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15>장어 푸드인문학 (상)곰장어와 갯장어

꼼지락·꼬들꼬들·쫄깃…보양의 기운 살아 있네∼
곰장어 껍질 소가죽보다 질겨…1970년대까지 수출 효자상품
피혁산업 맞물려 구이촌 파생
피란민들 배고픔 달래준 음식…짚불·연탄구이 스타일로 양분
가시가 많아 먹기 힘든 갯장어…칼집 여러번 내 회·샤부로 즐겨

부산 기장군에서는 연탄 대신 짚불로 곰장어를 굽는 게 특징이다. 활활 타올랐다가 금방 사그라져 곰장어를 익히는 데 안성맞춤이다.
부산 기장군에서는 연탄 대신 짚불로 곰장어를 굽는 게 특징이다. 활활 타올랐다가 금방 사그라져 곰장어를 익히는 데 안성맞춤이다.

비를 품고 부산도시철도 자갈치역 10번 출구를 나왔다. 여기 에스컬레이터는 사철 갯내음이 넘실댄다. 지척에 한국 최강이자 최장인 곰장어골목이 포진한 탓이다. 자갈치시장의 풍광은 코알라 몸짓이지만 도마 위에 올라간 아지매 손놀림은 '광속'으로 움직인다. 자갈치는 '아싸리', 서문시장은 '단디 정신'이 흘러넘친다. 모든 게 디지털 버전으로 통폐합되고 있지만 아직 여기는 아날로그 정서가 대세다.

자갈치곰장어골목 전경
자갈치곰장어골목 전경

아무튼 두 회에 걸쳐 여러 장어의 인문학적 스토리를 정리해볼까 한다. 그래서 한달음에 자갈치시장부터 찾아갔다. 뒤이어 국내 붕장어 요리의 메카인 기장군 월전‧학리‧칠암, 그리고 갯장어의 고장인 여수, 마지막은 민물장어의 총사령부격인 고창군 인천강 언저리도 훑어보고 왔다.

◆곰장어, 꼼장어, 먹장어

장어, 4종이 저마다의 색깔을 자랑한다. 바다와 민물을 오가는 '뱀장어', 그리고 바다에서만 사는 갯장어‧붕장어‧먹장어. 일본 명칭이 우리에겐 더 익숙하다. 민물장어로 불리는 뱀장어는 '우나기', 갯장어는 '하모', 붕장어는 '아나고'. 한자를 보면 알 수 있듯 곰장어 눈은 퇴화됐다. '곰지락'거려 곰장어, '꼼지락'거려 꼼장어로 불렀다. 하지만 곰장어와 꼼장어는 표준어가 아니다. 표준어는 '먹장어'(黑長魚).

곰장어와 붕장어는 부산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이 잡히는 해역은 단연 기장 앞바다. 가장 많이 유통되는 데는 자갈치시장이다.

양념과 소금로스구이 두 종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양념과 소금로스구이 두 종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자갈치 반반곰장어'.

◆산업용에서 식용으로

곰장어, 처음에는 공산품 재료, 21세기로 접어들면서부터 국민 술안주로 등극하게 된다.

맛 이전에 사람들은 곰장어 껍질에 눈독을 들인다. 소가죽보다 강도가 배 이상이어서 일반 소가죽이나 양피로 만드는 모든 가죽제품을 그 껍질로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곰장어 껍질은 수출 효자상품이었다.

곰장어 식용문화는 자갈치시장 근처 곰장어 피혁산업과 맞물려 돌아갔다. 광복 이후 6·25전쟁 때 피란민 등 많은 이주민이 자갈치시장을 중심으로 생활 터전을 일군다. 이때 버려지던 곰장어를 구워 먹거나 이를 파는 난전이 하나둘 생긴다. 한쪽에서는 곰장어 피혁공장, 또 한 쪽에서는 곰장어구이집이 공존한 셈. 6·25한국전쟁 당시 송정국민학교에 모인 피란민들도 짚불로 곰장어를 굽어먹기도 했다. 기장발 짚불곰장어가 탄생한다.

그 결과 현재 부산의 곰장어 요리는 크게 기장을 중심으로 한 짚불곰장어와 자갈치시장을 축으로 한 연탄곰장어구이 스타일로 양분된다. 곰장어구이는 1970년대 이후부터는 부전역 부근과 동래시장·동래온천장 등 곰장어 주생산지였던 기장에서 동해남부선 철길을 타고 부산 전역으로 확산된다. 이후 대구의 포장마차촌으로도 번져나간다.

◆곰장어시장인 자갈치

'자갈치'라는 이름은 충무동 로터리까지 뻗어 있던 자갈밭에서 유래한다. '자갈이 많은 터'라는 의미에서 '자갈처'로 부르다가 자갈치로 바뀐다. 멀리서 보면 갈매기가 나는 모양의 건물이 보이는데 이게 자갈치시장의 상징적 공간이고 그 옆 신동아회타운은 수산물을 직접 구입해 상차림 비용을 제공하고 자신이 원하는 어종을 맛볼 수 있다.

자갈치시장 해안가에 바짝 붙어 포차촌처럼 형성된 곰장어촌. 얼추 130여 곳이 이 시장 곳곳에 포진해 있다. 대구의 북성로석쇠돼지불고기처럼 연탄불이 주 화력원이다.

예전과 달리 곰장어가 무척 비싸다. 두 배 이상의 가격 차를 보일 정도로 국내산이 고 퀄리티를 자랑한다. 미국산은 국내산보다 더 거무튀튀하고 맛도 떨어진다. 국내산은 구릿빛이 감돌고 등에 선명하게 흰 줄이 박혀 있다.

불에 태운 대파의 속살 같은 질감의 기장짚불곰장어
불에 태운 대파의 속살 같은 질감의 기장짚불곰장어

◆기장 짚불곰장어

기장 짚불곰장어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한국전쟁 때. 각지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은 기장에도 많이 살았다. 당시 반농반어촌이었던 기장은 부산의 다른 지역보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편이었다. 특히 기장 사람들이 건네는 곰장어는 피란민들이 논두렁에 앉아 추위와 배고픔을 떨치기에 충분한 음식이었다. 휴전 후 고향으로 돌아간 피란민들이 기장의 곰장어 맛을 잊지 못하면서 전국 음식이 된 것.

볏짚은 불이 활활 타올랐다가 금방 사그라져 곰장어를 익히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소나무나 참나무는 화력이 너무 좋아 금세 타버린다.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공수마을 짚불곰장어촌. 바다를 지척에 두고 짚불 구이 곰장어 음식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지역에 가장 먼저 식당을 차린 김영근 대표의 '기장곰장어'를 비롯 여러 업소가 번영회로 똘똘 뭉치고 있다.

기장 짚불곰장어촌이 새롭게 개발한 곰장어묵
기장 짚불곰장어촌이 새롭게 개발한 곰장어묵

먹방과 쿡방의 여파로 인해 새로운 버전의 짚불곰장어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솔잎 곰장어, 곰장어 매운탕, 곰장어 김치무침, 곰장어묵 등이다.

대구 지역만 해도 거의 수입산 냉동을 사용한다. 내가 자갈치를 자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90년대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하모샤브샤브. 물에 익히면 살점은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난다.
90년대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하모샤브샤브. 물에 익히면 살점은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난다.

◆갯장어~하모

하절기 여수는 갯장어 때문에 난리법석이다. 다들 국동항 지척에 있는 '경도'로 간다. 거기에 하모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다. 여름 복달임 밥상에서 피어나는 '장어꽃', 하모샤브샤브의 연대기를 따라 가보자.

갯장어는 자산어보에 '견아리'(犬牙鱺), 속명으로 '개장어'(介長魚)로 표기했다. '개 이빨을 가진 장어'란 뜻이다. 기록에서처럼 개처럼 주둥이가 뾰족하고 이빨이 날카롭다. 성질 또한 사납고 포악하다. 잘못 낚다 보면 큰 상처를 입기 십상이다. 일본에서는 '례'(鱧)라 쓰고 하모(はも)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도 하모의 어원은 '개'와 연관이 있다. 개처럼 잘 물고 탐식성이 강해 뭐든지 먹어 치우기에 '먹다(食, はむ)'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일본어 '하모'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물고기 어(魚)'자에 '풍성할 풍(豊)'자를 썼다. 그만큼 다양한 음식으로 쓰이고, 그 맛 또한 풍성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본의 하모 요리서 '하모백진'에는 100가지의 하모 요리를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 '생선계의 요코즈나(일본 씨름 '스모'의 천하장사)'라며 즐겨 먹는다. 천황에게도 올렸던 진상품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이놈을 몰랐고 일본인은 갈구했다. 그러니 대량 일본으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일본인 세키자와 아케키요(關澤明淸)가 조선 해역을 조사하여 편찬한 '조선통어사정'(朝鮮通漁事情)은 '갯장어는 경상도 등 곳곳에서 서식하는데 사람들이 잘 잡지 않고, 또 잡더라도 뱀을 닮은 모양 때문에 먹기를 꺼려 일본인에게만 판매하였다'고 기록해놓았다. 당시 일제는 조선 연안의 고등어, 청어, 고래, 대구 등과 더불어 붕장어, 갯장어 등의 수산물을 전량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특히 갯장어와 새조개 등은 '수산 통제 어종'으로 지정해 조선 내에서는 유통·판매이 금지됐다. 이는 '조개는 새조개, 어류는 갯장어'라 할 만큼 일본인이 좋아하던 바다 식재료인 동시에 스시의 주요 재료로도 활용되었기에 전량 일본 수급을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하모는 워낙 가시가 많아 숱한 칼집을 넣어야 먹기 좋은데 이 절차를
하모는 워낙 가시가 많아 숱한 칼집을 넣어야 먹기 좋은데 이 절차를 '송치기'라 한다.

◆송치기

이놈은 유달리 가시가 많다. 제대로 장만해 먹지 않으면 청어처럼 잔 가시를 발라내느라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일본 본토 하모 장만 기술이 있는 이를 '호네기리'라 한다. 살점 속에 파묻힌 잔가시를 빠르고 균일하게 잘게 자르는 기술이다. 1cm 안에 8~10번 정도의 칼집을 넣어 가시를 끊어낸다. 이렇게 해야 식감이 부드럽고 가시가 씹히지 않아 입속에 이물감이 남지 않는다. 살점 한 치(3.3cm)당 25번 이상 칼집을 넣을 수 있어야 비로소 '하모 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단다. 한국에서는 이 호네기리를 '송치기'라고 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 기술이 도입되어 갯장어의 주요 조리법으로 자리 잡았다.

70년대 초만 해도 국내에서는 잘 먹지 않았던 어종이다.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갯장어 장만법을 익힌 국내 요리사들이 갯장어 요리를 선보이게 된다. 일부 선원들 사이에 선상 횟감으로 알음알음 그 맛이 전해진다.

여수에서 본격적인 하모샤브가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 건 95년쯤. 여수시 중앙동에서 운영하던 한식집 '한우촌'에서부터다. 뜨거운 물에 데쳐 먹는 '유비키' 스타일, 거기서 더 나가 하모가 꽃처럼 피어나도록 했다. 삼계탕을 응용해 샤브 육수에 인삼, 녹각, 대추 등을 넣고 별스러운 국물맛이 나게 했다.

평소 연례행사처럼 여름철만 되면 비브리오 폐혈증의 창궐로 바닷가 횟집이 어려움을 겪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궁여지책으로 하모회를 뜨거운 물에 데쳐서 나오는 유비키와 일본 즉석요리인 샤브샤브를 결합했다. 특히 여름보양식인 삼계탕 재료를 기초로 하여 지역 입맛에 맞는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 천일식당 등 주변에 그 기술을 알렸다.

정리하자면 곰장어와 뱀장어는 구워야, 붕장어는 회, 하모는 샤브로 먹어야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아직도 남은 장어 이야기는 하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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