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개헌 저지선을 겨우 확보할 정도의 괴멸적인 참패였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거야(巨野) 진영은 192석의 압도적인 의석수를 앞세워 22대 개원과 동시에 전방위적인 압박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당은 108석 중 8표만 이탈해도 대통령 거부권까지 무력화될 판이다. 실제 조만간 국회로 돌아올 채 상병 특검법안 재표결 결과도 안심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일각에선 나온다. 국회에서 매일이다시피 야당 독주가 이어져도 여당은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 무기력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민주당이 일방적인 국회 상임위 구성에서부터 법에도 없는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 주장, 검사·판사 탄핵 추진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이유는 여당이 의석수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국민이 심판해 줄 것이라며, 여당은 종내 민심(民心)만 철석같이 믿고 있다. 여의도에서 만난 여당 한 재선 의원도 "무도한 야당에 민심이 분노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지금 여당 전당대회를 바라보는 민심도 같은 생각일까. 총선 참패 후 한목소리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을 외쳤던 국민의힘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비방·혐오, 갈라치기로 전당대회가 얼룩지고 있다.
15일 열린 국민의힘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 후보 지지자들 간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한동훈 후보가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하려 하자, 일부 청중이 "배신자" "꺼져라"라고 외쳤다. 이에 한 후보 지지자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한 청중이 플라스틱 의자를 들고 던지려다 제지당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이날 충돌은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나 다름없다. 전대 초기부터 총선 패배 책임, 사천 의혹, 채 상병 특검법안 수용 등을 놓고 한동훈 대 반(反)한동훈 갈등 조짐이 보였고,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이 불을 붙였다. 김 여사가 명품 백 사태에 대한 사과 뜻을 담아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를 한 후보가 일방적으로 '읽씹'(읽고 무시했다는 뜻의 비속어)하는 바람에 당이 사과 기회를 잃었고 총선 참패 원인이 됐다는 것. 이에 한 후보가 "(메시지 공개는) 일종의 당무 개입이자 전대 개입"이라고 정면 대응하면서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원희룡 후보가 한 후보를 겨냥해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조성팀, 댓글팀을 운영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실제 존재한다면 중대 범죄"라고 언급해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보다 못한 전대 선관위가 한동훈·원희룡 양 후보 캠프에 주의 조치를 내렸지만, 과열된 감정은 좀처럼 숙지지 않고 있다.
여당 집안싸움에 야당만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챙기고 있다.
민주당은 여당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해 수사해야 한다고 공세에 나섰다. 16일 박찬대 민주당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김건희 여사도 댓글팀을 운영했고 한동훈 당 대표 후보도 법무부 장관 시절 댓글팀을 운영했다는 증언과 증거가 나오고 있다"며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불법 댓글팀 운영이 사실이라면 최악의 국정 농단이자 국기 문란"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판국이다 보니 이번 전당대회를 두고 '분당(分黨)대회' '자살골 전당대회'라는 한탄이 나온다. 야당에 공세의 빌미만 주는 전당대회를 지켜보는 보수 지지자들과 양식 있는 여당 의원들의 심정은 또 어떨지 씁쓸하기만 하다. 남은 기간만이라도 비방 말고 비전을 제시하는 전대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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