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6.25전쟁 산화 영웅 고 강한찬 일병, 70여년 만에 가족품에 돌아오다

대구 서구 달성토성마을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

이근원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장이 지난 11일 대구 서구 달성토성마을에서 열린 고 강한찬 일병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에서 유가족 및 관계자들과 기념을 촬영하고 있다.국방부 유해감식발굴단 제공
이근원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장이 지난 11일 대구 서구 달성토성마을에서 열린 고 강한찬 일병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에서 유가족 및 관계자들과 기념을 촬영하고 있다.국방부 유해감식발굴단 제공

6·25전쟁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조국의 운명을 구하다 전사한 경북 칠곡출신 고 강한찬 일병이 지난 11일 70여 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 강 일병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이날 대구 서구에 있는 달성토성마을에서 열렸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이근원)은 2008년 5월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일대에서 개인호로 추정되는 곳에서 곧게 누운 자세로 있는 두개골과 정강이뼈 등을 발굴했다.

이후 국유단 기동탐문관이 고인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가 경북 칠곡군임을 확인한 후 해당 지역의 제적등본 기록과 비교해 고인의 여동생 강길순(1940년생) 씨의 유전자 시료채취 및 유전자 분석을 통해 16년 만에 6·25전쟁 당시 '춘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고 강한찬 일병으로 확인했다.

고 강한찬 일병은 국군 제6사단 소속으로, 6·25전쟁 최초의 승리를 거둔 '춘천지구 전투'(1950. 6. 25. ~ 6. 28.)에서 치열하게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은 1932년 1월 경북 칠곡군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유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입대 당시 병적이 확인되지 않아 입대 일자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전 이후 1957년 2월경 발급된 전사확인서를 통해 '춘천지구 전투'에 참전한 사실이 확인됐다. '춘천지구 전투'는 6·25전쟁 개전일인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춘천 옥산포, 소양강, 봉의산 일대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킨 구국의 전투이다.

그러나 고인은 전쟁 발발 3일 만인 1950년 6월 27일, 북한군의 남하를 치열하게 저지하다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의 희생은 국군이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조카 강영호(1955년생) 씨는 "아버지와 고모께서 평생 삼촌을 찾기 위해 노력하셨는데 이렇게 유해라도 찾게 되어서 다행이다" 며 "병환으로 누워계신 고모께서 눈물만 흘리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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