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언니와 동생은 지적 장애 판정을 받았다. 자매는 특수 학교에 입학했고, 자연스레 세상의 편견과도 마주하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찾게 된 수영장. 자매는 온 몸을 뻗어 쭉쭉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저 좋았다. 움츠러들기 바빴던 마음까지도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수영장을 다닌 지 어느덧 십여년. 언니는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가 됐고, 동생은 한국 신기록 보유자이자 내달 열리는 파리 올림픽 패럴림픽에 출전한다. 강주은(29)·강정은(26) 자매는 말한다. "우리 같이 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남 시선 신경 쓰지 말고 못해도 괜찮으니 무엇이든 꼭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는 강주은·강정은 자매를 지도하는 박소영 수영 감독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수영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기억 나나
▶중학생 때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달서구 그린코아 도시안 수영장에 다녔다. 그때 처음 수영 강습을 들었는데 두각을 나타냈던 것 같다. 코치들의 판단으로 수준이 된다 싶으면 선수 등록을 해서 시합에 나가도록 권유한다. 그래서 중학생 때 마스터즈(일반인 대회)에 나갔었고 좋은 성적을 냈기에 그 이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달서구 장애인 수영 실업팀이 생기면서 여건이 많이 좋아졌겠다
▶지난해 5월에 지역 최초, 그리고 전국에서는 3번째로 창단됐다. 창단과 동시에 선수로 영입됐는데, 덕분에 안정적인 여건에서 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실업팀이 창단되기 전에는 개인 코치를 고용해서 수영을 해야돼서 부담이 많이 됐다. 창단된 후에는 감독님이 생겨서 수영하는게 훨씬 편해졌다.
그리고 수영복, 용품 같은 것들의 비용이 만만치가 않은데 이 또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수영 성적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또한 월급을 받고 일을 한다는 게 뿌듯하다.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선수들의 스승이신 박소영 감독님과는 예전부터 인연이 있었다고
▶동생이 2018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 나갔던 당시 코치였다. 그때 훈련을 같이 했고, 이번에 달서구청 실업팀 감독님으로 오시면서 다시 만나게 됐다. 그렇게 언니도 처음 만나게 됐는데, 직접 만나 보니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어서 놀랐다고 하시더라. 자매가 같이 수영을 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보니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선수와 감독님 사이를 넘어선 것 같다. 세세하게 챙겨 주신다. 또한 비장애인과 함께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도 한다.
-동생 정은 선수의 국가대표 발탁 이야기도 듣고 싶다.
▶중학교 때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첫 출전한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최연소로 2관왕을 했었다. 그 이후 매년 국가대표로 11년 째 하고 있다. 한국 신기록은 4개를 갖고 있었는데 최근에 1개가 깨졌다. 1초 차이였다. 아쉬웠지만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언니는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작년에 국가대표 후보로 발탁 됐었다. 함께 국가대표가 되면 참 멋질 것 같다.
-슬럼프도 있었나
▶동생은 아무래도 코로나 시기 타격이 컸다. 수영을 3주 정도 못했는데, 쉬는 동안 감을 잃은 것이다. 수영 선수에게 2주 휴식기는 한 달 쉬는 거와 마찬가지다. 예전같은 기량이 안 나오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언니는 지금이야 실업팀에 들어오고 고정적인 감독님과 호흡을 맞춰 연습을 하고 있지만 개인 코치님과 할 때는 코치님이 바뀔 때 마다 혼란이 있었다. 주종목을 갑자기 바꾼다던가, 또 맞는 종목을 찾는 게 워낙 어렵기도 하다. 영법에 따라 기복이 심한 것이 슬럼프라면 슬럼프였다.
-장애인 선수로 활동하다 보면, 다른 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연습도 많이 할 것 같다. 장애를 이겨내고 한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동료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우리는 지적장애이지만, 신체적으로 불편하신 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S14 등급(지적, 자폐 등)인데 더 낮은 숫자의 선수들은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거나 이런 장애를 견뎌내고 수영을 하시는 분들이다. 물론 등급이 다르기에 시합을 같이 하는 일은 없지만 연습할 때 마주칠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장애가, 누군가에게는 크지 않은 아픔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매가 함께 수영을 하니 어떤가. 든든한 동반자이자 선의의 라이벌일 것 같다. 인터뷰를 하다보니 현실 자매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애틋한 느낌 보다는 아웅다웅 하는 모습이 보인다(웃음)
▶잘 보셨다. 성향이 완전 다르다. 동생은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당찬 성격이라면 언니는 순둥순둥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자매다보니 신체 구조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처음에는 언니가 먼저 수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동생이 언니를 이기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동생이 앞서가게 되는 시기가 됐는데 이제는 언니가 이에 자극을 받는다. 감독님 또한 언니의 기량을 끌어 올리기 위해 일부로 동생을 자주 언급한다. (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하면 든든하다. 서로 부족한 점을 알려주며 오랜 선수 생활을 지내왔다.
-장애로 인해 수영 생활에 힘든 부분이 있나
▶신체적 부분에서는 불편한 점이 없지만 비장애인 선수와 비교했을 때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우리 자매는 수영을 늦게 시작한 편이다. 다른 선수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그래서 잘못된 자세를 바꾸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런 걸 자세하게 이야기로 듣는 것은 조금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반복적 훈련으로 습득한다. 몸으로 깨우친다는 거다. 감독님이 고생 많으시다.
-대회 준비로 바쁠텐데 시간 내줘서 고맙다. 마지막 질문이다. 올해 목표가 궁금하다.
▶우선 언니는 10월에 열리는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게 목표다. 작년에 금메달을 땄으니 올해 2연패를 해보고 싶다. 동생은 파리 패럴림픽에 국가대표로 나가게 된 만큼 거기서 잘 하는게 목표다. 2022 항저우 아시안 페럴림픽에서 혼성 계영으로 금메달을 땄던 그 감으로 이번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장애라는 거친 물살을 가르며 자매는 앞으로 나아간다. 움츠리기 바빴던 온 몸을 크게 벌리고 누구보다 힘차게 뛰어 오른다. 사실 자매에게 물었던 마지막 질문은 따로 있다. 특수학교를 다니며 사귄 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없다" 라고 대답했던 자매. 이들에게 수영이 어떤 존재냐고 물었을 때 돌아왔던 대답이 자꾸만 생각난다. "수영은 저희의 둘도 없는 친구에요. 가끔 힘들 땐 웬수 같기도 하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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