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모호한 예술에 대하여

태병은 아트리움모리 큐레이터

태병은 아트리움모리 큐레이터
태병은 아트리움모리 큐레이터

전시회가 진행되는 전시장은 역할과 목적에 따라 몇 가지 분류로 나눠지는데, 모두에게 가장 익숙한 대표적인 전시공간은 미술관과 갤러리일 것이다. 그 외에도 문화재단, 아트스페이스, 대안공간 등 다양한 방향성을 띤 전시공간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대안공간'은 2000년대 초, 제도권의 전통적인 전시공간에 대한 비판 의식으로 새롭고 실험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탄생했다.

대개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예술계의 탈중심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내는 이 '대안공간'은 대구에서 역시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2023년 9월 개관한 신생 대안공간인 '모호주택'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중구 북성로의 공구 골목 한 중간, 1974년 지어진 오래된 양옥집에서 운영을 시작한 '모호주택'은 사진작가와 디자이너 부부로 인해 탄생돼 2023년 9월 개관 전시 '우리 이웃의 미술'을 시작으로 2024년 7월 현재까지 총 7회의 전시를 진행하며 부지런히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로 활동하며 신진 예술인들의 고충을 몸소 겪어왔던 모호주택의 두 대표 김영훈, 한수민 씨는 본인들의 그러한 경험을 아쉬움만으로 남기지 않고 직접 공간을 가꾸어 작가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실천해냈다.

전시장 내부는 노후화된 주택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티끌 하나 없는 흰 벽과 바닥으로 조성되어 있는 일반적인 전시장, 화이트 큐브와는 상반되는 매력을 보여준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닌 목재 벽은 보존을 위해 작품 설치 시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완벽히 하얀 벽 위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의 친근한 흔적들을 발견하게 한다. 또한 일반적인 전시장에서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스포트라이트 조명의 역할보다는 주택에 본래 자리한 큰 창을 통해 그대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작품을 비추는 모호주택 고유의 자연 조명은 흐린 날이나 해가 저물어져가는 시간마다 달라지는 공간의 분위기와 작품이 어우러지는 느낌이 매력적이다. 누군가의 온기가 머물렀을 법한 인간적인 모습이 잔뜩 묻어있는 주택을 배경으로 설치된 예술작품은 관람객에게 새로운 감각을 제공하기 마련이다.

현재 모호주택에서 진행 중인 전시 '예술가의 사물들'은 비영리법인 문화예술기획그룹 아트만의 기획 전시로 전시장에 들어서면 털실, 쓰고 버려진 플라스틱 컵, 돌덩이 등으로 구성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친근한 모습의 전시환경을 가진 모호주택에서 일상 속 사물을 예술로 바꾸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지점에서 파생되는 예술가의 주제의식과 태도에 주목하는 전시로 오는 21일까지 진행된다.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운영되는 이 공간에서 하나의 전시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수십 항목의 지출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사진작가와 디자이너가 본업인 두 대표의 재능 덕분에 그중 많은 항목들을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라도, 그들의 재능 역시 금전으로 환산되어야 할 노동 가치이며 전시를 통한 추가 수입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개인이 대안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제도권이 주목하지 못하는 반짝이는 작가들을 담아내는 전시들이 지속적으로 개최되기 위해서는 관람객들의 더 많은 응원과 발걸음이 필요하다. 모든 예술인과 예술을 사랑하는 관람객을 위해 정성껏 만들어진 이 공간에서 평소보다 조금 더 가까이 작품 앞에 다가가보기도 하고, 느린 호흡으로 서성이기도 하며 모호주택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온전히 누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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