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 칼럼] 체코 원전은 김정숙 여사 덕?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사실상 15년 만에 24조원대의 원전 수출이라는 대박 드라마를 탄생시켰다는 뉴스는 가뭄에 단비였다. 무엇보다 체코 원전은 2018년 체코 대통령이 부재 중일 때 체코 순방에 나서 프라하성(城)과 비투스 성당 등 체코 문화유산 관람에 나선 문재인·김정숙 부부의 공이 크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들의 '버킷 리스트' 외유를 용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국내에서는 '탈(脫)원전'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서 신규 원전 사업을 중단하고 멀쩡한 월성원전 1호기를 강제 폐쇄하는 등 국민 안전을 우선시한 대통령인 줄 알았지만 체코 등 해외에 나가서는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한 원전 세일즈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시 체코 총리와의 면담에서 "한국은 지난 40년간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며 "체코 정부가 향후 원전 건설을 추진하기로 결정할 경우 우수한 기술력과 운영·관리 경험을 보유한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고 당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당시는 체코가 신규 원전 사업을 추진할지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문 전 대통령은 마치 체코의 원전 사업의 미래를 예견한 듯 원전 세일즈 활동을 벌였다. 국가 지도자로서 남다른 예지력을 갖고 체코를 방문한 것이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이제 '김정숙 버킷 리스트'라며 체코 순방을 비난하는 일은 그만하자. 지금의 체코 원전 수주에는 프라하성과 비투스 성당 등을 관람하면서 "우리 남편 어디 있나요?"를 외치며 '프라하의 연인'의 한 장면을 연출한 김정숙 여사도 일조하지 않았을까 여기면서 말이다. 그해 하반기 문재인·김정숙 부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굵직굵직한 순방 외교 일정을 소화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7월 인도·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했고 9월 남북 정상회담차 평양, 10월 7박 9일 일정으로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가 열리는 벨기에와 프랑스, 이탈리아 교황청, 덴마크 등 유럽 순방을 했고, 11월 초순 김 여사 단독으로 3박 4일 인도 타지마할을 다녀왔다.

이어 11월 하순에는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체코에 들러 뉴질랜드까지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초인적인 순방 일정을 소화했다. 중간 급유를 위해 들른 체코에서 원전 세일즈 활동도 했으니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라하성 등을 둘러본 것 정도는 애교로 봐주는 것이 좋겠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국익(?)을 위해 잠시도 쉬지 못하면서 동분서주하다가 프라하성과 바투스 성당, 타지마할, 후마윤 묘지, 루브르 박물관과 성베드로 대성당, 콜로세움, 베르겐, 뭉크미술관, 소냐 왕비의 미술마구간, 피오르, 그리그의 집, 벨기에 왕립미술관 등 평소 찍어둔 '버킷 리스트'를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려는 의지에 대해 박수를 쳐 주지는 못할망정 비난만 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그녀의 버킷 리스트 실현 의지 덕분에 문 전 대통령의 남미 순방 일정이 체코를 거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체코 원전 수주에 1% 정도는 일조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체코 원전 수주에 대해 문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들의 공(功)이 크다고 공치사를 하지 않은 것은 그가 최소한의 염치는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 여사의 타지마할 단독 방문을 뒤늦게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고 우기던 문 전 대통령이 조만간 "원전 수주는 내가 따낸 것"이라고 공치사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번 내놓은 외교 안보 분야에 이은 두 번째 자화자찬 회고록을 내놓을 것 같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버킷 리스트 외유로 판명이 난 체코 순방을 순방 외교라고 우긴다면 북한 김여정의 표현을 빌려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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