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급발진(急發進)을 주장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그 주장이 사실인지 가릴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일 9명이 숨진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에 이어 3일 국립중앙의료원 사고, 7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사고 등 차량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상당수 운전자들이 급발진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발생한 차량 사고 가운데 차량 결함(缺陷)이 인정된 적은 거의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국내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鑑定) 건수는 지난 2021년 56건, 2022년 76건, 2023년 117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지만 급발진에 의한 사고로 인정된 사례는 없다. 대구경북의 경우 지난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는 27건으로, 이 중 가속(加速)페달과 제동(制動)페달(브레이크)을 혼동한 경우가 21건, 원인 불명확 5건, 가속페달이 바닥 매트에 걸린 경우 1건 등이었다. 사고기록장치(EDR)의 신뢰성 등으로 인해 국과수 감식(鑑識)으로도 급발진 여부를 명백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 차량 사고 시 소비자가 차량 결함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도 안고 있다.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손해(損害)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증명할 때 기계적 결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운전자 발밑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조작(操作)을 촬영하는 '페달 블랙박스'가 급발진 여부를 가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차량 구매 시 페달 블랙박스 장착(裝着)을 선택사양(選擇仕樣)으로 할 것을 제조사에 권고(勸告)했다. 하지만 운전자 부주의나 외부 충격에 의한 사고를 규명하기 위한 일반 블랙박스와 달리 급발진 여부를 가리기 위한 페달 블랙박스는 제조사 책임과 직결된 만큼 제조 시점부터 장착을 의무화해야 한다. 페달 블랙박스는 운전자 부주의냐, 차량 결함이냐를 입증할 유일한 대안(代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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