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임보험 가입하라"는 정부 vs "면책 범위 다 풀어라"는 의료계

[의·정갈등 주요 쟁점, 정부vs의료계] 3.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정부 "불가항력 의료사고 정부 보상 강화…조정·중재 참여 통한 해결 유도"
의료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하에서 책임보험 가입 요구는 정부의 직무유기"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0일 오전 마포구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서 전공의 집단 사직 공모 혐의 관련 추가조사를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0일 오전 마포구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서 전공의 집단 사직 공모 혐의 관련 추가조사를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구성하면서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항목을 따로 만든 데에는 필수의료 분야의 위축이 의료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형사처벌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한 몫을 차지한다.

이에 정부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특법)을 통해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인의 형사처벌을 경감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한 경우 의료사고에 대한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 없이는 공소제기를 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종합보험에 가입한 의료인은 공소에서 아예 제외된다. 보험 가입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필수진료과와 전공의들에 대해 보험료를 지원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다만, 의특법의 적용에서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사망사고나 미용·성형의료를 포함할 것인지는 추후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분만 등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정부의 보상도 강화된다. 무과실 분만 사고의 경우 국가가 지원하는 보상금을 현행 70%에서 전액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 더해 소아 진료 등 진료 과정에서 불가항력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학적으로 불가항력임을 입증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해서까지 정부 보상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의료인의 책임 면제가 확대되는 대신 정부는 전제조건으로 책임보험 가입과 더불어 의료사고 피해자의 공정한 감정 기회 보장 등을 위해 '의료분쟁조정법'상 조정·중재 참여를 활성화시킨다는 방침이다. 의료인이 조정·중재 참여를 거부하면 형사처벌 특례에서 제외한다.

정부가 의료계의 숙원이었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도입' 등을 통한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정작 의료계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책임보험 의무 가입 내용과 특례 적용 범위 때문이다.

바른의료연구소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발표된 뒤인 지난 2월 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한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바른의료연구소는 책임보험 의무 가입 자체가 정부가 의료계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바른의료연구소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로 사실상 정부가 의료기관에 업무를 강제하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 상황에서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개인이 보험에 가입하여 이를 해결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명백한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책임보험 가입을 했더라도 특례 적용 범위 또한 의료계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부분이다. 의료계는 사망사고나 미용·성형의료 분야라 하더라도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의료에 대한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사법 적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수사 과정에서 익명의 자문의가 판단하는 대신 공정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의학자문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의료에 대한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사법 적용 제한이 중요한 이유는 전공의들의 필수의료 지원을 늘릴 방안이 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 근거로 든 사건이 바로 지난 2017년 서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이 때 담당 주치의 교수가 구속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진료상 과실 혐의에 대해 형사고발이 이루어진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구 시내 한 개원의는 "이 때 '필수의료 분야는 열심히 치료해도 불가항력으로 환자가 사망하면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당시 의대생들에게 퍼졌고 그 이후 소아청소년과 지원이 확 줄었다"며 "적어도 범죄자가 될 위험에 대해서는 정부가 막아줘야 하는데 정부의 정책 패키지에는 그 정도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미 지난 5월부터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전문위)를 통해 의료사고 분쟁 조정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전문위는 환자와 의료인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의료사고 감정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환자·소비자가 추천하는 감정위원 참여를 확대하고, 추가·보완 감정 운영과 전문 상담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