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걸작 '샤이닝'에서의 열연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여배우 셸리 듀발이 11일(현지시간)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CNN방송 등이 보도했다.
듀발 가족의 대변인은 듀발이 미국 텍사스주 블랑코의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에 숨을 거뒀으며 사인은 당뇨 합병증이라고 밝혔다.
듀발은 호리호리한 체격과 긴 얼굴, 튀어나올 듯 커다란 눈 등 개성 있는 외모와 흡인력 있는 연기로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며 1970∼1980년대 할리우드에서 활약한 배우다.
1949년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부동산 중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듀발은 전문대에서 영양학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1970년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우연히 로버트 올트먼 감독에게 발탁돼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미술가였던 남편을 위해 휴스턴의 자택에서 파티를 열었는데 거기에 참석한 올트먼 감독이 듀발을 눈여겨보고 당시 근처에서 촬영 중이던 영화 '운명의 맥클라우드'(1970)에 출연을 제안해 데뷔하게 된다.
듀발은 이후 '매케이브와 밀러 부인'(1971), '보위와 키치'(1974), '내슈빌'(1975), '세 여인'(1977) 등 올트먼 감독의 1970년대 대표작에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스타 배우로 발돋움했다. '세 여인'으로는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 팬들에게 가장 깊숙이 각인된 듀발의 모습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고전 공포영화 '샤이닝'(1980)에서 보여준 공포 연기였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샤이닝'은 겨울 동안 손님을 받지 않는 외딴 호텔을 관리하며 글을 쓰는 '잭'(잭 니컬슨 분)이 미쳐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듀발은 잭의 아내 '웬디' 역할을 맡아 폭설로 고립된 호텔에서 광기에 휩싸여 가는 남편으로부터 아들 '대니'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완전히 미쳐버린 잭이 도끼로 화장실 문을 찍어 부수며 위협하자 안에 숨은 웬디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부분은 공포영화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하지만 듀발은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 상당한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큐브릭 감독은 실감 나는 공포 연기를 유도하기 위해 촬영장에서 듀발을 냉정하게 대했고 웬디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잭과 대적하는 장면은 127번이나 촬영하는 등 한 장면을 수십번씩 촬영하면서 쉴 틈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한다.
'샤이닝' 개봉 당시 듀발은 비평가들로부터 '과장된 연기'라는 평가를 받았고 그해 최악의 영화를 뽑는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여우주연상 후보에 포함되는 굴욕도 겪었는데, 실제로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보여준 현실감 있는 연기였던 셈이다. 골든 라즈베리상 측은 이러한 사연이 알려진 뒤 2022년 후보 지명을 철회했다.
1980년대 이후 그는 유아 프로그램 제작·진행에 집중했고 2002년 이후로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6년 한 TV쇼에 정신질환을 앓는 모습으로 출연했는데 '샤이닝' 촬영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 압박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듀발은 2021년 할리우드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방법이 웬디 캐릭터의 핵심인 복잡한 공포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큐브릭 감독의 이러한 강박적인 정확성에 감사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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