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혐오정치가 암살과 테러 불러…악마화하는 정치의 일상화가 비극 불러

8일(현지시간) 일본 나라현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총기로 저격한 남성이 범행 직후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를 사망케 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는 전직 해상자위대원으로 3년간 장교로 복무하다 2006년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일본 나라현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총기로 저격한 남성이 범행 직후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를 사망케 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는 전직 해상자위대원으로 3년간 장교로 복무하다 2006년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 후보 유세 도중 총기 습격을 당하면서 최근 잇따라 벌어지는 정치인 대상 테러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디어 발달로 '정치 팬덤'이 활발해진 가운데 '팬덤'을 정치 양극화와 분노 정치에 활용하는 정치 행위가 심해질수록 테러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2022년 7월 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는 나라(奈良)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大和西大寺) 선거 유세 중 전 자위대원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가 개조한 사제 총을 맞고 쓰러졌다. 현장에서 붙잡힌 범인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신흥종교에 빠져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며 "아베 전 총리가 이 종교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들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통산 8년 8개월, 역대 최장 기간 총리를 지낸 국가 지도자가 종교적 이유로 원한을 품은 총격범에게 살해된 것이다.

아베 전 총리가 숨진 지 9개월 만인 지난해 4월 15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를 향한 테러 시도도 있었다. 기무라 류지(木村隆二)라는 20대 남성이 와카야마(和歌山)현 중의원 보궐선거 유세 현장에 참석한 기시다 총리에게 폭발물을 던진 것. 기무라는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범행 이전에 기시다 총리와 일본의 선거 제도를 비판한 것으로 드러나 정치 혐오가 범행 동기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내도 '무풍지대'는 아니다. 올해만 해도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습격을 당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2022년 3·9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를 위해 서울 신촌에서 지원 유세를 하던 중 한 유튜버가 내리친 둔기에 머리를 맞았다.

2006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장을 찾아 단상에 오르다가 50대 남성이 휘두른 문구용 커터칼에 11㎝ 길이의 오른쪽 뺨 자상을 입는 '커터칼 피습' 사건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정치 양극화와 대중의 분노·혐오를 부추기는 정치 행위가 심해질수록 정치인을 겨냥한 테러 위험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조너선 털리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 기고문에서 "이 '분노의 시대'에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분노와 공포를 이용해 왔다"며 "이번 사건이 그 대가"라고 지적했다.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도 "정치테러는 극단 정치와 혐오 정치의 산물로, 정치인들은 이해와 화합으로 사회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는 "혐오정치에 따른 정치인 테러는 세계적 현상"이라며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우열이 크게 갈리지 않자 지지층을 모으는 과정에서 저주의 언어를 쏟아낸다. 정치권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레거시 미디어는 정제 과정이 있었지만 유튜브 등 미디어의 발달은 증오와 혐오를 재생산하면서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이를 확증편향, 과몰입으로 끌고 간다. 이들에 대한 규제가 따르지 않는다면 이런 사건은 언제든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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