 작곡됐던 에튀드는 쇼팽에 의해 기술적 완성과 음악적 이해가 융합된 창의적 표현력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연습곡이지만 그 자체로 최고 수준의 기교와 시적 정서가 결합된 완결성을 지닌 독립된 예술작품으로 그 개념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즉 이 작품의 연주를 위해서는 고도의 이성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높은 예술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페라리어(Murray Perahia, 1947~)의 따듯한 서정성도 좋지만 에튀드만큼은 아무래도 폴리니의 객관적이고 절제된 해석을 선호하게 된다.
에튀드 외에도 폴리니가 남긴 쇼팽의 음반들 중 프렐류드와 폴로네이즈를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환상 폴로네이즈(A-flat major, Op. 61) 연주가 마음에 남는다. 폴로네이즈의 형식에 환상곡의 요소가 결합된 쇼팽의 말년을 대표하는 이 작품에 내재된 깊은 감정선은 폴리니만의 절제미를 통해 고독감, 명상적 분위기와 같은 낭만적 정서가 더욱 증폭됨을 느낄 수 있다. 쇼팽 외에도 폴리니의 거의 모든 레퍼토리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흔들림 없는 서사와 정제된 소리, 내재화된 감정은 해석의 깊이를 더하게 되고 높은 예술성을 기반으로 한 절제된 감정 표현은 진정성과 여운을 느끼게 한다.
브루노 몽생종의 다큐멘터리 '대가의 손(De main de maître)'에서 폴리니는 '피아노는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원하고 추구하는 바에 따라 실제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를 보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라 했다. 누구나 피아노로 할 수 있다고 그가 생각했던 일은 어쩌면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폴리니는 '그래서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어 여전히 너무나 행복하다'라고도 했던 것이 생각난다.
일생을 피아노 음악에 바쳤던 고인의 유산은 예술에 대한 헌신의 결과물이다. 비록 국내 무대에서는 그를 볼 수 없었지만 폴리니가 남긴 예술적 유산을 통해 시공간을 넘어 그의 영혼과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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