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7월 8일, 대구에 새벽부터 장맛비가 또 맹위를 떨쳤습니다. 신천에 물이 위험 수위를 넘기고도 계속 붇더니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습니다. 이날 오전 10시쯤 신천동 4구(현 수성 4가) 제방이 침식되면서 터졌습니다. 이 일대 저지대 가옥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신천 푸른다리(경부선) 인근 하상 부락엔 가옥 300호가 어른 허리 깊이로 잠겼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 등에 업혀 간신히 피난하고, 가재도구는 언덕 위 산으로, 지붕 위로 날랐습니다. 상동·범어동·신천동·동인동 일대는 배수가 안 돼 흙탕물로 덮혔습니다.
또 내당동 저지대, 대봉동 이천교 앞, 대명동 영선못(현 영선시장 자리) 아래 재건주택이 침수되고 효성여대(현 효성타운 자리) 서편엔 앞산에서 흘러든 빗물에 제방이 4곳이나 터졌습니다. 북비산 금호강 유역에는 축구장 50개 넓이의 논밭이 물바다로, 원대동 일대 들판도 푹 잠겼습니다.
가창댐은 물이 넘쳐 한없이 토해 내고, 금호강은 위험 수위, 낙동강은 상주·왜관·현풍 모두 홍수 수위를 넘겼습니다. 5관구 군인, 경찰, 소방대원으론 턱없이 부족해 비상 소집된 의용소방대도 팔을 걷었습니다. 복구 장비도 변변찮아 무너진 제방에는 통나무를 때려 박고 삽으로 가마니에 모래를 채워 쌓았습니다.
전날인 7일에는 봉덕동 1구 '사들못' 도랑이 터져 가옥 70여 동이 피해를 봤습니다. 침산국민(초등)학교 어린이들은 도로가 물에 잠겨 등교도 못했습니다. 서문시장은 침수에 누수로 절반이 철시했고, 침산 가설시장엔 손님 대신 흙탕물이 들어찼습니다. 온 들이 물바다로 변한 내당동 5구에서는 피난설까지 돌았습니다.
3일(59.6mm)과 4일(74,6mm), 7일(84.8mm)과 8일(83.7mm) 등 3일부터 8까지 대구에 내린 장맛비는 302.7mm. 가옥 약 1천호가 침수되고 도로와 제방 10여 곳이 무너졌습니다. 신천에선 급류에 지프차가 휩쓸리고, 귀갓길에 아들에게 줄 빵을 사 하천을 건너다, 떠내려 오는 보릿짚을, 또 목재를 건지려다 3명이나 변을 당했습니다.
9일부터 대구에는 비가 잦아들었지만 장마 전선이 북상하면서 영주에서는 12일 밤 시가지가 물에 잠기는 대홍수를 겪기도 했습니다.(매일신문 1961년 7월 4일~14일 자)
해마다 이맘때면 가뭄이 아니면 이렇게 물난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장맛비는더 난폭해졌습니다. 2024년 올해도 그렇습니다. 대구에선 7월 2일(22.1mm)과 3일(12.4mm) 찔끔 비를 뿌리다 4일에는 폭염(최고 34.8℃)을 보이더니 9일에는 하루 만에 191mm나, 그것도 양동이로 쏟아붓듯 내렸습니다.
지리하게 내리던 장마는 옛일. 언제 어디에 얼마나 내릴 지 슈퍼 컴퓨터의 예측도 비켜가기 일쑵니다. 1961년 그 무렵엔 모든 게 부족해서 그랬다지만, 이수(利水)도 치수(治水)도 이렇게 눈부신데 피해는 외려 더 커졌습니다. 더 높이, 더 많이, 더 편하자고 앞만 보고 달려온 지 60여 년. 그새 장마는 성난 게릴라처럼 괴물로 변했습니다. 지금 자연은 무척 화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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