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3년 만의 통화정책 선회를 내비쳤다. 이창용 총재가 "차선(車線)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을 전환할 준비를 하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밝힌 것이다. "깜빡이를 켤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던 지난 4월 발언보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그러나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 뒤 계속돼 온 고금리와의 이별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수도권 아파트값 급등, 가계 부채 폭증, 불안한 외환시장 등 발목을 잡는 요인이 많다. 물가 상승률이 당국 목표치에 접근하고 있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도 처지는 비슷하다. 대선과 맞물려 인하 기대감이 크지만 현 상황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 또한 적지 않다. 물가 상승 장기화를 뜻하는 '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에 금리를 내리더라도 소폭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총재는 특히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경계했다.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잘못된 시그널을 줘서 주택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금융통화위원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역시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집값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는 비수도권 입장에서 금리 인하 연기(延期)는 달갑지 않을뿐더러 억울한 소식이다. 집을 갖고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높은 금리가 지역 경제의 실질적 주역들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줄폐업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방은행들의 올해 1분기 연체 대출액은 1조3천771억원에 이른다. 금감원이 관련 통계를 공개한 2008년 이후 가장 많다. 개인사업자 대출 평균 연체율은 0.86%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의 0.84%를 웃돈다.
제1금융권조차 이러니 '코로나보다 고금리가 더 무섭다'는 말마저 나온다. 정부의 대출 자제 압박 와중에 지방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추는 기현상도 나타난다. 수익은 적지만 부실 가능성이 낮은 주담대라도 늘려 위기를 넘기겠다는 몸부림이다.
한은의 고민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고금리가 내수 회복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나라 안팎의 지적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수출 호조와 달리 서비스업 등 지방의 체감경기는 바닥이다. 몇 달째 '내수 회복 조짐'이라는 정부 발표에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한은의 선제적 금리 인하가 어렵다면 정부가 신용보증기금, 지방자치단체별 신용보증재단 등을 통해서라도 소상공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일자리·복지 취약계층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더 늦기 전에 추진해야 한다. 고통의 아우성을 '읽씹'해선 안 된다.
완벽한 금리 인하 시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고심 끝에 악수를 둔 경우가 여럿이었다. 강력한 규제의 대명사인 폴 볼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1980년 성급하게 금리를 내렸다가 다시 올리는 '볼커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가 훗날 대학 강단에 섰을 때 전설적인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초청 강연에서 "시장에 균형상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의 트렌드를 잘 살펴야 한다"고 했다. 볼커의 맞장구가 인상적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의 조언이 연준 시절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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