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트럼프 리스크’,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세상에서 가장 극한 직업은 총알도 맞을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직업인 모양이다. 1%포인트(p) 내외의 박빙의 지지율 격차를 보이던 바이든과 트럼프의 지지율 격차가 트럼프 피습 사건 이후 3%p대로 확대되면서 트럼프의 재선이 확정적이라는 보도가 넘쳐 난다. 피습 사건 전에 있었던 TV 토론 실패로 바이든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퇴했고 해리스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밴스 부통령 지명자를 보면 트럼프의 대선 판세를 읽는 촉이 좋음을 알 수 있다. 바로 AIR(Age, India, Rust Belt)이다. 바이든과 네 살 차이밖에 안 나는 78세 트럼프는 딱 절반 나이인 39세 밴스를 지명함으로써 나이 문제를 물타기했고, 바이든의 러닝메이트 해리스가 인도계인 걸 겨냥해 부인이 인도계인 밴스를 택했다.

지난 대선에서 패인이 러스트벨트(Rust Belt, 미국 오대호 주변 쇠락한 공업지대)에서 바이든에 졌던 것인데 러스트벨트 '흙수저 출신 밴스'를 지명했다. 극렬한 트럼프 반대자에서 지지자로 돌아선 밴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의 점령 상태에서 조기 종식하고 손을 떼겠다며 유럽에 협박하는 등 트럼프의 카피캣이다.

피습 사건 이후 며칠 사이 트럼프 진영은 기세가 등등하지만 미국 대선은 아직 민주당의 후보도 결정되지 않은 초반전이고 길고 짧은 건 끝까지 가 봐야 안다. 바이든, 트럼프의 지지율은 엇비슷한 40%대 초반이다. 그래서 5~10%대의 지지율을 가진 케네디의 중도 사퇴가 있거나 민주당에서 대타로 여성인 젊은 해리스 부통령이나 힐러리가 나온다면 3%p대의 지지율 격차는 언제 뒤집어질지 모른다.

선거철 정치인은 표심에 도움이 된다면 양잿물도 마시는 사람들이다. 선거 때 표심을 사기 위한 공약(公約)은 당선되고 나면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취임 첫날 바이든이 했던 전기차 의무명령 취소와 IRA 정책을 폐지하고 중국산 자동차에 100~200% 보복관세를 때리겠다고 했다. 중국의 대미 전기차 수출은 거의 없고 2023년 자동차 수출 485만 대 중 북미 수출은 2%에도 못 미치는 9만7천 대다. 전형적인 러스트벨트 표심 잡기다.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산업 100%를 가져갔다며 미국에 안보 비용을 보험료처럼 내야 한다고도 했다. 이는 대만에 대한 무기 장사다. 반도체는 미국이 생산 코스트를 못 맞춰서 아시아로 이전된 것이고 미국은 양안 관계 긴장을 이용해 대만에 무기 장사를 한다. 트럼프 정부 때 138억달러, 바이든 정부도 55억달러어치 무기를 팔아먹었다. 트럼프는 4년 전에는 매각해야 한다던 틱톡(Tiktok)을 이젠 경쟁이 필요하다면서 오히려 지지하고 심지어 틱톡 계정을 개설해 선거전에 쓰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 행태다.

그러나 우리는 트럼프의 재선이라는 가정을 하고 플랜B를 준비해 두는 것이 안전하다.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의 20대 공약 중 주목할 것은 첫째, 미국을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으로 만들고, 둘째, 아웃소싱을 중단하고 제조 강국으로 만든다는 것, 셋째, 미군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고 유럽과 중동의 지역 평화를 회복하며 미국산 무기로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하고, 넷째, 기축통화로서 달러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미국산 석유를 사야 하고, 미국의 동맹국도 미국서 팔려면 1인당 소득 8만5천달러인 미국에서 제조해야 하고, 달러 강세는 계속 유지하고, 군사력 강화와 첨단기술 개발을 지속한다는 얘기다.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고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으며 국방의 미군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큰 부담이다.

바이든 시대 미국의 친구는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였지만 트럼프식 셈법은 대미 무역 흑자를 내지 않는 나라, 미 국채를 많이 사 주는 나라, 주둔군 비용을 많이 내는 나라인데 지금 한국은 대미 흑자 급증, 미 국채 축소, 주둔군 비용 적게 내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가 혈맹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이 지난 4년과는 달리 신뢰와 의리가 아닌 손익계산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로 바뀔 것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돈 되면 동맹이지만 돈 안 되면 남이라는 냉혹한 현실이 코앞에 닥쳤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미국의 적이 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미국의 동맹이 되는 것은 더욱 치명적이다"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트럼프 시대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동맹을 희생시키고 동맹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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