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0.01㎜ 마이크로 펜으로 그려낸 무한한 우주

이은욱 개인전 ‘아이콘(Eyecon)’
7월 17일까지 아트스페이스 펄

이은욱, Cosmic Membrane, 2024.
이은욱, Cosmic Membrane, 2024.

누구나 마음 속에 자신만의 우주가 있다.

이은욱 작가의 작품은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 내버려둔, 혹은 나만의 공상으로 가득 채운 각자의 마음 속 우주를 떠올리게 한다. 캔버스 위 수많은 직선과 원들은 반복적이면서도 불규칙적인 패턴으로 이어지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한 세계의 일부처럼 눈앞에 다가온다.

그의 드로잉은 0.01㎜의 마이크로 펜을 사용해 컴퓨터가 그린 듯 정교하고 섬세하다.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국내 최고의 게임회사에 근무하는 그가 지극히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은 마치 컴퓨터 속 설계 도면 같은 모호한 느낌이 흥미롭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패턴 속에 숨은 눈들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녔고, 영국 런던예술대 센트럴세인트마틴컬리지 석사를 졸업했다. 성인이 된 이후 지속적으로 이방인으로서의 낯섦을 경험하며 그의 마음 속에는 두려움과 불안함, 외로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죠. 그 즈음 'Gaze(응시하다)'는 단어에 꽂혀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스스로를 바라보는 단안(單眼), 즉 눈을 통해 나를 인식하고 세상을 관찰하게 됐어요. 작품 속의 눈은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자 내 생각을 담아내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개인전에서는 평면 드로잉, 페인팅 작품 외에도 20대 런던 유학 시절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담긴 초기 영상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당시 수많은 해외 전시에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Allegory of space x Another Universe(사운드 홍초선), 5min 51sec, 2018.
Allegory of space x Another Universe(사운드 홍초선), 5min 51sec, 2018.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이은욱 작가. 이연정 기자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이은욱 작가. 이연정 기자

그 중 애국가(National Anthem)는 애국가를 직접 부르는 작가의 입을 확대해 화면을 가득 채운 영상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이방인으로서 해외에 거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느꼈을 심리와 정체성을 얘기한다.

또한 '아이 잇 러비쉬(I Eat Rubbish)'는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을 배경으로 템즈강변에 떠있는 환경 프로젝트 설치물을 찍은 영상이다. 작가는 "미술관의 어떤 작품은 예술처럼 느껴지고, 해석할 수 없는 작품도 있다. 예술인지 쓰레기인지 혼동되는 현대미술의 단면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20대의 과감함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가 만든 문화예술전문가 단체 서팩(서울팩토리)의 전시 공간에서 펼쳤던 드로잉 설치 작품을 기록한 영상도 상영된다. 전시 공간 전체를 그물로 설치해 알고리즘 드로잉을 공간에 구현하고, 그 공간을 홍초선 사운드 아티스트가 작업한 소리로 가득 채운 설치 작품이었다. 2차원적 드로잉을 3차원적으로 재현하고, 디지털로 기록한 시공간에 대한 연구가 집약된 결과물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전시를 기획한 송요비 디렉터는 "20여 년간 작가와 인연을 이어오며, 첫 출발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한번 모아서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시를 준비하게 됐다"며 "관람객들도 각자의 눈을 통해 자신의 우주를 상상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은욱 작가의 개인전 '아이콘(Eyecon)'은 아트스페이스 펄(대구 중구 명덕로35길 26 2층)에서 오는 17일까지 이어진다. 월요일은 휴관한다. 053-651-6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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